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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공의 경계 上 pp 16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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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한 의식 속에서 아사가미 후지노는 몸을 일으켰다.
 후지노는 방안에 있었다.
 주위에 인기척은 없다.
 방의 전등은 켜져 있지 않다. 아니, 전등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캄캄한 어둠만이 그녀 주위에 산란해 있었다.
 
"아ㅡ."
 괴로운 듯이 숨을 토하며 후지노는 자신의 길고 검은 머리를 만져본다. ...왼쪽 어깨에서 가슴 언저리까지 늘어져 있던 머리채가 없어졌다. 아까까지 자신을 덮치고 있었던 남자가 나이프로 잘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간신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지하에 있는 술집이다.
 반 년 전에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았다가, 그 후 불량배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린 폐가다.
 ...방구석에는 거칠게 내던져진 파이프 의자가 있다. ...방 한가운데는 당구대가 있다. ...편의점에서 사온 먹다만 간이식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용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런 게으름의 흔적들이 추악한 침전물을 만들고 있었다.
 방에 가득한 쉰내에 후지노는 불쾌해진다.

 여기는 폐허. 아니, 어딘가 먼 나라에 있는 슬럼가 뒷골목일까. 계단을 올라가면 정상적인 마을이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제대로 된 것이라고는, 그들이 가져온 알코올램프의 향뿐일 것이다.
 "음ㅡ."
 두리번두리번,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후지노의 의식은 아직 제대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아까까지 일어났떤 일이 아직 파악되지 않는다.
 그녀는 옆에 구르고 있는 손목 하나를 주워들었다. 비틀거려 잘린 손목에는 손목시계가 감겨 있다. 디지털 표시가 98년 7월 20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각은 오후 8시. 그 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욱...!"
 돌발적인 통증이 덮쳐와 후지노는 신음했다.
 복부에 엄청난 감각이 남는다.
 자신의 뱃속이 조여지는 듯한 아픔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철퍼덕, 바닥을 짚은 손이 소리를 낸다.
 돌아보니 이 폐허 바닥은 온통 물에 잠겨 있었다.
 "...아아, 오늘 비가 왔었지."
 누구에게 이야기라도 하듯 중얼거리며 후지노는 일어섰다.
 흘깃 자신의 배를 본다. 핏자국이 있었다.
 자신이, 아사가미 후지노가 여기 흩어져 있는 남자들에게 찔린 상처가.

 ...

 후지노를 나이프로 찌른 사내는 시내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탈선 고등학생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며, 불량배들의 리더 같은 존재로서 알려져 있다.
 마음 맞는 동료들을 모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다니는 그는 오락의 일환으로 후지노를 능욕했다.
 이유는 별로 없다. 그저 후지노가 레이엔 여학교 학생이며 미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은 야만스럽고, 반성이란 게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고, 어딘지 모르게 머리가 나쁠 것 같은 그와, 그의 유사품 같은 그들은 한 번의 폭행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원래라면 자신들이 고소당할 처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후지노가 누구에게도 의논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마음이 바뀌었다. 강한 것은 자신들이라 생각하고, 몇 번이나 그녀를 이 폐가에 끌고 왔다.
 오늘 밤도 그 연장으로, 그들은 너무 방심한 데다 또 이 행위가 슬슬 지겨워져 가고 있었다.
 그 남자가 나이프를 꺼낸 것도 그런 타성적인 반복을 타파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능욕당하면서도 하루하루를 변함없이 보내는 후지노에게 불량배 리더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그는 후지노를 지배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하는, 확실한 증표를 원했다. 그래서 더 심한 폭력을 위해 나이프를 준비했다.
 하지만 소녀는 더욱 차가운 얼굴을 할 뿐이었다.
 나이프를 들이대도 표정을 바꾸지 않는 소녀를 그는 갑자기 밀어뜨리고, 그리고ㅡ.

 ...

 "...이래 가지고서야 밖에 나갈 수 없잖아."
 피 범벅이 된 자신을 만져보며 후지노는 눈을 감았다.
 자신이 흘린 피는 배에 남은 나이프에 베인 상처뿐이었지만, 머리에서 구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피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더럽히다니ㅡ 바보 같이."
 오늘까지 당해온 능욕보다 온몸이 피로 더럽혀진 것을 더 참을 수 없는 것인가.
 후지노는 흩어진 불량배들의 몸뚱아리 중 하나를 발로 찼다. 평소의 자신과는 거리가 먼 흉포성에 놀라며, 후지노는 생각한다.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 앞으로 한 시간만 지나면 인적도 드물어질 거야. 비가 온다 해도 계절은 여름이니 차갑지는 않을 테고. 비로 피를 씻어내면서 공원에 가서, 그곳에서 어떻게든 얼룩진 피를 지우자ㅡ.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그녀는 금세 침착해졌다.
 피바다 속을 걸어 나와 당구대 위에 앉는다. 그곳에서 그제야 시체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넷. ...넷. ...넷? 아무리 세어도, 넷...!
 아연했다.

 ㅡ하나, 부족해.

 "한 사람, 도망갔군ㅡ."
 허망하게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자신은 경찰에 체포될 것이다. 그가 파출소에 뛰어가면, 나는 그대로 체포된다.
 하지만ㅡ과연, 그는 파출소에 갈 것인가?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사가미 후지노라는 소녀를 납치하여 단체로 능욕하고, 그 일을 학교에 알리고 싶지 않으면 얌전하게 따르라, 는 협박을 한 것부터 설명할까ㅡ?
 설마.
 불가능한 일일 것이며, 이런 인간들에게 진실을 감추고 교묘히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있을 리 없다.
 후지노는 조금 안도가 되자, 당구대에 있는 램프에 불을 켰다.
 부우, 하는 마른 소리를 내며 불꽃이 어둠을 비춰준다.
  열여섯 개의 토막 난 팔다리가 또렷이 불빛에 떠올랐다. 찾아보면 몸통과 머리도 네 개씩 있을 것이다.
 오렌지색 불빛이 비춰진, 미친 듯이 빨갛게 칠한 방은 모든 의미에서 끝이 나 있었다.
 그 참상을 후지노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사람, 도망갔다. 그녀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는다.
 기쁘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 복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아직 한 사람 더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후지노는 두려움을 느꼈다. 할 자신이 없다. 몸이 떨린다. 그러나 그의 입을 막지 않으면 자신의 처지가 위태롭다. 아니, 그렇다 해도 사람을 죽이다니, 그런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이제 싫어ㅡ

 그것은 그녀의 진심이었다.

 피바다에 비쳐진 그녀의 입가는 조그맣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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