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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폴라리스 랩소디 1 pp 35~46

 해적 선단과 레보스호의 거리가 반 마일 이내로 좁혀지는 순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차분히 기다리던 식스의 오른팔이 섬광처럼 움직였다. 식스는 팔 전체를 휘두르며 벼락처럼 지시를 내렸다.
 "질풍, 좌측으로! 페가서스, 우측으로! 합류를 방해하고 멀리 쫓아버려! 흑기사 전속 전진! 물수리와 바다사자는 감속 후 밀집 대형 형성! 할아버지 할머니는 노 세우고 포격 준비 후 대기!"
 식스의 명령은 기수의 빠른 손놀림에 의해 다른 일곱 척의 배로 전달되었고 곧 수면 위로 드라마틱한 움직임이 펼쳐졌다.
 나란히 다리던 배들이 마치 군무를 추는 것처럼 움직였다.
 해적 함대의 최좌익을 맡고 있던 질풍호, 그리고 최우익을 맡고 있던 페가서스호는 흩어지는 카밀카르의 두 배를 따라 선체를 돌렸다. 그리고 중앙을 달리고 있던 자유호와 흑기사호는 앞쪽으로 죽죽 뻗어나갔다. 물수리호와 바다사자호는 자유호와 흑기사호가 빠져나간 자리로 들어오며 후위를 형성햇다. 곧 가운데를 달리던 네 척의 배는 한 덩어리가 되어 달리기 시작했다.
 좌우익이 빠져나가고 본대의 네 척이 한 곳으로 모이지 함열에는 빈 공간이 두 개 생겼다. 그 빈 공간 속으로 해적선들 중 가장 큰 두 척의 배가 천천히 흘러들어왔다.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는 넓게 빈 해역을 이용하여 거대한 선체를 천천히 회전시켰다. 곧 지금까지의 진로와 직각으로 서게 된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는 선체 옆의 포문을 모두 열었다. 쿠르르르! 레일 위로 대포가 움직이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두 척의 배에서 40문씩, 모두 80문의 대포가 치명적인 정확성으로 레보스호를 조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레보스호의 감시자는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적함, 사격 태세!"
 "뭐? 이 거리에서?" 엘리엇 선장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수평선 위로 해적선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엘리엇 선장은 해적선 사이에서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두 척의 배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터릿 갤리어스. 왕국 레갈루스의 이름을 지도상에서 존속하게 만드는 바로 그 유명한 배다. 레갈루스의 조선소에서만 건조되는 이 거대한 배는 <강철의 레이디>를 탑재한 대륙 유일의 함종이다. <강철의 레이디>는 그 경이적인 사정 거리와 지독한 파괴력 때문에 법황의 칙령에 의해 모든 땅에서 사용이 금지된 대포지만, 레갈루스의 함선 설계가들은 법황의 칙령이 <모든 땅>에서의 사용을 금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오로지 레갈루스의 설계가만이 설계할 수 있는 특수 포가, 반동력 분배 기술 등은 마침내 강철의 레이디를 탑재한 <배>를 만들어내었다. 제국의 다른 해양국과 해양 세력들은 한숨을 쉬고, 이를 갈고, 법황청을 향해 목청껏 항의를 외쳐대었지만, 법황청은 조그마한 왕국 레갈루스의 자주 독립을 간접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보완 칙령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저 거대한 터릿 갤리어스는 커다란 덩치 때문에 느리기 짝이 없지만, 대신 강철의 레이디를 이용하여 다른 배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장거리 사격을 장기로 삼는다. 바다 위의 성채라 불러야 할 그런 배들이 선체를 옆으로 돌린 채 레보스호를 조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엇 선장의 머리 한편에서 키 드레이번이 레갈루스 왕국의 사략함대로 활동하던 시절, 두 척의 터릿 갤리어스를 공여받았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물론 그에게 그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잔잔한 즐거움을 만끽할 여유는 없었다.
 "충격에 대비하라! 미친 언니가 날아온다!"
 엘리엇 선장은 강철의 레이디를 카밀카르 뱃사람 식으로 불렀다. 마치 그런 호칭에 대해 화를 내는 것처럼, 해적 선단 쪽에서 수십 개의 화염이 폭발했다.
 넓은 해원 전체가 진동했다. 터릿 갤리어스 두 척의 일제 사격에 비해 보면 조금 전 레보스호의 사격은 연인들의 밀어로 느껴질 정도였다. 포탄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수면 위로 요란하게 울려퍼진 것도 잠시, 수면에 작렬한 포탄은 물기둥을 일으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쳐 오른 물기둥은 레보스호의 선상에 비말이 되어 쏟아졌다.
 엘리엇 선장은 선교 난간을 붙잡고 늘어짐으로써 볼품없이 쓰러지는 꼴을 간신히 면했다. 하지만 선 채로 고문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보라는 폭포처럼 쏟아져 숨을 막히게 하고 있었고 전후좌우 사방에서 터지는 폭음은 고막을 찢어놓지 않았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흠뻑 젖은 데다가 폐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엘리엇 선장은 간절히 빌었다.
 '제발 빗나가라!'
 해적들의 포술 실력은 조악하다. 게다가 레보스호는 좁은 고물 쪽을 보이고 있는 상태. 그러나 80발이나 되는 포탄 중 한 발도 맞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다. 현실은, 물기둥과 파도로 휘청거리고 있는 레보스호에 명중탄이 날아들기 시작하는 것으로서 나타났다.
 콰아앙! 좌현을 뚫고 들어온 포환은 순수한 운동 에너지만으로 불행한 노잡이 세 명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은 다음 텅텅거리며 배 안을 굴러다녔다. 선체는 진저리 치고 선원들은 나가 떨어졌다. 엘리엇 선장은 기어코 난간을 놓치고는 갑판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악!"
 짧은 비행 후 엘리엇 선장은 선교에서 갑판으로 추락했다. 쾅! 등부터 떨어지면서 숨통이 턱 막히는 느낌이 엘리엇 선장을 급습했다. 그러나 엘리엇 선장은 자신의 몸이 질러대는 비명에 귀기울이기에 앞서 등으로 배의 움직임을 느끼려 애썼다. 키는? 다행이다. 키는 맞지 않았다. 용골의 뒤틀림도 없다. 돛대의 경우에는 눈으로 확인했다. 빌어먹을 바람! 엘리엇 선장은 드러누운 채 욕지거리를 뱉어내었다. 그때 혼란과 진동을 꿰뚫고 슈마허가 다가오며 선장의 팔을 잡아당겼다.
 "괜찮으십니까, 선장님?"
 "안 괜찮소! 저 빌어먹을 역풍, 저 바람을 어떻게 해야......!"
 엘리엇 선장의 말이 갑자기 잦아들었다. 그의 뇌리 속으로 이 역풍을 순풍으로 바꿀 방법이 생각났던 것이다. 엘리엇 선장은 벌떡 일어섰고 덕분에 슈마허는 하마터면 턱을 가격당할 뻔했다. 그러나 엘리엇 선장은 슈마허에게 사과할 틈도 없이 외쳤다.
 "돛을 모두 펴라!"


 "어라? 저놈들 돌고 있잖아?"
 자유호의 선상에서 해적들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레보스호는 갑자기 멈추더니 배의 진로를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범선으로선 절대로 불가능한, 좌우에 노가 있는 갤리어스만이 가능한 반전 동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라이온 갑판장은 호탕하게 외쳤다.
 "좋았어! 그래야 바다의 사나이답지. 싸워보겠단 말이지? 으하하, 하지만 만용은 바다 사나이의 사망 원인 1호렷다. 전대포 장전! 갈고리 준비하라! 모든 갑판원 대접근전 태세로ㅡ"
 "미안하지만 내가 지휘자인 것 같은데."
 "ㅡ라고 1등 항해사님께서 말씀하실 것이다! 그렇죠, 1등 항해사님?"
 자유호의 1등 항해사 식스는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거친 어휘로 라이온 갑판장을 꾸짖었다.
 "아니다, 이 바보야!"
 라이온은 입을 다물고 말았고, 주위의 해적들은 낄낄거렸다. 식스는 불쾌한 표정으로 라이온을 쏘아보고는 그대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적선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재장전 시간 동안 반전, 아군 함열을 돌파하려는 속셈이다. 사수는 돛을 겨냥하라. 돛줄을 끊어야 한다. 놈들이 순풍을 이용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석구을 쥔 해적들이 재빨리 쿼렐을 먹이기 시작했다. 해상에서 사용되는 폭이 넓은 화살촉이 달린 쿼렐로서, 이 넓은 화살촉은 단검처럼 날아가 돛줄을 끊는다. 해적 궁수들은 이물 쪽으로 우르르 몰려가서는 발사 자세를 갖추었다. 식스는 그런 궁스들을 바라보다가 라이온을 흘끔 바라보고는 외쳤다.
 "전대포 장전! 갈고리 준비하라! 모든 갑판원은 대접근전 태세로!"
 라이온의 얼굴에 떠오른 억울함은 필설로 형언키 어려운 것이었지만, 식스는 그런 라이언을 못 본 척하며 엄격한 사나이다운 근엄한 동작으로 팔짱을 끼었다.
 레보스호는 카밀카르 뱃사람들이 보았다면 박수를 아끼지 않을 선회 동작을 성공시켰다. 서너 발의 대포를 맞아 노의 일부를 잃었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가 일제 사격 후의 재장전을 위해 잠시 주춤하는 동안, 레보스호는 진로를 180도로 바꿨다. 곧 역풍은 순풍이 되었고 바람을 가득 안은 돛은 찢어질 듯이 펼쳐졌다.
 엘리엇 선장의 속셈은 단순명쾌하다. 해적 함대는 좌우가 갈려나가고 중앙은 밀집하는 바람에 함열에 구멍이 생긴 상태였다. 레보스호는 그 구멍을 혈로로 삼아 발마을 가득 안고는 단숨에 돌파하는것이다. 그랜드파더호와 그랜드머더호가 구멍을 가로 막고 있긴 하지만 재장전을 위해 꾸물거리고 있으므로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재장전이 되더라도 레보스호가 먼저 뛰어들면 아군이 맞을 위험이 있으므로 쏘지 못한다.
 그래서 해상에는 한 척의 배가 여덟 척의 함대를 향해 돌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되었다.
 "돌파하면 못 쫓아온다! 해적놈들은 배를 돌리는 것이 느리다! 전속 전진!"
 엘리엇 선장은 목청껏 외쳤다. 순풍을 받아 굉장한 속도를 내고 있는 레보스호의 뱃머리에서는 파도가 야단되며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해적 함대 쪽에서는 식스 1등 항해사가 낮게 그르렁거렸다.
 "절대로 돌파시키지 않는다. 사수, 발사 준비!"
 해적들의 석궁이 일제히 올라갔다. 각양각색의 색깔을 가진 눈동자들이 오직 하나의 적의만으로 불타오르며 레보스호의 돛줄을 겨냥했다.


 아홉 척의 배들은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뱃사나이들의 가슴이 거세게 쿵쾅거리는 것에 비례해서 그들의 얼굴은 더욱 빠르게 굳어갔다. 욕설과 함성을 지르던 해적들도 숨을 죽엿다. 그래서 아홉 척의 배들이 생사의 갈림길을 확인하고자 돌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원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정적 어린 수면 위로 격렬한 노 젓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이 정적을 깨기 두렵다는 듯이, 엘리엇 선장과 식스 1등 항해사 모두 소리 없이 팔만 휘둘러 명령을 내렸다.
 사수들은 경련하듯 석궁의 방아쇠를 당겼다.
 곧 해적 함대와 레보스호에서는 무수한 쿼렐이 발사되었다. 양쪽에서 무더기로 발사된 쿼렐은 일순간 수면 위에 덤불숲이 생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괴괴하게 흐르고 있던 정적은 핏빛 비명에 의해 얼룩졌다.
 "크어억!"
 "헉!"
 양측 모두 상대방의 기동력을 감소시킬 목적으로 돛과 돛줄을 겨냥하고 있었으므로 쿼렐에 맞은 자는 상당히 운수가 사나운 자들이었다. 해적들의 인원이 더 많았지만, 정규병을 태우고 있는 레보스호는 해적 사수들과 비슷한 숫자의 궁병을 데리고 있었으며 기량의 경우에는 월등히 뛰어났기에 일차 사격의 피해는 비슷했다. 양측 모두 밧줄이 몇 개 끊어지고 돛대와 돛에 쿼렐을 맞았지만 돌진을 저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레보스호의 이물에 서 있던 기사 슈마허는 빈 석궁을 휘두르며 소리 높이 외쳤다.
 "전열 후퇴하고 후열 전진! 2차 사격 목표는 적 궁병이다!"
 정규병의 경우 또 하나 유리한 점이 있었다. 엄격한 훈련을 받은 카밀카르의 정규병들은 궁병을 2열로 배치하고 있었다. 사격을 끝낸 전열이 물러나서 석궁을 재장전하는 동안 후열이 일제 사격에 들어갔다. 석궁을 당기느라 꾸물거리고 있던 해적 사수들은 2차 사격에 맞아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자유호의 식스는 격노했지만, 사격을 끝낸 레보스호의 후열이 다시 물러나며 재장전을 끝낸 전열이 3차 사격을 시작하는 것을 보자 고함칠 겨를도 없이 머리를 숙여야만 했다. 다른 해적들도 모두 기겁하며 갑판에 엎드렸다. 그 사이를 틈타 레보스호는 해적 함대 사이로 무턱대로 돌입했다. 레보스호가 자유호와 그랜드머더 사이의 공간으로 끼여드는 순간, 자유호와 레보스호의 선상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명령이 터져나왔다.
 "대포 발사!"
 노끼리 서로 부딪힐 정도의 근접 거리다. 겨냥이고 뭐고 필요없이 발사하면 무조건 맞는 사격에서, 승부의 관건은 장전 속도와 발사 속도다. 레보스호의 포수들은 배워 익힌 대로 심지에 불을 붙이자마자 방화 방패를 세워들고 몸을 숨겼다. 그러나 자유호의 포수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발사했다. 그리고 그 방식의 차이는 두 배의 포격 대결에서 자유호의 포구가 먼저 불을 뿐느 것으로 나타났다.
 콰아앙! 스무 발 남짓한 포환이 레보스호의 우현을 난타했다. 자유호와 레보스호 사이에 시커먼 포연이 물결치는 가운데 목재와 의장들이 하늘로 치솟아올랐다. 레보스호의 우현이 무너지듯 파괴되며 선원들은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며 바다로 떨어져갔다. 레보스호의 용골을 타고 흐르는 충격은 배 전체를 뒤흔들었고 엘리엇 선장은 악에 받쳐 외쳤다.
 "빌어먹을, 단심이다!"
 해적식의 짧은 심지다. 대포가 깨지거나 오폭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게 되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수법이지만 해적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제 공격을 허용한 레보스호는 그 대가로 우측 대포의 절반 가량을 잃고 우현 곳곳이 파괴되는 참사를 입었다. 포탄 몇 발은 노잡이석으로 뛰어들어 노 몇 개와 그 노잡이들을 가루로 만들어놓았다. 해적들은 환호를 지르며 갈고리를 집어들었고 레보스호의 선원들 사이에는 지독한 공포의 악취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 위로 엘리엇 선장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신경 쓰지 마! 궁병, 계속 사격! 갈고리가 걸리면 끝장이다. 피해를 돌보지 말고 돌파해야 한다!"
 발 아래에서 박살난 포수와 노잡이들의 몸이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레보스호의 궁병들은 미칠 듯한 분노를 느끼며 석궁을 세워들었다. 단심을 이용한 해적들의 포격 때문에 레보스호는 대포의 40% 가량을 잃었지만, 자유호와 레보스호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상대 속도가 워낙 빨라서 두번째의 사격을 맞을 염려는 없었다. 재장전이 끝나기도 전에 두 배는 서로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쿼렐은 그 사이에 몇 대라도 쏘아붙일 수 있다. 곧 레보스호의 선상에서 빗발 같은 화살들이 자유호를 향해 날기 시작했다.
 "크허헉!"
 기세좋게 갈고리와 사다리를 들어올리던 해적들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나동그라졌다. 엘리엇 선장은 선원들 전부에게 들으라는 듯이 고함 질렀다.
 "갈고리만 걸리지 않으면 도망칠 수 있다! 계속 쏴라!"
 자유호의 식스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이를 갈았다.
 "대담한 사내로군! 저 말 들었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갈고리를 걸어!"
 그러나 식스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해적들은 감히 뱃전 너머로 머리를 들지 못했다. 레보스호의 궁병들은 기계 같은 정확함으로 교차 사격을 퍼부어대고 있었고 화살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날아들었다. 식스는 다시 불호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의 입은 열렸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다시 닫혔다.
 어느새 석궁을 챙겨든 라이온 갑판장이 뱃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라이온은 싱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가슴을 펴라! 죽음은 양해를 구하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나, 우리 모두는 태어난 것으로 이미 그 손님의 방문 예고를 받은 셈이지."
 라이온은 휘파람을 불며 석궁을 장전했다. 날아온 쿼렐 하나가 그의 귓가를 스치며 귀밑머리들을 떠오르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은 뱃전에 다리 하나를 올리기까지 했다. 식스와 해적들은 모두 탄복하는 표정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무릎에 팔꿈치를 얹은 라이온은 한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레보스호의 뱃전을 쏘아보며 외쳤다.
 "지금, 이 세상에서 자네의 방랑을 끝내주지."
 라이온은 방아쇠를 당겼다. 갈고리를 벗어난 시위가 진저리를 쳤다.
 슈마허는 머리 바로 위로 날아가는 쿼렐에 기겁했다. 젠장! 맞을 뻔했군. 그러나 라이온은 슈마허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날아간 쿼렐은 레보스호의 선교 위에 키를 잡고 있던 조타수의 가슴에 명중했다.
 철판도 뚫는 석궁 화살이다. 조타수는 해머에 맞은 것처럼 뒤로 나가떨어졌다. 쿼렐이 폐를 관통했기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갑판에 쓰러진 조타수는 입을 뻐금거렸지만 그의 입에서는 말 대신 피거품만이 흘러나왔다. 조타수가 나가떨어지며 타륜이 팽그르르 돌앗다. 거대한 속력 때문에 키의 반작용도 거대했다. 레보스호는 곧 비틀리기 시작했다.
 해저의 악마들이라도 수면 위로 뛰쳐나와 박수를 쳐줄 만한 사격을 성공시켯지만, 라이온은 통쾌하게 웃는 대신 빈 석궁을 옆으로 던지고는 갑판으로 몸을 날렸다. 레보스호의 거대한 선체가 옆으로 기우뚱하더니 곧 자유호 쪽으로 기울어져 왔다. 레보스호의 선원들과 해적들은 모두 핏기가 가신 얼굴이 되어 무의미하게 입을 뻐금거리는 가운데 라이온의 외침이 길게 울려퍼졌다.
 "충격에 대비하라! 충돌한다!"
 배수량 560,000파운드에 달하는 레보스호의 육중한 선체가 전속력 질주의 관성을 유지한 채 자유호와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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