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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폴라리스 랩소디 1 pp 48~58

 뒤얽힌 노들이 먼저 비명을 지르며 산산조각 났다. 노의 얽힘으로 속력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레보스호와 자유호가 부딪혔을 때의 상대 속도는 굉장했다. 부딪힌 뱃전은 귀에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비비적거렸다. 끼기기ㅡ긱! 진동으로 양쪽 배의 선원들은 모두 주저앉거나 쓰러졌다. 뱃전 아래에서는 노예들의 애타는 비명이 들려왔다. 그때 반대쪽에 있던 그랜드머더호가 참으로 해적답지 않은 행동을 시도했다.
 "하하하! 좋았어, 라이온 군. 자, 이젠 우리 차례다! 전속 전진!"
 그랜드머더호 선상에 서 있는 짙푸른 눈의 남자가 통쾌하게 웃으며 외쳤다. 선장의 빠른 명령이 떨어지자 그랜드머더호는 곧 전속 질주하기 시작했다. 워낙 느린 터릿 갤리어스인 데다가 가속할 거리도 없었지만, 그랜드머더호의 선장 킬리는 일반 갤리어스의 두 배에 달하는 자함의 중량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랜드머더호는 그 선장의 신뢰에 보답했다. 일제 사격을 위해 옆으로 서 있던 그랜드머더호는 그대로 레보스호의 좌현에 선수를 들이박은 것이었다.
 그랜드머더호의 선수에 있던 충각이 레보스호의 선체를 종잇장처럼 꿰뚫었다. 충격으로 쓰러져 있다가 간신히 일어났던 슈마허는 두번재의 충격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쓰러질뻔하다가 간신히 돛줄을 움켜쥔 슈마허는 얼떨떨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슈마허의 안색이 확 변했다.
 "신이여!"
 레보스호는 이제 자유호와 그랜드머더호 사이에 완전히 끼어 있었다. 레보스호의 노와 자유호의 노는 서로 뒤얽혀 있었고 좌현에서는 그랜드 머더호가 레보스호의 심장을 후벼 파듯 충각으로 밀어오고 있었다. 더 이상 배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슈마허는 검을 뽑아들고는 검집을 내팽개쳤다.
 "카밀카르 만세!"
 레보스호의 전투병들도 사태를 파악했다. 자유호의 해적들은 이미 갈고리와 그물, 사다리 등을 걸치고는 함성을 지르며 뱃전을 뛰어넘어 달려오고 있었다. 레보스호의 전투병들과 선원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어올리며 해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는 육상전이나 다름없다. 자유호의 해적들은 짧은 커틀러스와 나이프, 대거, 그리고 탐욕스러운 광기만으로 달려들고 있었지만 카밀카르의 정규 전투병들은 롱 소드로 해적들을 때려눕혔다. 레보스호의 뱃전에 뛰어오른 해적 하나는 다리에 칼을 맞고는 그대로 저 아래의 바다로 떨어졌다. 풍덩! 카밀카르의 병사들의 선두에서는 기사 슈마허가 악귀 같은 얼굴을 한 채 두 손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공주님의 이름에 걸고,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저놈을 잡아!"
 해적들도 슈마허가 지휘자인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를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날아드는 커틀러스를 받아낸 슈마허는 숨쉴 사이 없이 허리를 베어 들어오는 도끼를 피해 몸을 돌려야 했다. 카밀카르의 병사들도 그들의 지휘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자유호와 레보스호의 뱃전이 맞닿은 지점에서 치열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다가오는 메이스를 피한 슈마허는 상대방의 팔목을 쳐내렸다. 해적은 잘린 손목을 움켜쥔 채 비명을 질렀고 그 사이에 슈마허는 상대방의 복부를 걷어찼다. 해적은 쓰러졌고 슈마허는 그 등을 밟으며 몸을 빼내었다. 조금이라도 제자리에 서 있으면 당장 포위될 테니까. 그때 또 한 명의 해적이 롱 소드를 세워 든 채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슈마허는 공격에 대비했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은 해적은 엉뚱하게도 검을 휘두르는 대신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뭐지?"
 "슈마허!"
 슈마허는 자신의 이름을 기합처럼 말하며 상대방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상대방은 슈마허의 롱 소드를 내리쳤다. 콰가가각! 해적은 슈마허의 검 끝이 갑판에 박힐 정도로 내리눌렀고, 잠시 둘은 검을 아래로 향한 채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해적은 싱긋 웃었다.
 "나는 라이온. 날씨 이야기나 좀 나눌까?"
 "이긱!"
 슈마허는 잇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들었다. 라이온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서는 야유 섞인 휘파람을 불며 검을 똑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슈마허를 향해 검을 몇 번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날씨에 관심없나 보군. 하지만 보라구. 죽기에 좋은 날씨잖아?"
 "유언은 끝났나?"
 슈마허는 곧장 검을 휘둘러 들어갔고 라이온은 기세좋게 응수했다. 곧 두 사람은 주위의 어떤 자도 끼여들 수 없을 만큼 맹렬한 검격을 교환했다.


 "저 얼간이 녀석! 반대쪽은 비워둬야 우리가 들어가지!"
 흑기사호의 1등 항해사 매슈가 사나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 욕설과 외침은 전부 레보스호에 충돌을 감행한 그랜드머더호의 킬리 선장에게 집중된 것이었다. 감탄스러운 일격이었고, 덕분에 레보스호를 묶어두고 있기는 했지만, 그랬기에 그랜드머더호는 레보스호의 좌현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기도 했다. 매슈 역시 그랜드머더호의 충돌에 감동을 받았기에 욕설의 수위를 낮게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그랜드머더호가 레보스호의 좌현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터릿 갤리어스인 그랜드머더호에는 전투병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랬기에 그랜드머더호의 해적들은 자유호의 해적들과 싸우고 있는 레보스호의 선원들의 등뒤를 공격할 수 없었다. 으르렁거리고 있던 매슈는 문득 고개를 돌려 자신의 선장을 바라보았다.
 흑기사호의 선교에는 검은 갑옷을 걸친 장신의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두툼한 왼손은 허리에 얹고 오른손에는 자루 길이만 해도 3피트는 될 것 같은 큼직한 배틀 엑스를 느슨하게 들고 있었다. 흑기사호의 선장 오닉스 나이트는 비어 있던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려 빠르게 어떤 손짓을 보내었다. 매슈의 눈이 커졌다.
 "선장님?"
 자신의 1등 항해사가 주춤하는 것을 본 오닉스는 똑같은 손짓을 훨씬 격렬하게 보내었다. 매슈는 이를 악물고는 선장의 손짓을 말로 바꿔 조타수에게 전달했다. 곧 흑기사호의 선체는 옆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자유호의 선상에서 레보스호를 보던 식스는 문득 등뒤로부터 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식스는 고개를 돌렸고 흑기사호의 검은 선체가 자유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식스는 갑자기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오닉스? 무슨 짓을?"
 흑기사호는 곧 자유호에 뱃전을 가져다대었다. 오닉스는 명령을 내리는 대신 직접 배틀 엑스를 들어올리며 자유호의 선상에 뛰어들었고, 그러자 흑기사호의 해적들 역시 그 뒤를 따라 자유호로 넘어왔다. 식스는 기성을 질렀다.
 "오닉스 선장! 허가 없이 자함에 승선하다니ㅡ!"
 다음 순간 식스는 말문이 탁 막히는 것을 느꼈다. 달려가던 오닉스는 식스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짓만 보내었다. 그리고 식스는 그 손짓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나, 나, 나에게...... 엿먹으라고 했......어?"
 식스 주위에 있떤 자유호의 해적들은 거의 동시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그들의 1등 항해사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스를 그런 끔찍한 지경에 빠트려놓은 오닉스는 자유호의 갑판을 곧장 가로질러 레보스호의 뱃전으로 넘어갔고, 그 모습을 보고서야 식스는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오닉스의 행동을 이해한 흑기사호의 해적들은 역시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의 선장의 뒤를 따랐다.
 곧 레보스호를 향한 공격은 두 배가 되었고, 레보스호의 카밀카르 병사들은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해적들의 기세에 밀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흑기사호로부터 자유호를 넘어 레보스호로 건너온 해적들의 선두에는 얼굴까지도 검은 마스크로 가린 전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밀카르 병사들을 장작 패듯 내려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카밀카르 병사들의 눈에는 심해에서 기어나온 악마처럼 보였다. 슈마허와 칼을 교환하고 있던 라이온은 그 모습을 보며 고함 질렀다.
 "오닉스 나이트! 이놈은 내 거요, 가까이 오지 마시오!"
 오닉스 나이트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지나쳐 승강구 쪽으로 뛰어갔다. 슈마허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검을 세웠다.
 "네놈이 죽을 때가 가까워 헛소리가 심하구나!"
 라이온은 검을 오른쪽으로 눕히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사랑하는 자기, 내가 성심 성의껏 준비한 거야.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거나 맞고 뻗어줘!"
 그리고 라이온은 그대로 왼발로 슈마허의 다리를 걷어찼다. 오른쪽 검에 집중하고 있던 슈마허는 불의의 일격에 무릎이 꺽이는 것을 느꼈고 그때 라이온의 ㄴ검이 그의 어깨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승강구로 뛰어든 오닉스는 계단 전부를 뛰어넘어 단숨에 중갑판에 내려섰다. 육중한 몸이 떨어지자 갑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오닉스는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는 여러 형태의 배의 구조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바람처럼 움직인 오닉스의 몸은 잠시 후 노잡이석의 입구 쪽에 나타났다.
 노잡이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컴컴한 노잡이석에 나타난 완전무장의 검은 전사는 말로 표현되는 것보다 더한 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노예석 한쪽에 서 있던 노예장은 꺽꺽거리는 불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닉스 나이트!"
 오닉스의 마스크에 뚫린 구멍 속에서 눈만이 번쩍이며 노예장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오닉스는 한손을 들어 간략하게 손짓을 보내었다. 노예장들과 노예들 모두 알아볼 수 있는 손짓이었다. <모두 노를 놓고 엎드려라.> 그러나 노예장은 그 손짓을 거부했다. 대신 노예장은 레보스호에 오른 이후 한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
 "퇘! 웃기지 마라! 나는 너처럼 목숨이 아까워 노스윈드의 개가 되지는 않는다!"
 오닉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것은 뱃사람이 할 수 있는 모욕 중에선 최상급의 모욕 중 하나이다. 배는 목숨을 빼앗기위해 달려드는 바다로부터 뱃사람을 보호하는 유일한 피난처이며 그들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뱃사람은 절대로 배에 침을 뱉지 않는다.
 오닉스는 아무 말 없이 노예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노예장은 급한 대로 옆에 던져두었던 채찍을 들어올려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오닉스의 걸음이 잠깐 멈추었지만 그야말로 잠깐이었을 뿐이다. 오닉스는 눈앞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채찍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곧장 걸어갔다. 노예장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대해적의 손목을 겨냥했다.
 <저 도끼를 떨어트려야 돼!>
 차아악! 노예장이 휘두른 채찍이 오닉스의 손목에 감겼다. 노예장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잠시 후 그 얼굴은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의심에 일그러졌따. 오닉스는 손목에 감긴 채찍채로 손을 위로 들어올렸고, 그래서 노예장은 앞으로 확 끌어당겨졌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노예장의 정수리를 향해, 오닉스는 세심하다 싶을 정도로 침착하게 도끼날을 가져다박았다.
 뼈와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가벼운 소리가 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쪼개진 노예장의 몸은 오닉스의 배틀 엑스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불쾌하다는 듯이 노예장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오닉스는 손을 들어올려 조금 전의 손짓을 다시 보내었다. <모두 노를 놓고 엎드려라.>
 노예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오닉스를 기쁘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오닉스는 노를 팽개치고 화다닥 머리를 숙이는 노예들을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노가 멈춰지며 레보스호는 이제 완전히 움직임이 봉쇄되었다. 그런 레보스호를 향해 그랜드파더호와 물수리호, 바다사자호도 주위를 포위해 들어갔다. 그리고 먼 바다에서는 질풍호와 페가서스호가 포신이 녹아버릴 정도의 포격을 가해 두 척의 카밀카르 배를 멀리 쫓아내고 있었다. 기함 레보스호가 완전히 무력화된 이상 다른 두 척의 배도 노려봄직하건만, 질풍호와 페가서스호는 해적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냉정함으로 두 척의 배를 쫓아내기만 했다.
 레보스호의 갑판에 쓰러진 슈마허는 다 끝났다는 심정이었다. 배는 포위되었고, 몰려든 해적선들에서는 해적들이 끝도 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노는 완전히 정지했고 돛은 찢어졌다. 그러나 그 모든 총체적 절망 속에서도, 슈마허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것은 바로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걸어오는 라이온의 존재였다.
 "이봐, 서 슈마허라고 했던가. 탁 깨놓고 대화 한번 해보자. 죽어가는 기분이 어때? 난 그게 항상 궁금했어. 물론 나도 죽을테니까 언젠가는 알게 될 기분이지만, 그래도 궁금하잖아. 그러니 이왕이면 죽어가는 자네가 동정을 베풀어 내게 자네 기분을 설명해 주면 좋겠구먼. 뭐라더라. 살아온 나날이 휙 지나간다던가? 정말 그래? 응? 정말 옛날 일들이 빠르게 지나가나? 아, 그래. 손발이 차가워진다고도 하던데. 그건 어때? 응? 자네 죽어가고 있잖아. 죽고 나면 말 못하니까 상세하게 설명해 봐. 집중력을 가지고. 약간만 주의를 기울여보란 말이야."
 라이온은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서는 이런 돼먹지 않은 말을 끊임없이 주절거려 슈마허를 반쯤 돌아버리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어깨가 끊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슈마허는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라이온이라 불리는 이 미친 녀석의 입을 뭉개버릴 수만 있다면 악마와 거래하는 것도 크게 나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만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슈마허는 간신히 입술을 움직였다.
 "너 미쳤지?"
 "응? 우리가 전에 언제 만났던가?"
 "내가 너 따위 녀석을 언제 만났다는 거냐."
 "그럼 내가 미친 거 어떻게 알 고 있지?"
 슈마허는 자신이 왜 아직도 졸도하지 않을 정도의 굵은 신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원망했다. 졸도했다면 이 미친놈의 종알거림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때 엄청난 깨달음이 슈마허를 엄습했다. <아니다. 이놈은 내가 졸도하면 깨워놓고 중얼거릴 놈이다.> 슈마허가 자신의 깨달음에 아연해하는 동안에도 라이온은 신기하기 그지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신기한데. 아, 자네 점도 칠 줄 아나? 잘됐군! 죽기 전에 내 올해 운수가 어떨지 좀 봐주지 않겠어? 나도 자네 운수를 봐주겠어. 뭐, 바보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자네 운수는 볼장 다 봤지. 배는 격침되고 부하는 모두 잃고 자네는, 오, 맙소사. 난 사랑에 빠졌어!"
 슈마허는 순간 소름 끼치는 기분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이놈이 설마? 그러나 라이온의 눈은 그가 아니라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슈마허를 엄습했고, 그래서 슈마허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고, 공주님! 이 발칙한 놈!"
 승강구 쪽에서 나타난 오닉스는 겨드랑이에 율리아나 공주를 끼운 채 나타났다. 율리아나 공주는 감히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짐짝처럼 취급당하는 것을 감수하고 있었다. 라이온은 손가락을 튕겼다.
 "아하! 필마온 기사단장에게 시집 가신다는 카밀카르의 그 공주님이신가 보군?"
 라이온은 오닉스의 겨드랑이에 끼어 있는 율리아나 공주를 향해 화려한 동작으로 머리를 숙여보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자유호의 갑판장 라이온이라고 합니다. 설마 대륙에 소문이 자자한 공주님을 뵐 줄은 몰랐군요."
 율리아나 공주는 성심 성의껏 대답함으로써 라이온을 놀라게 만들었다.
 "반가워요, 라이온 씨. 제 몸가짐이 이상한 것에 대해 너무 허물치 말아주세요. 불가항력이랍니다."
 라이온은 그만 킬킬거리고 말았다. 죽을 때도 농담을 할, 마치 노련한 사내 같은 공주님이로군. 라이온은 오닉스를 향해 시선을 보내었다. <내려드리죠.>
 그러나 오닉스는 그런 라이온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뱃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라이온은 당황한 목소리로 오닉스를 제지했다.
 "어? 이봐요, 오닉스 선장! 뭐하는 거요?"
 오닉스는 잠시 라이온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뱃전 끝으로 다가갔다. 그때 선교 위에서 건장한 해적 서너 명에게 깔려 있던 엘리엇 선장이 고함 질렀다.
 "아, 안 돼! 저놈, 공주님을 바다에 던지려고......"
 율리아나 공주가 가장 먼저 엘리엇 선장의 말에 반응했다.
 "꺄아악!"
 그제서야 오닉스가 뭣 때문에 뱃전으로 다가가는지를 깨달은 율리아나는 발버둥을 치며 반항했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있는 오닉스의 굵은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라이온은 황급하게 외쳤다.
 "멈춰요!"
 오닉스는 부릅뜬 눈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일단 오닉스를 정지시키기는 했지만 라이온은 앞이 막막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시골뜨기 뱃놈을 어떻게 말린다? 흑기사호 한 척으로 사트로니아 해양청을 공황 상태에 빠트렸던 전력을 가지고 있던 대해적 오닉스 나이트였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구식 뱃사람이었다. 노스윈드의 휘하에 소속된 후에도 그의 미신적인 성격은 바뀌지 않았고, 그래서 오닉스는 지금 배에 여자가 타면 재수 없다는 미신에 따라 공주를 바다에 던지려들고 있는 것이다. 라이온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제기랄, 당신은 키 드레이번 선장님의 허락 없이는 이 배의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어!"
 오닉스는 키 드레이번이라는 이름에 확실히 반응했다. 그의 검은 마스크 뒤에서 끔찍한 신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끄흐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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