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vel소설/습작

마술사 1


 "결국 영주가 죽었다고 하더구먼."
 세월의 흐름을 간직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는 허름한 술집에 거나하게 취한 에슐트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마술사는 마치 벽에 걸린 아른거리는 조명처럼 눈에 띄지 않게 흑맥주를 입에 가져갔다. 에슐트는 낮은 조명에 주홍색으로 물든 흑맥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애도하듯이 고개를 숙였다.
 "역시 아쉽구먼. 그래도 그 자가 죽었으니께, <노스 마운틴>과는 끝이여. 인자 우린 이만 떠나야겠으. 마술사."
 에슐트가 급하게 흑맥주를 모조리 목에 들이부었다. 마술사도 다시 한 모금 맥주를 입에 댔다.
 딸랑.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 없이 조용한 술집에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여인이 들어왔다. 에슐트는 그 여자를 보고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여, 나메."
 훨친한 키의 나메는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발걸음으로 에슐트의 테이블에 왔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가볍게 들어서 자신에게 오던 점원에게 맥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잔."
 점원이 후다닥 주방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을 천천히 보면서 나메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에슐트를 응시하면서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줄이지마, 에슐트. 나는 나르키시스 메르티오 아로헬이다."
 에슐트는 빨갛고 복스럽게 부풀어오른 볼로 미소를 지으며 나메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는 혀를 내둘렀다.
 "나르키 뭐 메르헬? 다크 엘프 이름이 좀 길어야제. 그리 긴 이름을 언제 부르고 있갔어? 아아, 글고 봉께, 우리 마을에도 이름이 긴 드워프가 하나 있었제, 보석세공사의 아들 말인디......"
 나메는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허리춤에 숨겨진 이상하게 생긴 단도를 하나 꺼내 테이블에 꽂았다. 에슐트는 태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점원은 놀라서 가져오던 잔을 떨어뜨렸다. 에슐트는 고개를 돌려 점원에서 괜찮다고 손을 좌우로 저으면서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치켜세워보였다. 나메는 밸트에 달린 여러 개의 작은 가방 중 하나에서 작은 수건을 꺼내들어 단도를 뽑아 닦으며 말했다.
 "에슐트. 벨키스 제르킨 라이프로미 아르타크 폴라 퍼플리 알슈르 크라온 데슈라 인챈나이는 들었다."
 에슐트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녀. 벨제 이야기가 아니구 그의 동생 벨로제의 이야기인디? 것보다, 나메. 아가들이 보는 앞에서 그 소드 브레이커는 그만 집어 넣제, 그려?"
 나메는 에슐트의 말을 무시하고 칼날의 가운데가 갈라진 소드 브레이커를 뽑아 닦아내었다. 그 단검은 조금 전에 사용되었는지 끈적거리는 액체가 묻어있었다. 수건은 소드 브레이커를 닦을수록 검붉게 물들어갔다. 손질된 칼날에 반사된 나메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푸르게 물들었다.에슐트는 무신경하게 검을 손질하는 나메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마술사. 인자 나메도 왔긋다, 그만 떠나자구. 괜히 우리가 그 일에 휘말리면 손해보는 게 한 두개가 아니라구? 돈도 안되고 그렇다고 좋은 일도 아니구. 이거 이대로 있다간, 사라진 왕가의 검은 어느 세월에 찾냔 말이제."
 마술사는 에슐트의 말을 들으면서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술을 들이키던 그는 흑맥주 두 잔을 든 점원이 그 옆에 오자 오른손을 뻗었다. 마술사는 점원의 목을 거머쥘 듯이 잡으며 말했다.
 "숨쉬기를 기억해내지 못하면, 넌 죽는다."
 마술사가 오른손을 거두자 점원은 맥주를 떨어뜨리고는 자기의 목을 움켜쥐고 컥컥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는 에슐트가 나메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셔? 나메, 영주 성에 갔다오는 길인겨?"
 나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리춤에 꽂혀있는 메일 브레이커를 꺼냈다. 가운데가 갈라진 형태의 소드 브레이커와 달리 메일 브레이커는 송곳 같은 모양이었다.
 "위에 셋. 창문에 하나. 문 밖에 다섯."
 깊게 눌러쓴 모자에 가려진 나메의 긴 귀가 꿈틀거리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곧장 테이블을 박차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커다란 홀로 연결되어 있는 2층으로 이동한 나메는 눈 앞에 보이는 회색 복면을 쓴 상대에 코 앞까지 소드 브레이커를 찔러넣었다. 당황한 복면남이 뒤로 빠지는 것을 따라 들어간 나메는 그대로 그의 복부에 메일 브레이커를 박았다. 그녀는 뒤로 몸을 돌리면서 소드 브레이커를 이용해 자신의 뒤를 노리는 적의 공격을 흘렸다. 그 원심력을 이용해 몸을 돌려찬 구두에 박힌 칼날이 적의 목을 그었다. 마지막 남은 복면의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2층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메는 그를 따라서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워메, 영주가 죽었으면 그냥 갈 것이제. 왜 성에 갔다오는겨, 나메는."
 한숨을 쉬면서 에슐트는 자기의 짐 꾸러미에 들어있는 모닝스타를 꺼냈다. 동그란 철구에 철심을 박아 철봉에 연결한 무기를 어깨에 들쳐맨 에슐트는 문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이런 손해보는 짓거리를 내가 왜 해야하는 겨, 으악!"
 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에슐트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단검을 보고 놀랐다. 그는 모닝스타를 정면으로 세워 단검을 팅겨냈다. 에슐트는 씩씩거리면서 문을 보고 고함질렀다.
 "감히 사우스 탄광 드워프의 면전에 나이프를 던져? <노스 마운틴> 이 자식들 가만 두지 않을겨. 네놈들은 투탄크의 도끼를 맛봐라!"
 에슐트는 곧장 문밖으로 달려나가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컥컥거리는 점원을 보던 마술사는 오른손을 뻗어 점원의 머리통을 잡았다. 그리고는 창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붙잡힌 점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리다가 파랗게 창백해지자 마술사는 쥐고 있던 머리를 놓았다. 그는 창문에서 마술사를 지켜보던 자를 향해 오른손의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죽음이 그리워지게 되고 싶은가?"
 마술사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자가 겁에 질려 도망가려했다. 마술사는 곧장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창턱을 밟고 공중제비로 돌아서 다시 점원에게 갔다. 왼손을 뻗어 점원의 목을 움켜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마을에 좀 더 있어야 겠군."
 마술사는 다시 몸을 날려 창문으로 뛰쳐나갔다. 컥컥거리다가 숨을 쉬지 못하던 점원은 숨이 돌아왔는 지 가슴을 들썩이며 곤히 잠들었다.

-이후 계속

'[N]ovel소설 >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술사 -가제- 2  (0) 2010.01.28
폴라리스 랩소디 1 p 16  (0) 2009.12.22
폴라리스 랩소디 1 p11  (0) 2009.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