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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폴라리스 랩소디 1 p 16

그리고 율리아나 공주와 라스 카밀카르 법무대신은 레보스의 선상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은 채 한가로운 오후와, 바다와, 차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셋 중 어느 것에도 특별히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한가로운 티 타임이다. 이 항해에 있어야 할 엄숙함을 생각해 본다면 좀 지나친 한가로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햇살이 노곤한 봄날의 바다 위에서 이 항해의 목적을 되풀이 상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항해의 목적은 제국의 정치 관계, 혹은 제국의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율리아나 카밀카르 공주는 필마온 기사단의 기사단장 발도 로네스와 결혼하기 위해 필마온 섬에 소재한 검독수리의 성채로 향하고 있었다. 율리아나 공주는 시니컬한 농담을 삼아 이 항해를 '불가사리와 갈매기를 하객 삼아 이루어지는 가장 긴 신부 입장'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시리어스한 농담을 하고 싶을 때는 율리아나 공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해운국인 카밀카르는 남해를 주름잡는 필마온 기사단에게 막대한 뇌물을 줄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고, 따라서 뇌물을 보내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그녀가 필마온에 가는 것이다. 신부가 따라가면 뇌물도 혼수품으로 둔갑하는 법이니까.
 "그건 너무 비참한 해석이군요. 공주님."
 신부측 입회인이자 보호자로서 배 위에 동승한 라스 카밀카르 법무대신은 누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율리아나 공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 이 배에 가득한 선물들은 다 뭔가요? 그건 누가 보더라도 혼수품이라기보다는 뇌물이라고 할 거예요. 함대의 돛으로 써도 될 만큼 실려 있는 자마쉬 비단, 배의 바닥짐으로 써도 될만큼 실려 있는 다케온 다이아몬드, 아, 그래요, 특별 화물실에는 싱잉 플로라도 실려 있더군요. 그건 도스 계곡에서만 나는 거 아니었어요? 아주, 아주, 아주, 한번만 더 할게요, 아주 비싼 꽃."
 "아니, 특별 화물실에 어떻게 들어가셨습니까?"
 "들어간 적 없는데요."
 "그럼?"
 "예? 당연히 노래를 들었죠. 슬픈 노래였어요. 싱잉 플로라는 무서워하고 있는 거 같더군요. 하긴 제가 꽃이라고 해도 이런 바다에 나오게 되면 무서울 거예요. 아무리 멋진 화분에 심겨 있다 해도 꽃은 땅에서 자라야 되는 것 아닐까요."
 "노래요?"
 "그럼요. 싱잉 플로라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뭐가...... 이상한 건가요?"
 율리아나 공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법무대신을 바라보았다. 법무대신은 눈살을 잔뜩 일그러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공주님. 정말 들으셨습니까?"
 "그럼요."
 "싱잉 플로라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야 이상할 것이 없지만, 공주님께서 싱잉 플로라의 노래를 들었따는 것이 퍽 이상하군요.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는 남자에게만 들립니다. 그래서 그 꽃의 다른 이름이 템프테이셔너입니다."
 "네?"
 율리아나 공주는 동그래진 눈으로 라스 법무대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하지만 제게는 들렸어요. 이런 노래였어요."
 율리아나 공주는 눈을 감고 허밍을 시작했다.
 낮고 부드러운 허밍이었다. 늙은 법무대신은 순간 등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전율을 느꼈다. 공주가 부르는 허밍은 깊은 밤이면 특별 화물실에서 새어나오는 싱잉 플로라의 낮은 노랫소리와 똑같았다.
 배에 오른 이후 법무대신은 자주 잠을 설쳤다. 그 자신은 익숙하지 못한 배의 흔들림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따.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익숙지 못한 배의 침대에 누워 뒤척일 때마다 귓가를 쓰다듬고 지나가는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는 법무대신에게 애잔한 슬픔과 에로틱한 환상을 보내주었다.
 대륙 9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도스 계곡에서만 자라나는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가 법무대신의 늙은 몸에 일으키는 반응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마법사 하이낙스는 평생 동안 어떤 여자도 가까이 하지 않고 오로지 한 떨기 싱잉 플로라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라스도 이제는 그 전설을 믿을 수 있었다. 싱잉 플로라의 노랫소리에 침대 속을 뒤척이면서 법무대신은 자신의 주책없음에 어쩔 줄 몰라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노랫소리가 여자에게는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어쨌든 어린 신부에게 권할 만한 노래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 안도감이 무너지고 있었다. 공주의 허밍을 듣던 법무대신은 자신의 얼굴이 지나치게 붉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말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런 허밍은 천한 광대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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