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vel소설/아티펙트Artifact

아티펙트Artifact 제 1장. 믹스Mix 2/2




 후두두둑. 봄을 알리는 봄기운을 듬뿍 담은 비가 어느새 멈춰 있었다. 땅에 새 생명들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물은 카페의 지붕을 타고 창밖으로 소리내어 떨어졌다. 똑똑. 정적을 깨는 소리는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도 있었다.
 "부탁하네."
 리처드는 매우 공손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기대가 부푼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바라보는 니피가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불가능합니다"
 니피는 의아해하며 사진을 뒤집어 살펴보았다. 사진이 잘못되어서 갈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아쉽게도 그런 뜻에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블링크 슈즈를 사용할 줄 모릅니다."
 사진을 보던 니피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리처드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현우 군. 아까 해준 이야기로는 아파트에서 탈출할 때 블링크 슈즈를 사용해서 도망쳤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블링크는 아니고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말이지. 텔레포트는 블링크보다 수준 높은 능력인데..."
 나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빚은 오해였다.
 "제 잘못입니다.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그건 순전히 운이었어요. 그러니까, 수류탄이 터질 때 마치 시간이 느려지는 듯이 멈추더니 하얀 빛과 함께 다른 곳에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곳이..."
 "공원이었지. 장미공원 벤치 옆."
 "저기, 현우야. 음... 싫으면 거절해도 되는데, 내가 그 신발을 좀 써봐도 될까?"
 어느새 정신을 차린 니피가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서 고민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저앉아 신발을 벗으려고 했다. 내가 신발끈을 풀려는 동작으로 멈추고 고개를 드니 니피와 리처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 이 신발, 안벗겨져요."
 리처드는  소파에서 일어나 쭈그려 앉은 내게 와 신발을 살폈다. 내가 손을 빼자 리처드는 직접 신발끈을 잡아보았다. 그리고 당기자 놀랍게도 신발끈이 풀렸다.
 "신발끈은 풀리는데?"
 "어, 어?"
 내가 당황해하자 리처드는 신발끈을 풀다말고 내게 손짓했다. 난 직접 신발끈을 풀어보았다. 된다, 신발이 풀린다!
 "이상하네? 리차드가 풀 때는.. 아! 다 풀고 나면 다시 끈이 묶여요."
 나는 허겁지겁 끈을 다 풀었다. 신발 뒤쪽을 손으로 잡고 뒤꿈치를 들었다. 신발을 벗으려하자 역시나 신발끈이 제멋대로 얽히더니 끈이 묵여져버렸다.
 "어머?"
 놀란건 내가 아니라 니피였다. 리처드도 "이건 상당히 흥미롭군."하는 표정으로 신발을 보았다. 니피가 말했다.
 "리처드. 신발이 살아있네요?"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살아있는 신발. 블링크 슈즈. 역시 하백의 아티펙트로군."
 난 리처드가 감탄한 듯이 "아암, 역시 그렇지."와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혼자서만 즐거워하자 불안해졌다. 형의 이름이 나오자 궁금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나 외에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었다. 니피가 먼저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역시나라뇨?"
 리처드는 소파에 앉아서 테이블에 있는 술은 한모금 마시고는 기쁜 듯이 말했다.
 "진품이라는 말이지. 아티펙트 중에서도 특별 취급하는 Special이란 뜻에 S가 붙은 블링크 슈즈는 그 사용자를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지. 로스차일드 양, 가끔씩 가문의 문장 브로치가 웅웅 거릴 때가 있었죠?"
 "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떨어대며 소리를 내었어요. 리처드도 봐서 알잖아요."
 "물론, 알지. 그것 말고도 예전에 「학교」에서 본 「검」이 있었는데 이건 우는 수준이 아니었고 잡고 있으면 말을 걸었지."
 니피의 두 눈동자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커졌다. 이 아가씨는 오늘 수차례 놀라는군. 물론 그녀를 보고 있는 내 눈동자도 똑같겠지만.
 "말하는 「검」?"
 "그래요. 말하는 검. 아니, 정확히는 사람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또 하나의 인격체라고 할 수 있죠. 한마디로 살아있는 것이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검은 블링크 슈즈와 같은 스페셜 아티펙트지. 현우 군. 잠시 눈을 감고 신발에 집중할 수 있겠나?"
 나는 갑작스레 남자와 여자의 시선을 받고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니피가 재촉했다.
 "어서 해 봐."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둠 속에서 리처드가 말했다.
 "편안하게 해야 해. 일단 편안한 심리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크게 심호흡을 해봐. 그리고 너의 신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껴야해. 그래, 내가 붙여준 그 왼발. 왼발이 느껴지나?"
 "네."
 "좋아. 그럼 그것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귀를 기울여봐."
 나는 시키는대로 온 감각을 발에 쏟아부었다. 심호흡을 크게하고 들이쉬고 마시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까까지만해도 장난을 치던 니피와 그 모습을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던 리처드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나도 모르게 뒤통수로 손을 가져가서 머리를 만져보았다. 살이 살아나고 머리카락이 자라난 느낌이 났지만 온전한 뒤통수가 만져졌다. 니피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 해? 뒤통수를 만지고."
 "응? 아니야."
 나는 얼버무리고는 손을 내리고 다시 집중했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 듯이 팔과 다리에 피부가 민감하게 느껴졌다. 나재인이 말하던 대자연의 기를 흡수한다는 복식호흡이라도 하는 듯이 등줄기를 타고 전기가 짜릿하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왼발까지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들자 나는 눈을 떴다. 기대에 찬 리처드가 말했다.
 "들렸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니피가 실망한 듯이 말했다.
 "에이, 뭐에요! 안된다고 하잖아요. 「숙련」을 써보라고 해요"
 리처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아냐, 현우 군이 거짓말로 블링크 슈즈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간이 크진 않아. 그러니까 「숙련」을 쓴다는 것은 기대하지 못하지. 일반인은 사용은 할 수 있지만 제어는 불가능하니까.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체인 블링크 슈즈에 기대를 해볼 수밖에. 현우 군, 다시 한 번 해봐요."
 리처드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를 믿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한 번 소름이 돋는 마냥 온몸의 감각이 눈을 떴다. 바늘로 쿡쿡 찌르 듯한 느낌도 들었고 벌레가 몸을 타고 기어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뇌성벽력처럼 들려오는 비명소리. 눈 앞에 번개가 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리처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세계정부!"
 계속해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두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카페의 열린 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마구 뛰어가고 있었다. 봄비가 여운을 남겨놓듯이 안개가 자욱하게 가라안장 있었지만 그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전혀 일관되지 않은 방향성. 그들은 여기 저기로 공포가 가득한 눈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카페에 있는 손님 중 일부는 뛰어가는 사람들을 따라 뛰기도 하고 일부는 밖을 살펴보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숨기도 했다. 벌벌떠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니피가 진원지를 가리켰다.
 "저기다."
 "서두르게."
 리처드가 앞장섰다. 그 동안에도 계속 비명소리와 총성가 들려왔다. 총성? 지금은 비가 내리고 나서 안개가 낀 아침이다. 이런 날씨에 총이라니! 우리가 달려가는 방향에서 사람들이 마구 달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비가 온 후라 시원하고 상큼한 빗물과 자연향이 나거나 도시의 삭막하고 서먹서먹한 아스팔트와 사람냄새가 나야하는 도시에 비릿한 피냄새와 시큼하고 텁텁한 화약냄새가 바람을 타고 밀려왔다. 이윽고 사람들의 등 뒤에서 무자비한 학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젠장, 소총과 방탄조끼를 맨 사람이라니.
 경찰들이 무장한 채로 사람들에게 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

 쓰다지쳐 쓰러져도~~


----------------

얼마만이죠? 하도 안쓰다가...... 미안해요. 안쓰려고 한건 아니에요. 맨날 이것만 켜놓고 보고만 있었...........


--------------




 난 매우 긴장한 상태로 경찰을 바라보았다. 지금 대로에는 경찰이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기에 시민들이 긴급히 대피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중구난방으로 도망가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치여 넘어지거나 차에 치이거나 다치는 등에 총기와 관련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경찰을 중심으로 대다수의 사람이 총에 맞아 신음을 흘리거나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안개가 이슬이 되어 그 시체에 맺혀있는 것을 총성이 떨어뜨렸다.
 탕!
 눈을 부릅뜨고 경찰을 본 내 코 앞에서 리처드가 손을 뻗었다. 소리와 함께 나타난 손은 특수 고무재질로 된 의사의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안개로 인해 충분한 빛을 받지 못한 그러나 날카로움을 번뜩이는 반사광 없이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메스가 있었다. 지금 그 끝에 무언가가 걸려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바닥을 구르는 총알을 보며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역시 세계정부로군."
 리처드가 기분 나쁘다는 목소리에 난 경찰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세계정부라고? 내게는 엄연한 한국 경찰로 보인다. 다만 그들의 용모가 매우 경찰답지 못하며 하는 행동은 인간답지 못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제복은 한국 경찰관의 것이었다. 그리고 권총이며 방탄 조끼까지 모두 경찰의 신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계 정부라니요? 한국 경찰관이자나요."
 여유롭게 고개를 돌려 나를 본 리처드는 안타까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 경찰은 시민을 학살하는 것이 업무라는 건가."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요. 그건 개같은 소리죠. 경찰이 시민을 학살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저건 뭐죠?"
 흘끗 바라본 경찰 중 일부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일부는 계속 총기를 난사하고 있었다. 추가적으로 늘어나는 사망 시민들. 그리고 총기를 우리에게 겨누고 있는 한국 경찰들! 나는 조금 전에 리처드가 총알을 막아내던 말도 안되는 상황과 다시 한번 발사될 것만 같은 총구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목구멍이 따끔따끔한 것이 칼이라도 입에 들이민 듯한 느낌이었다.
 "그, 그러니까..."
 "저들은 한국 경찰이 아니에요. 세계 정부입니다. 복장 때문에 착각했다면 스파이란 직업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다시 해야겠군요."
 나는 민망하게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는 싱긋 웃고는 경찰을, 아니 세계 정부 경찰을 보았다. 세계 정부 경찰이라고 하면 안되나? 단순히 복장만 경찰이고 소속은 세계 정부니. 리처드는 내 궁금증을 설명하듯이 말을 이었다.
 "세계 정부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거대 조직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저런 말단 조직원들은 경찰이 더욱이 아니고 용병도 아니죠. 좀비Zombie라고 들어 봤어요?"
 난 눈을 번뜩이며 답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산채로 잡아먹는 괴물 아니에요? 영화 24일 후라든가 레지던트 이블에 나오는..."
 탕! 리처드를 겨냥하고 있던 세계 정부원이 겨눈 총구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식겁해서 두리번거리다가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는 자신의 얼굴에  메스를 대고 있었고 바닥으로 이번에도 총알이 떨어졌다. 태연하게 리처드가 말했다.
 "그건 좀비가 아니라 구울Ghoul이죠. 좀비가 구울이 될수도 있지만 뭐 자세한 것은 다음에 알려주도록 하고 이걸로 확신할 수 있는 사항이 하나 생겼군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리처드를 바라보고 있자 즐거운 듯이 리처드가 말했다.
 "세계 정부의 개입이라면 현우 군의 친구인 괴력 소녀와 현우 군을 살해하려 했던 사부님이라고 했던가요? 그들의 정신 조종을 당했던 것입니다."
 옆에 있던 니피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이란 거예요?"
 "네. 아무래도 한국에는 의사Doctor가 와있는 모양이야."
 "이거.. 큰 일이네요."
 "로스차일드 양. 수고 좀 해줘야 겠어요. 현우 군? 저 좀비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에요. 그냥 간단하게 현우 군이 아는 구울인 좀비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일어날 일은 살인이 아닙니다. 퇴마입니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할 줄 몰라서 멍하게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는 내 표정에 만족한다는 듯이 말했다.
 "좀비는 정신지배가 가능한 아티펙트로 인간의 이성을 없애버리고 만든 인간이지만 괴물이에요. 그리고 그 정신지배형 아티펙트는 때로는 사람의 이성을 조종해 타인을 배반하거나 혹은 그 사람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부님과 괴력 소녀는 정신지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죠."
 나는 사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최대한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리처드는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좀비가 있다는 것은 사부님과 괴력 소녀 또한 정신지배를 받고 있고 그 지배자만 찾으면 원래대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부님이란 사람은 현우 군을 살해하려 한 것이 아니라 정신지배자가 그곳에 있던 현우 군과 더불어 리차드라는 나의 도플갱어 또한 처리하려 했던 것을 조종당했다는 것이죠. 저 좀비를 역추적하면 사부님이 정상이 된다는 말이에요."
 "아! 그렇군요!" 드디어 이해했다.
 "네. 그러니까 현우 군. 사부님과 소녀를 구해줄게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좋아요. 사부님과 채송화를 도와주신다니 저도 그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게요."
 "아티펙트 블링크 슈즈을 사용할 수 있게 숙련을 가르쳐드릴게요. 그러니 배워주시기 바랍니다."
 "아, 에, 에?"
 리차드는 싱긋 웃고는 정면에 보이는 경찰들을 향해 메스를 가볍게 휘둘렀다.
 "그럼, 일단 어떻게 현우 군의 뒤를 캐러나왔다가 이렇게 아무런 죄없는 사람들을 손대고 있는지 그 책임을 먼저 묻도록하죠. 로스차일드 양. 부탁해."
 "Yes, Master."
 니피는 손가락으로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투명하지만 눈에 보이는 가는 실이 브로치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왔다. 붉은 색을 가진 가는 실은 열기를 가지고 바람을 타듯이 주변을 잠식하며 퍼져나갔고 수십 갈래가 순식간에 수백 수천 갈래로 뻗어나가며 주변에 안개를 먹어가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기쁘다는 듯이 미소짓고는 말했다.
 "니플헤임이 왜 안개의 나라인지를 보여줄 것 같군요, 현우 군."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저 지켜만 보았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실들은 얽히고 얽혀서 점점 굵어지기도 하고 그대로 가늘게 뻗어나가기도 했다. 전방에서 사납게 총기를 난사하던 경찰들은 이 낌새를 알아차리고서 우리를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냥했다. 집중사격이라도 하듯이 발사하려하자 나는 기겁하며 몸을 낮췄다. 쪼그려앉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위를 살펴보니 리차드와 니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앞을 보고 있었다. 나는 경찰을 보았고 그들이 쏜 총알이 날아오다가 니피의 브로치에서 뻗어나간 실에 얽혀버린 것을 보았다. 멀리서도 빨간 점으로 보일 정도로 달아오르는 총알은 터질것처럼 진동을 했다. 그러다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니피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라져버려!"
 갑자기 거칠어진 실타래들이 휘리릭 소리를 내며 풀리듯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경찰에게 날아갔다. 세계 정부라는 경찰들은 인간답지 않은 반응을 보이며 총을 마구 난사했지만 계속해서 다른 실에 얽혀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경찰을 붙잡은 붉은 실은 경찰들을 휘감기 시작했다. 고치로 만들듯이 휘감기 시작한 실에서부터 모락모락 김이 나기 시작했다. 먼 거리에서도 알 수 있는 그것은 수증기였다.
 "저것은 초고열의 극세사입니다. 인간의 몸으로는 절대 견뎌낼 수 없는 열기를 갖고 있죠. 닿는 즉시 녹아버리다 못해 인간은 80%로 된 수분이 증발해버리는, 액화와 기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장관을 보여주는 능력이죠."
 좀비의 몸에 닿은 극세사는 점점 좀비의 몸을 조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닿는 부분에서부터 일정하게 수증기가 계속해서 뿜어져나오고 경찰들의 얼굴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수분을 잃고 몸이 녹아내리는 것이 실이 닿는 부분을 중심으로 헤괴망측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니피는 그런 모습에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듯이 브로치를 잡은 손을 휘젓다가 움켜쥐었다.
 그러자 사방으로 풀려져 있던 실들이 좀비들의 몸에 칭칭 감기더니 엄청난 압력으로 뭉쳐버렸다. 대여섯명의 좀비들은 순식간에 신체가 터져나가고 일부의 몸은 녹아내렸으며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안개 같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있었다. 리처드가 덧붙이자는 듯이 말했다.
 "아, 그리고 현우 군. 니플헤임은 지하의 나라라는 뜻도 있다고 했죠?"
 "네, 그게.. 아!"
 니피가 움켜쥔 손을 풀어버리자 터져나갔던 좀비의 신체로 실들이 살포시 내려 앉으며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모든 좀비의 몸이 녹아버리고나자 니피가 주변을 향해 외쳤다.
 "부끄러워 대역이나 내놓는 녀석이 감히 로스차일드 가문에 인사라도 할 수 있을까보냐!"
 나는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몰라 주변을 두리번 거리자 리처드가 갑자기 옆으로 팔을 휘둘렀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아침에 은은한 건물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이 움직였다. 벽에서 기댄 몸을 세운 그는 손에 들린 것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인사가 상당히 거치시군요. 니플헤임 아가씨. 아니, 니피라고 불러드릴까요?"
 상당히 경계한 니피가 다시 브로치로 손을 가져가려 했다. 리처드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상당한 실력이군. 세계 정부에서 나오셨나?"
 "하하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처드 씨야말로 대단한 관찰력을 가지셨더군요. 보이지 않으셨을 텐데 말이죠."
 리처드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거나 다친 사람 외에는 모두 의심하게 되지 않겠나?"
 "아아, 그렇다면 제 불찰이었군요. 다음에는 숨어있지 말고 다친 척을 해야겠군요."
 "그래, 그리고 하나 더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는데."
 "뭐죠?"
 리처드는 의사 가운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넣은 그는 마치 담배라도 꺼내는 듯이 손을 움직이며 말했다.
 "한국에서는... 어른하고 대화 할때는 얼굴은 보이고 하는 것이야!"
 갑자기 쏘아져 나간 섬광은 총성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뭐가 날아갔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살인적이고 위험한 것인지는 건물 그림자에 가려진 곳에 박힌 무언가가 내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림으로서 알 수 있었다. 푹 퍽퍽. 마치 주먹으로 벽을 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리처드가 던진 것들이 모두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바닥을 따라 검은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니피는 기뻐했지만 리처드는 고개를 저었다.
 "피했어. 네가 좀비를 조종하는 녀석인가 보군."
 그림자 속에 있던 남자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회사원 복장을 한 남자는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고 그 사람의 등에는 네 개의 검고 붉은 자국이 있었다. 리처드가 던진 메스가 저 남자의 몸을 관통했던 모양이다.
 "정확하시네요. 휘유. 자칫 잘못했으면 이곳에서 송장을 치를뻔 했군요."
 "뒤!"
 이번에 들린 목소리는 뒤에서였다. 니피가 당황해서 뒤를 보며 브로치를 잡았다. 아직 그녀를 중심으로 다시 붉은 실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그녀는 언제라도 그 기술을 다시 사용할 모양이었다. 리처드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흰 블라우스에 핫팬츠를 입은 매력적인 여성이 서있었다. 그녀는 잿빛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어 고개를 움직일때마다 머리가 찰랑거렸다. 니피가 중얼거렸다.
 "리차드. 누구죠?"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의사는 아니군."
 포니테일 여자는 전혀 놀라지 않은 표정으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향해 말했다.
 "반갑습니다. 니플헤임 로스차일드 아가씨. 리처드 레이갈드 마술사.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리처드가 대뜸 말했다.
 "하현우 군이다."
 "아, 예. 하현우 군. 저는 사라 드라이지네라고 합니다."
 "독일인이로군." 리차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독일에 오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 내 독일 친구 딸 이름이 사라다."
 "그런가요? 어쨋거나 반가워요. 사라라고 불러주세요. 한국에서의 예절은 아직 잘 몰라서 어른과 이야기 할 때는 얼굴을 대하고 말하는 줄 몰랐습니다. 이해해주세요. 하지만 리처드 씨의 메스는 너무 무서운걸요. 역시 의사인 형에게 배웠기 때문인가보죠?"
 가운에 손을 찔러 넣은 리처드는 천천히 손을 꺼냈다. 사라는 빙긋 웃는 모습으로 전혀 경계하지 않았지만 나는 움찔했다. 다시 리처드의 손이 나옴과 동시에 메스가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처드는 천천히 메스를 하나 더 꺼내서 날을 보다가 사라에게 말했다. 리처드의 가운에서 메스가 계속 나오다니... 도라에몽의 주머니인가?
 "내 앞에서 그 새끼가 내 형이라고 말하지 않는게 네 신상에 좋을 거야. 지금 그게 또 다른 좀비라해도 다음 좀비도 죽이고 계속 죽이서 네 실체를 찾아내 없애버리고 말테니까."
 사라는 싱긋 웃으며 무섭다는 듯이 양팔로 몸을 감쌌다. 가녀리게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내게는 리처드를 조롱하는 듯이 보였다.
 "어머, 어떻게 그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거죠? 알았어요. 리처드 씨에 대한 정보라면 언제나 조심하라고 되어 있었으니까요."
 "쓸떼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무슨 용건인지 밝혀라. 세계 정부의 개야."
 사라는 슬픈 표정을 웃으면서 지었다(어떻게 웃으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 지는 말하지 말라.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세계 정부의 개라니요. 너무하세요. 리처드처럼 멋진 남자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너무 슬퍼요. 하지만 리처드 씨는 아주 매력적인 남성이니까 제가 왜 여기에 왔는지 설명해 드릴게요. 리처드 씨가 제자인 니플헤임 양과 한국에 온 이유가 아티펙트가 발견됬기 때문이죠? 저희도 그 소식을 접하고 왔답니다."
 리처드는 메스를 튕겨서 받다가 놓쳤다. 그러나 메스는 자연스럽게 리처드의 가운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 주머니를 뚫고 바닥에 꽂혀야 할 메스가 주머니에 들어가자 미동도 하지 않다니, 정말 도라에몽의 주머니 아니야? 리처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개가 냄새 맡고 우리의 뒤꽁무니를 따라왔구먼. 뭐 하나 얻어먹을 게 없나 하고 쫓아오다니. 그래서 아티펙트는 찾았나?"
 "아, 그게 말이죠. 아티펙트의 사용 흔적은 찾았지만 아직 아티펙트를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인근에 보니 장미 공원이라고 있더라구요. 그곳에서 텔레포트의 흔적을 발견해서 추적한 결과 텔레포트를 사용한 아티펙트가 블링크 슈즈라는 것을 알아냈답니다. 놀랍죠?"
 놀란건 나였다. 내가 입을 쩍 벌린 상태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난 그대로 고개를 돌려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 옆에서 고개를 돌린 니피와 눈이 마주치자 니피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이지? 말하지 말라는 건가.
 "상당히 놀라운 사실이군. 그래서 블링크 슈즈는 찾았나?"
 사라는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보는 사람마저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감정이 전달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니요. 블링크 슈즈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추적하는 중에 다른 사실을 알아냈어요. 어제 여기서 3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아이파크라는 아파트의 20층이 폭파했었습니다. 한국 경찰들이 자꾸 방해를 하길래 몇 놈을 정신지배 하에 두었죠. 그러니까 일이 쉽게 풀리더라구요. 그리고 알아낸 바로는 이 도시의 경찰은 한국 마피아가 지배하더군요. 조직폭력배라고 하나요? 그들이 어제 정부 회사로부터 고용되어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그게 블링크 슈즈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저, 저기!"
 나는 사라의 말을 듣다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다. 그저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말한 것이라 이것이 내게 줄 문제나 지장에 대해서는 전혀 계산도 생각도 없이 순수한 의문을 쫓는 말이었다. 아이파크 20층. 이모의 집이었다.
 "그, 폭파 되었다는 아파트는 어떻게 되었죠? 거기 혹시 다른 사람은 없었나요?"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꼬아서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대뜸 떠오르는 대로 말했더니 질문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사라는 크게 의아해 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 그 집은 현재 경찰의 수사 하에 있어요. 거기 사는 사람은 경찰에 취조를 받고 있고 다른 사람이라... 폭발이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그 집에 갔던 목격자의 증언대로라면 다량의 혈흔이 있었고 괴력에 파괴된 구조물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없었대요. 근데, 왜요?"
 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서야 이성이 돌아가고 머릿속에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사부님과 채송화는 그 집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있던 리차드와 경찰 서장 그리고 서장의 부하들도 없었다는 것은 문제지만. 그리고 이모는 취조 중이라고 했지만 안전할 것이다. 서둘러서 찾아가봐야 겠다. 이모가 걱정하겠군. 나는 사라에게 안타깝다는 듯이 말해주었다.
 "아, 그게 뉴스에서 봤거든요. 어제 폭발이 생기고 나서 오늘 아침 뉴스에 나왔어요.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궁금했거든요."
 사라는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리처드와 니피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가 말했다.
 "아, 그랬어요? 근데, 그 아파트 폭발 사건은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는데요?"
 나는 흠칫하고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는 크게 표정이 바뀌거나 하지 않았지만 니피는 상당히 걱정스럽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했군. 리처드가 말했다.
 "다른 기사였던 모양인가 보다. 여기 온 이유는 잘 알겠군. 무엇보다 아티펙트 블링크 슈즈가 한국에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거 큰 수확이로군. 본격적으로 조사해봐야겠어. 살려줄테니 이만 가라."
 "아, 네. 리처드 씨. 이번에는 그냥 갈게요. 근데, 다음에는 조심하셔야 되요."
 사라는 순순히 물러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니피에게 물었다.
 "좀비니 뭐니해도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인 상대를 그냥 보내도 되는 거야? 살인자잖아."
 니피는 나를 보며 신기한 생물을 본다는 듯이 말했다.
 "살인자라고? 자동차가 사람을 친다고 자동차보고 살인자라고 하니? 칼에 찔려 사람이 찔려 죽었다고 칼보고 살인자라고 하니?"
 "그러니까, 사라라는 여자가 좀비로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좀비든 사라든 살인자잖아!"
 "그래. 좀비는 살인자라 할 수 없지만 사라는 살인자지. 하지만 곧 덮여질거야. 리처드가 그랬잔아. 세계 정부의 개라고. 이건 악의를 가진 경찰들의 반이성적인 테러행사로 기억될거야. 어쩌면 저 경찰들은 동남아시아의 한국 같은 작은 나라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한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이 있다며? 인간 대우 못 받는."
 나는 착잡해졌다. 니피의 말은 맞지만 그래도 세계 정부니 뭐니해서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이렇게 두고만 봐야 하다니! 말도 안 돼! 어떻게 사람의 죽음을 그렇게 방관할 수 있단 말이야! 난 니피에게 소리쳤다.
 "제기랄!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용납할 수 없어. 저 여자를 잡아서 경찰에 넘겨야 해."
 "경찰은 사라가 정신지배로 이미 자기 손에 넣었다고 했잖아."
 "빌어먹을!! 그래도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다고!"
 나는 씩씩거리면서 몸을 돌려 사라에게 걸어갔다. 사라는 조신한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서 걷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라에게 곧장 다가가는 나를 니피는 말리지 않고 따라왔다. 나는 사라를 향해 외쳤다.
 "저기, 사라 씨!"
 50m 정도로 가까워지자 나는 사라를 불렀다. 사라는 뒤늦게 반응하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시익 웃는 표정이었다. 나는 가식적인 그녀의 얼굴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싶었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분노가 치밀었다.
 "무슨 일이시죠? 이름이..."
 "하현우. 당신이 죽인 사람에 대해서 책임지세요."
 사라는 니피가 나를 보던 모습 그대로의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마디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좀비인지 정신지배인지로 시민들을 죽였잖아요! 사람의 생명이 그렇게 한낱 도구로 쓰이고 버려지고 죽여도 되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줄 압니까?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고귀하고 존귀한 것인데, 살인을 저질렀으니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세요!"
 "음, 아, 예.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살인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것이군요?"
 "네."
 비록 사라가 살인에 대한 책임을 진다 하더라도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오늘 아침 이 대로를 걸어가고 있었을, 혹은 누군가를 만나거나 회사에 출근하고 있었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단지 여기를 지나가고 있었다는 것. 그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잘못은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라가 저지른 행위다. 사람을 조종하여 사람을 죽이는 행위. 그 이유가 무엇이었고 목적이 뭐였든 간에, 그것은 나쁜 일이다. 우리 형은 내게 그렇게 가르쳤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라고.
 "좋습니다. 책임을 지도록 하죠. 보통 살인은 경찰서에서는 그에 따른 법적 처벌로 형벌에 취하는 게 마땅한데, 제가 죽인 사람이 대략.. 수십 명이니 저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이겠군요?"
 사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니 나는 오히려 당황했다. 흠칫하며 사실에도 응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라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니 이렇게 하도록 하죠."
 "어떻게.. 읍!"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사라는 단지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고 그 눈은 지그시 먼곳을 응시하면서도 내 눈과 마주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눈동자가 거울이 된 것처럼 그 안에 내 모습이 비쳐지더니 이제 그 또렷한 형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분명한 내 모습이지만 사슬이 속박되어 있는 모습. 그리고 어느새 나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단지 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책임을 요구하였으니 당신의 책임도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하현우 군. 자살하십시오."
 내 팔이 멋대로 내 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라의 명령대로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리처드가 말한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것인가. 정신지배라고 하여 내 정신을 지배하고 내 몸을 멋대로 움직이게 하는 그것인가. 나는 사라의 명령에 거부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식은 땀만 흘리는 상황에서 팔은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내 목을 움켜쥐었다. 그 힘의 강도가 점점 강해짐에 따라서 숨이 턱하고 막혀오고 아픔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니피가 사납게 말했다.
 "사라. 그만해. 현우를 놔줘."
 어느덧 사라 주변으로 붉은 실들이 퍼져 있었다. 사라는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나를 가리켰다.
 "이런, 위험하군요. 하현우 군. 이리오십시오."
 나는 사라의 명령대로 사라에게 다가갔다. 부드러운 여성의 신체 촉감이 느껴질정도로 나는 사라를 껴안았다. 아아, 이건 명령이다. 그래, 절대적인 정신을 지배당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명령.
 "하현우 군. 껴안으라고 명령한 적은 없습니다. 떨어지고 앞에 서십시오."
 "현우야, 그냥 죽을래?"
 난 입을 벙긋거려보았다.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맞나? 니피에게 말했다.
 "니피. 몸이 멋대로 움직여. 도와줘."
 니피는 상당히 불만이 있는 듯이 볼을 부풀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손가락 까딱였다. 니피의 손가락 위로 불꽃이 만들어졌다. 파란 불꽃. 니피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레드 썬!"
 "니플헤임 양. 그것은 최면이군요."
 "흥. 현우야, 이리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런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오, 몸이 이제 움직여진다. 나는 니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 사라를 보았다. 사라는 싱긋 웃으며 우리 둘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기쁘네요. 멋진 커플이 탄생할 것 같아요. 그런데, 현우 군. 이리오세요."
 "에, 예? 뭐라고요. 어?"
 내 몸이 사라의 말에 반응했다. 나는 사라에게 걸어갔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