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글만쓰는 것과, 하루의 반은 글을 쓰고 나머지 반은 아프리카 방송으로 고전 게임을 하는 것을 비교해봤을 때, 후자가 더 능률적이더군요. 역시 가만히 글 쓰는 것은 제게 적성이 맞지 않나 봅니다.. 그래서 2/1이 늦었다는 겁니다. 절대 변명이 아닙니다.
-----------------
의식이 몽롱한 것이 내 것 같지 않았다. 왼발이 붙어있다니! 저건 분명히 리차드의 중력총에 맞고 터져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다치지 않았던 것처럼 왼발은 정상적으로 붙어있었다. 심지어 신발까지 신고 있었으니 무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발바닥을 세웠다가 눕혀보았다. 오! 이번에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신발 안에서 부드러운 양말의 감촉이 느껴지며 발가락들이 춤을 췄다. 정상이군.
난 그대로 침대에서 몸을 돌려 바닥에 두 발을 대었다. 자, 대망의 시간이다. 이건 마치 어려서 처음 걸음마를 떼는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이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건한 두 다리로 서있어야 할 나는 약간의 공포를 느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짝다리를 짚고서 서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의심 반과 불안 반을 소쿠리에 넣고 적당히 섞은 다음에 믹서기에 넣어 갈은 것을 내 머리에 골고루 뿌려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몸의 중심을 조금씩 왼쪽으로 이동시켰다. 된다. 서있을 수 있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두살박이 아이들도 처음에는 서는 것에 대해서 걱정했겠지. 그리고는 곧장 자신의 몸에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우게 되었을 테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지금 내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 요상하게 움직일리가 없다. 아까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신중하게 왼발을 내디뎠다. 성공이야.
그리고 나는 잠시간 동안 방안을 돌아다녔다. 내 걸음소리가 방밖에 오는 빗소리와 함께 리듬감있게 들렸다.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여,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에 감사할지니.
난 방안을 둘러보다가 메스를 보았다. 리처드의 것으로 추정되는 메스는 하얀 천 위에 놓여 있는데 그 숫자가 무려 8개나 되었다. 크기와 길이가 다른 메스들은 제각각 용도가 다를 것이 분명한대도 내게는 다 비슷해 보였다. 이건 이모의 이태리 레스토랑 식당에 처음으로 찾는 손님들과 같은 기분이겠군. 처음으로 레스토랑에 간 사람들은 코스요리를 시키면 나오는 포크와 나이프 그리고 스푼이 총합 6개나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는 에피타이저용, 스프용, 스파게티와 스테이크용 포크 및 나이프나 쓰푼의 용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스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밖은 우중충한 날씨로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메스가 반짝거리는 것은 방안의 조명때문이다. 반짝거리는 물건을 보고 호기심을 갖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메스를 집어보았다. 들어서 보니 날이 상당히 날카로웠다. 장난삼아 손가락을 베면 베인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붉은 피가 나오겠지? 나는 섬뜩해서 메스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주방은 아기자기하게 작게 꾸며져 있지만 있을건 다 있는 형태였다. 버너와 싱크대 옆으로는 조리대가 ㄱ자 모양으로 있어서 요리하기 편하게 되어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커피 포트와 각종 커피들. 색이 다르고 크기가 다른 커피콩이 담겨진 유리통이 여러개 눈에 띄었고 나는 그것을 구경하다가 주방에서 이어진 거실로 이동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띈 것은 푹신한 소파와 카펫이었고 그 앞에는 TV가 있었다. 거기다가 벽에는 각종 그림들과 조각품들. 이거 웬만한 집 안부러울 정도로 좋은데. 이모의 집은 이 이상이지만 그래도 그건 이모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 가정집은 그것에 못미친다고 알고 있다. 그 예로 채송화가 지내는 사부님의 도장 방은...
나는 갑자기 가슴이 턱 하고 막힌 기분이 들었다. 사부님과 채송화. 괴력을 쓰는 채송화는 내가 그간 봐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부님이다. 어떻게, 자신의 제자였던 나를 죽일 작정으로 수류탄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수류탄의 출처가 어딜지 궁금했지만 경찰의 것을 훔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경찰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리고 리차드가 나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던진 것일까. 그렇다면 이건 마치, 저놈에게 죽으면 내가 억울하니 내가 죽여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이래나 저래나 죽게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가 그곳을 빠져나오게 된것에 감사했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거지? 흑백 TV를 보는 것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서는 텔레포트라는 것을 들은 모양이다. 내 방에 컴퓨터는 없을 지언정, 나재인의 집에서 게임을 해본 내게 텔레포트가 뭔지는 당연히 알 수 있다. 블링크라는 것은 몰랐지만 텔레포트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텔레포트Teleport. 텔레포테이션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순간 이동을 뜻한다. 순간적으로 어딘가를 이동한다는 개념으로 공간을 뛰어넘는 마법. 그렇다면 내가 마법을 쓴 것인가 싶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도 아닌데, 마법이라니. 아니면 이 신발이 마법 물건인가. 그렇다면 리처드의 말로 미루어볼 때 이 신발은 일반 마법 물건이 아니라 아주 좋은 그러니까, 게임 용어로 레어나 유니크가 될 것이다.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TV 옆으로 보이는 계단으로 걸어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벽 옆으로 나 있는 그림들 중에는 이모의 집에서도 보았던 그림들도 있었다. 정확히 그린 것은 다르지만 그 느낌과 그림채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는 정확히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인지 까지는 몰랐지만 비싸다라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계단으로 내려가는 데, 그 밑에서 생기발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피의 목소리였다.
"아저씨. 현우가 신고 있던 신발 말인데, 그거 「블링크 슈즈」아니에요?"
"이 아가씨 눈이 날이 갈수록 정확해지는구먼. 이거 스승으로서 매우 기뻐해야 정상이겠지만, 어째 나는 씁쓸해지는 군."
스승이라고? 리처드가 니피의 스승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둘의 관계는 사제관계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로스차일드 가문가의 계약이라는 것은 리처드가 니피의 스승으로 있다는 계약일 것이다. 니피가 놀리듯이 말했다.
"히힛. 청출요람. 맞나요?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 제가 벌써 그렇게 되서 걱정이죠? 헤헤."
"하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네. 요 아가씨야. 『순자荀子』라는 책에 나오는 말로,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지. 그나저나 로스차일드 양은 내가 준 순자라는 책을 읽어봤나 보군?"
"흥! 리처드 아저씨만큼은 아니라도 저도 책 많이 읽거든요? 각박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아저씨잖아요. 그리고 말돌리지 말고 이야기해줘요. 그거 블링크 슈즈 맞아요?"
"그래. 세상에서 없어졌다고 알려진 아티펙트. 「블링크 슈즈」지."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박수로군. 니피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기뻐했다. 왜 기뻐하는 거지?
"우와! 대단해. 내가 블링크 슈즈를 직접 눈으로 보다니. 이탈리아의 테스토니 구두인줄 알았으면 미리 좀 사둘껄 그랬네요. 하지만 색이 좀 특이했어요. 어떻게 갈색이어야할 구두가 빨간색이죠?"
"로스차일드 양의 눈에는 명품 구두인 테스토니 구두로 보인 모양이구먼. 거기에 빨간색 구두라니. 그런게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에이~ 제가 직접 눈으로 봤잖아요? 블링크 슈즈는 빨간색 테스토니 구두였다구요."
"하지만 내 눈에는 오래되고 낡은 등산화로 보였다네."
"에, 예에? 마, 말도 안 돼!"
"말이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블링크 슈즈를 보는 사람의 문제지."
"그게 무슨 말이죠?"
"블링크 슈즈 정도 되는 물건은 이미 그 형체와 형태를 잃어버린 아티펙트야. 필요에 따라서는 말이 쓰면 편자로 보이고 개가 신으면 개신발처럼 보일 정도지. 그러니 로스차일드 양 눈에 붉은 테스토니 구두로 보인 것과 내 눈에 낡은 등산화로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난 신발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눈에는 흰색 스니커즈 화에 검은색 운동화 끈으로 된 편안한 신발로만 보인다. 아무래도 형이 신었을 법한 신발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지만 어쨋거나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신발이라는 것은 확실하군. 리처드도 그 말을 했으니까. 리차드를 떠올리니 갑자기 등골이 서늘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니피가 무언가를 보여주는 듯이 놀라며 말했다.
"하, 설마.. 그럼 이 브로치도!"
"이 불쌍한 아가씨에게 실망과 슬픔을 안겨줘야하는 책임과 자격을 가진 스승으로서 누려야할 큰 기쁨이자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다."
"아, 말돌리지 말고 그냥 안 된다고 해요."
"로스차일드 가문의 상징이 그려진 그 브로치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고부터 이후에 생겨난 아티펙트입니다. 따라서 기원전으로 흘러가 만들어진 아티펙트인 블링크 슈즈에 견줄 수는 없는거죠. 아시겠죠, 로스차일드 아가씨?"
"피. 그럼 리처드. 어쩔거죠?"
"무엇을 말인가요."
"리처드가 찾는 아티펙트는 아니지만 블링크 슈즈를 이용하면..."
"그만해. 나는 저 블링크 슈즈를 빼았고 싶지 않아요."
"하, 하지만. 리처드."
"로스차일드 양. 누군가 아가씨의 그 브로치를 빼았으려 한다면 아가씨 기분이 어떻겠어요?"
"기분이고 자시고간에 그런 놈은 내 손으로...!"
"거봐요. 로스차일드 양 뿐만 아니라 아티펙트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에요. 특히 일반인의 경우는 그 진가를 모르겠지만 우리들이라면 타인의 목숨을 손쉽게 앗아서라도 지키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러니까 저는 블링크 슈즈를 빼앗고 싶지 않아요."
"진가를 아는 만큼 갖고 싶기도 하잖아요... 혹시, 죽기 싫다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어요. 블링크 슈즈에 살상력은 떨어지지만 활용 능력은 그 모자란 살상력을 매구고도 남으니까요. 무엇보다 저 신발의 원래 주인은 현우라는 소년이 아니거든요."
"현우가 아니라니요?"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아니라면...
"그건 하백이라는 남자죠. 잘 알죠?"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보인 카페 내부에만 해도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카페에 흐르는 은은하게 퍼지는 클래식들로 인해 카페는 조용하지 않았음에도 침 넘기는 소리는 바로 옆에서 듣는 것 만큼이나 잘들렸다. 니피가 말했다.
"설마..."
"네, 맞아요. 그러니까 로스차일드 양. 블링크 슈즈에 대한 욕심은 포기하는 게 좋아요.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알겠죠?"
"헤에, 반짝이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라 이거죠? 현우의 외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겠군요."
"그렇죠. 그리고 하나 더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뭐죠?"
"아하~"
"해보시겠어요?"
"응."
니피는 기쁘게 대답하고는 무언가를 했다. 나는 무엇인지 궁금해서 계단 옆의 사각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보았다. 니피는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갑자기 카페의 온도가 높아지는 것 같은데..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아, 뜨겁다.
"아, 뜨뜨뜨뜨!!"
난 등이 화끈거리면서 뜨거워서 보았다. 이런, 등에 불이 붙다니! 작은 불은 어느덧 타고 있었고 그 열기로 내 등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카페에 뛰어들자 손님들이 놀란 표정으로 날 보며 소리쳤다. 불이야, 불이야! 내가 할 소리야!
"불이야아!!"
"Walls have ears! 한국 속담으로는 낱말은 새가 듣고 반말은 쥐가 듣는 거군요?"
"틀렸어, 여기서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라는 속담을 써야지. 것보다 현우 군, 이크. 그건 물이 아닌데."
"으아아아아!!"
남의 등에는 불이 나서 카페를 휘젓고 다니면서 소화기를 찾는데 누구는 느긋하게 잡담을 하고 있다. 것보다 무슨 놈의 카페에 소화기가 없는 거지? 여기는 불이 안난다는 말인가, 아니지! 지금 내 등에 불이 났잖아! 나는 다급히 리처드가 마시고 있던 것을 등에 부었더니 불이 가속이 붙었다. 그러자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났다. 머리가 후끈거린다. 니피가 손가락질을 하며 내 머리를 가리켰다.
"우와! 초사이어인이다."
머리가 불에 붙자마자 눈에 뵈는게 없어졌다. 난 나도 모르게 리처드에게 달려들려다가 날아드는 주먹에 피하고 말았다. 사람이 급해서 도움을 요청하려 했는데, 때리려 하다니! 몰인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난바닥을 데구르르 구르고 나서 고개를 들고 앞을 보자 니피가 나를 보며 웃었다. 딱 소리가 나도록 니피가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As yo sow, so you reap."
"그 뜻은?"
니피가 베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뿌리고 때린다!"
"땡... 자업자득自業自得. 뿌린만큼 거두는거지. 때리긴 뭘 때리나요."
"히잉... 한글은 너무 어려워요!"
난 니피와 리처드가 잡담을 하는데도 갑자기 사라진 뜨거움에 놀라 뒷통수를 잡아보았다. 아직 진동하는 머리카락 타는 냄새에 코가 욱씬거렸다. 여전히 뒤통수에 불이 있는마냥 뜨거운 열기는 카페에 가득차있었다. 겨우 진정된 상황이 되자 카페에 사람들은 가지각색이었다. 누구는 휴대폰 동영상 기능으로 내 모습을 찍으면서 "저것이 말로만 듣던 자연 발화인가봐!"라고 헛소리를 짓걸이고 있었고 누구는 "불이야, 사람살려!" 라면서 카페를 뛰쳐나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그나마 현실적인 사람은 카페에 있는 주방으로 뛰어들어 양동이에 물을 담아와서는 불이 다꺼지고 남은 내게 들이부었다.
어푸어푸. 니피야. 이것은 바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야!
-------------------------- 이어서 계속... 2/1은 조금 더 쓰고 싶어서요.
요즘 생각한 건데 말이죠.... 큐빅 하나쯤은 사서 하루정도 공부하면 해볼만한 거 같아요. 물론 기본 공식으로만 해야겠지만요... 그래서 전 기본공식밖에 모르다는거... 겸손해집시다..!
------------------------------------------------------
창세기전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창세기전 3 Part 1 크림슨 크루세이더. 시반 슈미터 살라딘. 시청자의 염원에 의해 강력한 전직이 아닌 무작위 전직.. 뭐가 될지 저도 궁금하군요... 엔딩은 볼 수 있을런지... 허허
------------------------
"진짜라니까?"
"나도 봤어! 머리가 홀랑 타버린 것이. 불이 났었다니까요."
사람들은 경찰관과 119 구조대원에게 아까의 경위를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내가 태연하고 별 탈이 없이 서서 그들을 바라보니 경찰관과 구조대원은 믿지 않았다. 마치 장난전화를 받은 듯이 의아해하고 몇 가지를 조사하던 경찰관이 빗속으로 떠나자 구조대원도 따라서 떠나버렸다. 비오는 날에 화재라니. 믿겨지지 않는 다는 표정의 구경꾼의 관심 속에서 제일 먼저 전화하던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젊은이. 괜찮아?"
"네. 무슨 일이 있었나봐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과 태도로 그에게 능청스럽게 대답해주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닌데라고 연신 말하다가 자기 일행에게 돌아갔다.
뒤에서는 니피가 키득키득 거리고 있었다. 리처드는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미소만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리처드를 보며 말했다.
"됐나요?"
"이제보니 현우가 연기 실력이 뛰어나구먼. 이대로 연예계로 진출해 보는 것은 어떻겠나?"
난 조금 전에 있었던 믿기 어려운 일들을 떠올리며 리처드가 장난을 치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에 응하게 대답해주었다.
"물론, 제 미모와 연기 실력이 너무나도 출중해서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세계적으로 크나큰 인력과 재능의 손실이라는 안타깝고 아쉬운 역사적인 사실뿐만 아니라 제가 연예계에 있음으로 인해 앞으로의 연예계의 추후 방향이 오로지 저에게만 집중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 아쉽네요. 무엇보다 저는 지금의 연예사가 좋아서 말이죠."
리처드는 씨익 웃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기웃거리는 카페 입구로 나갔다. 문에는 Close라고 적힌 팻말이 있었는데 그것을 돌려 놓고 왔다. 내가 보고있는 쪽에서 Open이라고 써있으니 밖에서 보면 반댓말이 보이겠군. 리처드가 주방으로 가서 양주를 가져오는 동안 니피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상당히 부담스러워 그 시선을 피하고 밖을 보다가 흘끔 니피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할 말 있어?"
"응. 아주 많아."
"그럼, 내가 먼저 질문을 하고나서 대답을 해줘. 그리고 나서 그 할 말을 들어 줄게."
니피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소파에 편히 기대었다. 카페에 소파라니. 손님들이 쓰라고 있는 소파가 아닌 주인인 니피와 리처드가 쓰기 위해서 가져다 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나 당연한 듯이 니피가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진 않겠지. 나를 빤히 쳐다보는 니피가 턱짓을 했다. 먼저 질문하라는 뜻이다.
"먼저 이곳에 소화기가 없는 이유는 너 때문이야?"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니피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난 머리를 글쩍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불이나면 소화기로 불을 끄잖아. 근데 너는 손가락을 튕겨서 불을 껐잖아. 그거 진짜냐고."
"당연한걸? 너한테 불을 붙은 것도 난데."
나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양쪽에 놓인 소파와 그 옆에 놓인 스테인리스 의자. 그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탱 하고 소리를 냈다. 나는 달려들듯한 눈빛으로 니피를 쏘아보았다.
"왜 그랬어."
"아저씨가 말했잖아. 자업자득이라고. 보통 누가 이야기를 엿듣고 있으면 의심하기 마련이고 나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거든."
눈이 벌개지도록 화가난 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가 천천히 말했다.
"2층에서 내려올 사람은 나밖에 없었잖아! 그리고 카페에는 나외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엿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안해봤어?"
니피는 다마신 커지판을 손에 들고 빙글 돌렸다.
"만일 엿들으려고 작정한 사람이라면 2층에 잠입해서도 들을 수 있지. 무엇보다 카페에 들어올 때부터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는 다 알아볼 수 있다고. 요건 장식이 아니거든."
자신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니피는 히죽 웃었다. 귀엽게 생긴 소녀가 귀엽게 군다고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수는 없다. 누구는 그 불때문에 머릿가죽이 홀라당 타버리고 머리카락이 다 없어지는 줄 알았다고! 하지만 난 궁금한 다음 질문을 위해 앞의 문제는 넘기기로 했다. 나는 쓰러진 의자를 세우고 다시 앉았다.
"그렇다면 리처드의 그 손은? 어떻게 내 머리와 머리카락 뿐만아니라 옷까지 원래대로 된거지?"
니피는 고개를 돌려서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는 양주를 잔에 따르고 얼음을 옮기고 있었다.
"리처드. 나 에스프레소 더 줘요. 그리고 「왼손」에 대해서 말해도 되요?"
"얼마든지. 현우는 내 왼손에 신세를 많이 졌으니 알아둘 필요가 있지."
리처드가 커피포트로 가는 모습을 보고 니피는 손가락에 키스를 하고 리처드에게 날려주었다.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니피가 내 발목을 흘긋 보고 말했다.
"그 왼발. 터져나갔었지?"
난 왼발이 터져나갔다는 사실을 니피가 알자 당황했다. 그녀에게 말한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아는 거지?
"그, 그런데?"
"그것도 리처드가 치료해준 거야. 왼발을 붙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에게 머릿가죽이나 머리카락이 복원된 거가지고 놀라는 건 그 사람을 얕잡아 보는 거지. 초밥 요리사에게 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놀라는 것과 같지. 알겠어?"
머릿속에서 두 세번 니피의 말을 곱씹어 보고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피는 양발을 소파 위에 얹었다.
"그럼 내가 질문해도 되?"
뭔가 이해가 되지만서도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치료를 해줄 수 있으니 치료를 해주었다. 그리고 작은 상처같은 치료는 당연히 대수술을 할 수 있으니 기본이다 라는 것은 알겠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 이상한 것을 집어내야하는 데, 뭐가 이상한 지를 모르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자, 잠깐. 아까 엿들은 것은 사과할게. 하지만 궁금한 건 물어봐야겠어. 하백이 누군지 알아?"
"그건 내가 대답하지."
조용히 나타난 리처드는 니피에게 에스프레소를 따라주고 소파에 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투명한 액체는 물이 아니라 양주였다. 하지만 투명한 양주라니. 나는 듣도보도 못한 것이라 신기하게 쳐다봤다. 리처드는 한모금 마시고는 테이블에 내려놓고 발을 꼬고 무릎 위에 양손을 깍지껴 올려놓았다. 리처드가 느긋하게 말했다.
"하백이 누군지 대답하기 전에 하현우 군이 그 신발을 어떻게 얻었는지부터 듣도록하지."
니피는 매우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나를 보았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난 허리를 꼳꼳이 세우고 리처드와 니피를 번갈아보았다. 리처드는 편안한 자세로 상담을 하는 듯이 내 이야기를 기다렸다.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리처드한테는 아까 알려드렸잖아요."
리처드는 능성스럽게 "그랬었나." 하는 말을 하면서 천장을 쳐다보았다. 니피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자 리처드는 하하하 하고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현우 군.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네."
니피는 당연히 그러시겠지라는 표정으로 리처드를 보았고 나는 놀람에 동그래진 눈으로 리처드를 보았다. 리처드는 둘의 주목을 받게 되자 살짝 머쓱한지 등은 소파에 편하게 기대었다. 이완된 포즈로 리처드가 말했다.
"비록 내가 치료해줬다 한들 처음부터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내가 어떻게 판단하겠는가. 무엇보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네."
내 머릿속을 스치듯이 글귀가 지나갔다.
「아무도 믿지 마라.」
나는 발작적으로 말했다.
"아무도 믿지 말라!"
이번에는 리처드와 니피가 경악과 놀람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리처드의 경우는 그의 태도나 모습에 걸맞게 적절히 놀란 것을 굳은 표정으로 알 수 있었지만 니피는 아예 입을 떡하니 벌리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리처드는 꼰 다리를 풀고 양손을 깍지껴서 팔꿈치론 무릎을 찍고 손가락 위에 턱을 얹었다.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리처드가 추궁하듯이 물었다.
"그 말을 누구에게 들었지?"
갑자기 쏘아보는 리처드의 눈이 마치 나를 죽일 듯한 중력총을 든 리차드처럼 느껴졌다. 나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리처드의 눈을 피해 니피를 보았다. 니피는 아직도 놀란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리처드가 다시 되물었다.
"현우 군. 그 말을 한 이유를 물어보아도 되겠는가?"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리처드가 물었다. 나는 어쩔줄 몰라했고 리처드는 누그러진 말투로 편안하게 말했다.
"현우 군이 나를 믿을 필요는 없네. 그리고 나도 현우 군을 믿을 수 없지.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서로 간에 정보를 교류하지. 그것이 인간이니까. 믿지 못하는 상대에게 거짓 정보를 말할 수도 있고 진실을 말할 수도 있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지. 그러니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다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리처드의 말투는 편안하게 들려왔지만 꿰뚫어보는 듯한 리처드의 눈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게 내 모습을 담아두었다. 마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한 눈을 보자 나는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사부님의 도장에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빨간 상자에는 편지가 들어 있었고..."
내 이야기를 들은 리처드는 아무런 반응 없이 곰곰히 이야기를 들었고 니피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마지막에 사부님이 수류탄을 던진거까지 말하자 니피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했고 니피는 내 모습을 보자 키킥 웃었다.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이 아닐까요?"
리처드는 깊이 사색하듯이 생각에 빠져 있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있군. 도플갱어와 마인드 컨트롤이라니. 예상되는 것은 「의사」밖에 없는데... 현우 군. 네 형이 하백이 확실해?"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거 신에게 감사해야 겠군."
리처드는 성호를 긋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니피도 리처드를 따라 감사의 기도를 했다. 얼떨결에 나도 따라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 있을 때, 리처드가 말했다.
"이야기를 엿들어서 알지만, 자네를 죽이려고 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지. 무엇보다 그 블링크 슈즈가 아니었다면 이미 살아있지 못했을 거야. 이 말은 우리 손에게 구해졌을 지언정 살아남지 못했을거란 말이지. 왜냐면 우리가 널 죽이고 아티펙트를 뺐었을 테니까."
리처드는 살벌한 말을 무뚝뚝하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지만 리처드는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현우 군이 블링크 슈즈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지. 그리고 부상을 입었다는 것. 만일 네가 온전했으면 블링크 슈즈를 빼았은 악당으로 판단하고 니피가 너에게 싸움을 걸거나 죽여서 신발을 회수했겠지."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니피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태연하게 죽일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새삼 두 사람이 무섭게 느껴졌다.
"어쨋거나 하백의 동생이기에 블링크 슈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동생은 하현우. 너는 다리를 희생해서까지 블링크 슈즈를 지켜내었기에 나는 너를 블링크 슈즈 소유자로 인정하고 있었어. 물론 믿을 수는 없었지만."
니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페에 한쪽에 걸린 수많은 사진들 중에 하나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내게 대뜸 내밀었다.
"자, 그럼 현우. 우리를 도와줘. 지금 이곳으로 갈 수 있겠어?"
나는 머리가 핑 도는 아찔함을 느꼈다.
--------------------
자, 오늘은 여기까지. 현우는 블링크 슈즈 사용을 요청받는 군요. 과연 처음부터 블링크 슈즈를 자유자래로 다루며 니플헤임 로스차일드와 리처드 레이갈드를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는!, 창세기전에서 계속.. 엥?
'[N]ovel소설 > 아티펙트Artifac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티펙트Artifact 제 1장. 믹스Mix 2/2 (0) | 2011.06.14 |
---|---|
아티펙트Artifact 제 1장. 믹스Mix 1/6 (0) | 2011.06.09 |
아티펙트Artifact 제 1장. 믹스Mix 1/5 (2) | 2011.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