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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아티펙트Artifact

아티펙트Artifact 제 1장. 믹스Mix 1/6


 무슨 놈의 글을 쓰는데.. 3일이나 걸리는 건지.. 1/5 올리고 1/6올리는데 3일 걸리는군요. 요새 이상하게 책좀 보고 글쓰려고 하면 책좀 보고 자꾸 잠만 자네요.. 허허허.. 아니면 그냥 자고.. 늦은 춘곤증이라도 찾아왔나봅니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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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가 흘러 내 몸을 관통하는 듯한 짜릿함에 난 눈을 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요란하고 끔찍한 꿈자리였는지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몸이 찜질방에 들어온 듯 뜨겁고 찌푸둥한 것이 내 몸이 아닌것마냥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눈을 껌뻑여 초점을 맞추자 나무의자에 앉아있는 남자가 보였다.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는 자신의 은발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기고는 창 밑으로 연결된 나무탁자에 놓인 머그컵을 쥐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린 소년에게 억겁과도 같은 시간의 고통을 안겨주려 하시다니."
 은발 남자는 깊은 고민에 빠진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머그컵을 입에 가져갔다. 어디선가 쏴아아하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라면, 따르는 수밖에."
 남자는 머그컵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려 이곳으로 향한 남자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오오, 일어났구나. 몸은 좀 어떠냐."
 생명을 다 한 점멸하는 전구처럼 깜빡거리듯이 기억이 되살아 났다. 나는 기억속에서 들리는 '리처드'라는 말소리에 흠칫했다. 남자는 내가 당황해하자 제자리에 멈춰섰다.
 "몸도 성하지 않은 녀석이 뭘 그렇게 겁을 먹고 놀라는 거냐. 흠. 이럴 때는 뭐부터 말해야 하더라... 그래,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는 은발 남자의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내게 총을 겨누고 발목을 터트려버리던 리차드를 떠올리며 뭄을 뒤로 뺐다. 어느새 등이 벽에 닿았고 차늘한 벽이 등을 통해 한기를 흘려주자 정신이 맑아졌다. 은발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주먹을 손바닥에 딱 치며 말했다.
 "아! 아니지. 자기 소개가 우선이였지. 반갑다, 꼬마야. 나는 리처드 레이갈드Richard Raygald라고 한단다."
 경계하는 내 모습에 접근하지 않던 리처드 레이갈드는 대답하지 않는 나를 보고는 몸을 돌려 주방으로 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 나는 리처드가 주방으로 간 사이에 서둘러 방을 살폈다.
 전체적인 목조 구조로 된 방은 침실로 쓰이는 방이였다. 빛이 잘 드는 창가에는 창 밑을 따라서 작고 아담한 탁자가 붙어있고 그 옆으로 나무 의자가 두개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사람이 잘 오지 않았는지 멀리서봐도 보이는 하얀 먼지가 쌓여있었다. 탁자에도 조금 전까지 쓰다가 놓은 듯한 빨간 행주와 수술실에서나 쓰일 법한 의사용 메스 여러개가 검은 천 위에 놓여있었다. 고리가 2개 달린 창문은 바깥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었으나 밖에는 비가 내리는 중이다. 차가워보인다기보다는 따뜻해 보이는 봄비가 우수수 떨어지며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멀리보이는 하늘과 공원 풍경은 이곳이 높은지대라는 뜻이겠지. 아마 2층일 것이다.
 그 외에는 특별한 물품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도 나무로 된 틀에 매트릭스를 깔고 그 위에 시트를 덮어서 쓰는 일반적인 침대였다. 나무로된 벽에 어울리는 베이지색 이불과 베개라니. 그렇지 않아도 창문 옆에 있는 베이지색 커튼과 색을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실에서 한 눈에 보이는 주방은 문틀만 있지 문짝은 없이 이어져있었고 거실로 보이는 곳으로는 베이지색으로 도색한 문이 열려있었다. 쪼르르하는 소리가 멈추자 리처드가 양손에 머그잔을 들고 침실로 들어왔다.
 "녀석, 왜 그렇게 겁을 먹는 거지? 뭘 좋아하는 지 몰라서 코코아를 타왔어. 뜨거우니까 조심해라."
 리처드는 컵을 내밀었다. 나는 여전히 놀라고 무서워하며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나를 공격했던 리차드와 완전히 닮았다. 다만 20대 후반이란 나이에 중년의 외모를 가진 리차드와 달리 지금 내 앞에 있는 리처드는 외모만큼은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가느다란 머릿결은 매끄러워보였지만 은은한 조명에도 그 색을 잃지 않는 은발이었다. 이국적인 외모에 걸맞는 오똑한 콧날과 푸른 눈동자. 갸름한 얼굴선이 그의 외모를 더욱 두드러지게 해주었다. 이제보니 키도 훤칠하여 전형적인 외국인의 느낌을 받았다. 외모만 젊어진 듯한 리차드. 그는 내가 컵을 받지 않자 자기 머그컵을 탁자에 내려놓고는 강제로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외쳤다.
 "손 대지 마앗!"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난 리처드의 손길을 뿌리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리처드 손에 들린 머그컵을 쳐내고 말았다. 다급히 리처드가 머그컵을 쥐긴 했지만 이미 내용물은 침대 시트와 바닥에 엎어져 흘러버렸다. 리처드는 당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이 아저씨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무 겁을 먹는 구나. 상당히 안 좋은 일을 겪은 모양인데, 이럴 때는 진정이 최고지. 일단 이것부터 좀 닦아야겠네."
 리처드는 탁자로 가 컵을 내려놓고는 행주를 쥐었다. 행주를 잡던 리처드는 잠시 메스를 바라보고는 내 얼굴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리처드는 자상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 시트를 닦았다.
 "의사용 메스를 보고 놀란 게냐? 네 어깨 위에 달린 그것이 머리라는 것이라면 생각을 할테고, 그 머리에 달린 것이 입이라면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뭐라도 말을 해보지 않으련? 대화라는 것은 태고적부터 전혀져 내려오는 인간들의 갈등과 오해를 푸는 최고의 해결책이지."
 시트와 바닥을 다 닦은 리처드는 다시 탁자 옆 의자에 앉았다. 그는 자신의 머그컵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마시고는 내 답변을 기다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구시죠?"
 "말하지 않았었나? 나는 리처드 레이갈드라고 한단다. 편하게 리처드라고 불러도 좋지."
 나는 세차게 가로저었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아뇨. 리처드 레이갈드라는 이름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죠?"
 리처드는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생각하는 듯이 말했다.
 "이름이 아니라 내가 누구냐라. 설마 사색적이고 본질적인 자아 탐구에 대한 질문은 아닐테고, 그렇다면 정체를 밝히라는 것일 터인데. 어쨋거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누구냐고 묻는 것은 합당한 질문이긴 하지. 하지만 그 질문을 통해 얻고자 하는 대답이 있다면 질문을 바꿔야 겠는데?"
 나는 리처드가 모르는 부분을 모두 이야기 해야만 의사소통이 되리라 깨달았다. 난 리처드가 눈을 뜨자 질문했다.
"저는... 하현우라고 합니다. 어떻게 지금 여기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저를 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믿겨지실거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당신과 닮은 외모의 사람이... 아니, 당신보다 더 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남자는 자신을 리차드라고 소개했죠. 그리고 그 남자는 제게 총을 쏘았습니다."
 "그래서 나를 경계한 것이로군. 내가 그 리차드라는 남자로 오인받을 만큼 외모가 비슷한가 본데. 자네가 보기에 내가 하루 아침에 외모가 늙어졌다가 젊어질 수 있는 남자로 보이나?"
 나는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하겠지만 있다고도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생각하는 리차드라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장담하지. 적어도 나는 어제, 너를 공원에서 처음 봤어."
 나는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를 보는 리처드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이불에 감싸여진 내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다리는..."
 "...예. 제 발목은 총에 맞고..."
 갑자기 울컥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숨이 턱턱 막히듯이 호흡이 가팔라지고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이 눈물이 났다. 아직도 허전하게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왼쪽 발목때문에 나는 목이 메여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리처드는 내 모습을 지켜보다가 머그컵을 들고 주방으로 나갔다.
 나는 울먹이는 소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끅끅 거렸다. 리차드는 내게 와서 깨끗한 컵을 건넸다. 그 안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코코아가 있었다.
 "그래서 발목이 날아갔던 모양이군. 그 때 일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겠나?"
 따뜻한 코코아가 담긴 컵을 두 손으로 감싸자 그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싼 채 거기에 입술을 가져가 한 모금 마셨다. 입안으로 흘러들어간 달달한 코코아는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가며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나는 처음 리처드를 만났을 때부터 검은 복면의 남자들로부터 도망쳐 이모의 집에 가게 된 것과 그때 있었던 모든 일을 리처드에게 말했다. 리처드는 내 이야기를 듣다가 난 생 처음들은 「선물」이나 「블링크 슈즈」에서는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뼉을 치면서 호응했다. 그리고 경찰과 싸우거나 리처드가 돌연 적으로 변했던 이야기에서는 주먹을 꽉 쥐고 신음을 하거나 재촉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 것들을 마지막으로 말했다. 친구였던 채송화는 괴력을 발휘했고 사부님이 마지막에 수류탄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류탄이 터지는 순간, 나는 야외에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리처드는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내가 말한 이야기를 곱씹는 표정을 짓던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궁금한게 있는데, 너를 뭐라고 불러야 좋으려나. 나이는 확실히 나보다 어리지만 꼬마나 어린애는 아니고 그렇다고 '야' 나 '너' 혹은 '자네', '이봐' 이런 것도 이상하고 말이야. 그러니 내 편의대로 부르겠네. 현우 군."
 나는 리처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질 정도로 당황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리처드는 내 모습을 천천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내가 무언가 또 리차든가 하는 사람하고 닮은 행동을 한 모양이로군?"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갑자기 놀란 심장은 쉽게 차분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숨이 벅차 호흡하기가 불편해졌다. 리처드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인내있게 나를 기다렸다. 나는 떨림이 조금 진정되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리차드가 저를 '현우 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도 비슷해서 저도 모르게..."
 리처드는 슬픔을 머금은 미소를 짓고는 내 어깨를 토닥여주려고 손을 뻗다가 멈췄다. 만에 하나 손이 내 몸에 닿아 내가 발작을 하거나 놀랄 것을 예상해서 멈춘 배려였다. 리처드는 머쓱한 듯이 손을 그대로 머리로 가져가 은발을 헝클었다.
 "흐으음. 이거 차암. 앞서 말했지만 나는 보통 현우 정도되는 남자들은 '군'이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져있단 말이지. Sonny(젊은이)나 young man(청년)은 너무 딱딱하게 서먹서먹하게 느껴지고 그렇다고 adolescent(청소년)는 전문서적에서나 볼 법한 말이잖아? hey(이봐)나 guy(사내)가 일반적이긴 하지만 나는 이미 현우의 이름을 알고 있고 말이야. 이름을 부르기 적합하지만 그렇다고 현우, 현우야 하기에는 너를 전혀 존중해주지 않는 어린애 취급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고.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현우. 리차드라는 남자도 이렇게 불렀으려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처드는 어이없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목구멍에 메인 침을 삼키고 말했다.
 "저, 저기... 그냥 현우 군. 이라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괜히 이름 때문에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말과 뜻을 하나하나 짚어서 적당한 말을 찾으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렇지! 호칭엔 굳이 연연하거나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가 없긴 하지. 하지만 신사로서 예의와 범절을 지키는 것은 내게 있어 신조와 같으니 포기할 수 없어. 현우 군이 이해해 준다면 나야 고맙지. 그리고 나를 부를 때는 Raygald 씨라고 부르기 보다는 편하게 Richard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괜찮겠지?"
 "네, 리처드."
 "고마워. 리처드라는 이름은 내게 좀 특별한 의미가 있거든. 현우 군. 네 친구인 채송화 양이 식탁을 가볍게 집어 던질 정도의 힘. 그러니까 분명히 Herculean Strength.. 아니, 괴력(怪力)이라고 했지?"
 나는 방문보다 더 크고 무거운 식탁을 우겨넣듯이 던져버렸던 채송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채송화가 그렇게 힘이 쎘던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경찰들에게 쫓기지 않고 오히려 싸워서 이기고 도망갔을 것이다. 없던 힘이 갑자기 생겨났을 리는 없고... 아니, 그럴 가능성은 있는 건가? 리처드가 말을 이었다.
 "괴력이라... 「선」을 넘은 세계의 사람일 가능성이 높군."
 "응? 선이라니요?"
 "적합한 표현으로 쓰이기엔 아쉬움이 많은 단어인 「선」이지만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SuperPower나 Superhuman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러니까 초능력이나 초인적인 힘을 다루는 사람들 말이지."
 "어제 일을 겪지 않았다면... 영화나 만화에서나 볼 법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맞아. 일반적인 생각이지.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초능력이나 초인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사람들이지. 그래서 그들을 분류하기 위해서 「선」을 그었다고 생각해보게. 그렇다면 일반인이 그 선을 넘게 되면 그는 초능력자나 초인이 되는 것이지."
 나는 속으로 몇 번 다시 생각해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처드는 계속 말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말이야. 초인이나 초능력자같은 사람이 있어. 일반적인 초인적인 힘을 사용하는 쉽게 말해 괴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손에 닿지 않아도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염력을 사용하는 초능력자는 실재로 존재해. 그들 또한 영화나 만화처럼 분류하기 위해 「선」을 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런데 세상에는 그보다 더 대단한 것들이 있단다. 타인을 내 맘대로 조종하거나 나 혹은 타인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 보다 심도있게 들어가서는 현우 군이 직접 겪었던 것도 있지. 텔레포트야."
 나는 이해되지 않는 머리로 골머리를 써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리처드는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음. 비현실적인 부분들은 초자연적이고 초인적인거라 쉽게 알아듣기는 어렵지. 그래서 「선」이라는 말을 써서 설명을 해주려 했지만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했던 거야. 그냥 생각해보면 어떨까.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것들이 공존하고 있어. 공간을 뛰어 넘을 수도 있고, 시간을 멈출 수도 있지. 얼굴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형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고 심지어 몸을 불덩어리로 만들거나 얼음덩어리로 만들 수도 있어. 인간이 몸에 도는 미약한 전력에 추가적인 공급을 통해 전기를 다루거나 자기장을 이용할 수도 있고 사념을 통해 타인을 조종할 수도 있지. 하늘을 날 수도 있고 X-ray로만 볼 수 있는 것을 인간의 눈으로 보거나 초음파로만 들을 수 있는 인간의 음역을 벗어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도 있지.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이 가질 수도 있고 물건을 이용해 사람이 사용할 수도 있어."
 "그 물건이라 하면... 아티펙트 말인가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닫는 제자를 둔 스승의 느낌을 만끽하는 리처드는 짝 소리를 내며 박수를 쳤다. 아쉽게도 청출어람 수준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나는 리처드의 말이 내게 총을 쏜 리차드가 이미 알려준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암울해졌다.
 "정확해! 아티펙트를 알고 있다니. 그렇다면 괴력이나 중력총에 대해서도 알텐데, 그리고 네가 신고 있는 그 신발. 블링크 슈즈도 말이야."
 "아,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아티펙트는 리차드가 제게 설명해준 것이 있어..."
 리처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구나. 안타깝게도 그는 정말 나랑 비슷한 사람인 모양이군. 아니, 아까 내가 이야기 했지? 얼굴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형체까지 바꿔버릴 수 있는 사람이나 혹은 그 능력을 가진 물건이 존재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네가 만난 리차드는 나를 사칭하는 타인일 가능성이 높아. 도플갱어Doppelganger를 만들 수 있는 카피 코인Copy Coin이 존재하니 실존하지 않는 단순한 도플갱어일 수도 있고.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선을 넘은 세계」에 사는 사람이 한 짓인것만은 분명하군."
 "「마술사」의 도플갱어라고요?"
 내가 한 질문이 아니었다. 나는 리처드가 바라보는 곳을 따라 보았다. 반쯤 열려있던 거실 문은 어느덧 활짝 열려있었고 그곳에 귀엽게 생긴 여자가 서있었다. 얼굴을 보아서는 나랑 비슷한 연령대가 아닐까 생각이드는 여자였지만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를 보니 한국인이 아니었기에 나이를 유추할 수 없었다. 키가 좀 작은 느낌이 드는 반면에 몸의 균형이 잘 잡혀 비율이 잘 맞는다고나 할까. 위에서 아래까지 흘깃 보았을 때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귀여운 여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여자였다. 키가 작은 게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얼굴은 뚜렷한 이목구비로 인상이 깊고 개성적이었으며 전혀 마르지도 찌지도 않은 몸매는 운동을 통해서 다져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가운데 숫자가 쓰인 농구부의 유니폼으로 보이는 주황색 민소매 셔츠 밖으로 보이는 팔뚝은 원래 백인이 아닌가 싶지만 햇볕에 태워 건강한 갈색 빛으로 건강미를 뽐냈다. 여자는 구릿빛 팔로 문틀의 양쪽을 쥐고 얼굴과 가슴을 침실로 밀어넣어 대각선으로 선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리처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도플갱어라니.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라구. 그리고 한국에서는 「마술사」라 부르지 말고 리처드라는 엄연한 본명을 불러달라고 했잖아, 니플헤임 양."
 니플헤임은 귀엽지만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는 니피라고 불러달라고 했잖아요, 리처드 아. 저. 씨."
 이 사람들은 이름이나 호칭 혹은 약칭이나 애칭에 대해서 상당히 엄격하고 고지식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린애들도 아니고 저렇게 호칭이나 이름이나 애칭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지 않는다고 싸울 수가 있는 거지? 니플헤임은 몇 차례 더 갑을논박 하듯이 리처드와 말을 주고받다가 나를 보고는 반갑게 웃었다.
 "아, 반가워요. 우리 아저씨한테 납치당해온 한국인이로군요. 전 니플헤임 로스차일드라고 합니다. 니피라고 불러주시면 좋겠네요."
 "네, 하현우 입니다. 저도 반갑네요, 니피."
 볼에 홍조를 띄우고 발그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니피는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짓고는 리처드를 보고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말했다.
 "봐요! 이 얼마나 귀여워요, 니피라는 이름이."
 리처드는 여전히 "나는 아직 너처럼 성인도 아니고 어린 녀석이 그렇게 마음대로 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는 듯한 얼굴로 니피를 보다가 자신이 앞에 있는 먼지가 소복히 쌓인 의자를 헹주로 닦아 옆에 놓았다. 니피는 코웃음 치고는 귀엽게 혀를 빼쭉내밀었다.
 "베~~ 안 갈거거든요? 어차피 도플갱어는 추측이라면서요. 그리고 아래 손님 많으니까 이제 그만 내려와서 도와달라구요! 참, 현우라고 해도 되지? 리처드 아저씨는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운 아저씨지만 대화를 하다보면 생각보다 더 꽉 막힌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거야. 나는 지금 바빠서 이만."
 니피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거실로 나가버렸다. 곧이어 쿵쿵거리는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리처드는 혀를 차면 의자를 탁자 밑에 넣었다.
 "세계적인 가문의 딸인 로스차일드 아가씨야. Niflheim라는 이름이 무슨 여자애 이름이라면서 유모나 가족이 불러주던 니피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 아가씨지. 하지만 나는 로스차일드 가문과 계약이 있는지라 마치 여동생 부르듯이 니피라고 부를 수 없다네. 너도 알다시피 너한테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저 아가씨를 니피라고 마구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해해주게나."
 "네. 니플헤임이라면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지하의 나라를 뜻하는 말일텐데..."
 "안개의 나라를 뜻하기도 하지. 그리고 로스차일드 양을 알면 알수록 그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될걸세. 괜히 그녀의 부모님이 그 이름을 준것은 아니니까 말이지. 어쨋거나 현우 군. 나는 아래 내려가볼테니까, 여기서 쉬고 있게."
 리처드는 내게서 머그컵을 받고 자신의 것도 들고서 주방을 거치지 않고 거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그가 멈춰서서 고개를 돌려 옆모습으로 나를 보았다.
 "아, 현우 군."
 "아, 예."
 "걷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무리를 하게 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심하게나."
 나는 의문을 몰라서 리처드를 계속 바라보았지만 리처드는 아래서 고함지르는 니피에게 대답하면서 황급히 거실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의아해하다가 걷는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그리고 황급히 이불을 들췄다.
 놀랍게도 왼발은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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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제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내 글은 참... 설명조인거 같습니다. 내가 글을 쓰면서 내 설명을 듣고 이해하고 있다니... 내가 글을 쓰는 건지, 읽는 건지 알 수가 없군요. 즐 아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