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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공의 경계 上 pp 91~

 밤이 되어 비는 그쳤다.
 시키는 붉게 물들인 가죽 블루종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 위의 하늘은 얼룩덜룩하다. 구멍투성인 구름이 이따금 달을 보여준다.
 거리에는 사복 경찰들이 바쁘게 순회하고 있다. 그들과 마주치는 게 성가셔서 오늘은 강가로 발길을 돌렸다.
 비에 젖은 노면이 가로등 빛을 반사시킨다.
 달팽이의 흔적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멀리서 전철 소리가 났다.
 덜컹덜컹 울리는 차바퀴 소리가 철교가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인간이 아니라 전철용 다리일테지.
 ㅡ그곳에서 사람 그림자를 발견했다.
 터덜터덜, 천천히 시키는 철교로 향했다.

 한 번 더, 전철이 지나간다. 아마도 마지막 전철일 것이다.

 아까의 소리와 비교도 되지 않는 굉음이 주위에 울린다. 마치 좁은 상자 속에 솜을 가득 채운 듯한 소리의 중압에 자기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전철이 지나가자, 철교 아래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가로등도 없고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다리 아래의 공간은 그곳만이 어둠에게 점령당한 듯이 캄캄하다.
 그 덕분이겠지.
 지금은 강가를 적시는 붉은 빛조차도 어둡다.
 이곳은 다섯 번째 살인 현장이다.
 아무렇게나 자란 잡초 속에, 시체는 꽃처럼 누워 있었다.
 도려낸 얼굴을 중심으로, 양 팔 양 다리가 네 개의 꽃잎처럼 놓여 있다.
 머리와 마찬가지로 잘라낸 손과 발은 관절을 구부려 보다 꽃다움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도 꽃이라기보다 卍으로 보이는 것이 조금 유감이다.
 풀밭 속, 인공의 꽃이 버려져 있다.
 흩뿌려진 피에 의해 꽃의 색은 빨갛다.
 ㅡ점점 익숙해졌다.
 그것이 그녀가 품은 감상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고는, 몹시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긴장인지 그렇지 않으면 흥분 탓인지ㅡ갈증은 이제 뜨겁기조차 했다.
 이곳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충만해 있다.
 시키의 입술이 소리도 없이 미소를 짓는다.
 그녀의 희열을 억누르며, 그저 사체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순간에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실감할 수 있기 떄문에.


 /3


 월초에 사범과 진검으로 시합을 하는 것이 료우기 가 후계자의 규칙이었다.
 아득한 선대에, 굳이 다른 유파의 검장을 초대하는데 넌덜머리가 난 료우기 가의 당주는, 직접 집안에 도장을 세워 마음대로 새로운 검의 유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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