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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공의 경계 上 pp 81~91

 ㅡ주위는, 피바다였다.

 빨간 페인트라고 생각되는 것은 엄청난 양의 피다.
 지금 길바닥에 흘러넘쳐 줄줄 흐르는 액체는 사람의 체액.
 코를 찌르는 냄새는 끈적거리는 주홍빛.
 그 중심에 인간의 사체가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양쪽 팔이 없고, 양쪽 다리도 무릎 위에서부터 잘려져 나간 것 같았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지금은 피를 마구 뿌릴 뿐인 망가진 스프링클러가 되어 있었다.
 이미 이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밤의 어둠조차 피의 북은 빛에 물러나고 있다.

 ㅡ그녀는 그곳에서 활짝 벙그러져 있다.(벌어지다의 잘못. 벌어지다:식물의 잎이나 가지 따위가 넓게 퍼져서 활짝 열리다)
 
옥색의 기모노 자락이 지금은 주홍빛.
 학을 연상케 하는 우아함으로 지면에 흐르는 피를 만지더니, 그것을 자신의 입술에 발랐다.
 피는 입술에서 미끄러져 떨어진다.
 그 황홀함에 몸이 떨린다.
 그것이 그녀가 처음으로 바른 연지였다.


 /2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생활에 변화는 없다. 있다고 하면 학생들의 복장이 달라진 정도로, 그들의 복장은 여름의 그것에서 가을의 그것으로 조금씩 무거워져 있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기모노 이외의 옷을 입은 적이 없다.
 아키다카는 열여섯 살의 소녀다운 옷을 준비해 주었지만 나는 입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 학교는 사복 등교여서 나는 기모노 차림으로 지낼 수 있었다.
 사실은 정식 기모노를 입고 싶었으나, 그걸 입으면 체육 시간 같을 때는 옷을 갈아입는 것만으로 시간이 끝나 버린다. 타협안으로서 유카타 같은 홑겹 기모노를 애용하기로 했다.
 겨울 추위는 어떡할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어제 해결했다.
 ......그것은 쉬는 시간의 일이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있는데, 등 뒤에서 느닷없이 말을 걸어왔다.
 "춥지 않니, 시키?"
 "아직은 안 춥지만, 앞으로는 추워지겠지."
 나의 대답에서 겨울에도 기모노로 버틸 거라는 의도를 읽었을 것이다. 상대는 얼굴을 찡그렸다.
 "겨울에도 그러고 다닐 거냐, 너는?"
 "아마도. 하지만 괜찮아, 겉옷을 입을 거니까."
 빨리 대화를 끝내고 싶어서,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상대는 기모노 위에 걸치는 겉옷이란 게 있구나, 하고 놀라서 떨어져 나갔다. 나도 자신의 의견에 놀랐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겉옷을 사러 갔다. 가장 따뜻한 겉옷이라고 해서 가죽제 블루종을 구입했다. 겨울이 되면 입게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옷장에 처박아두기로 했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여 그러기로 했다.
 장소는 제 2 교사 옥상으로, 주위에는 우리 같은 남녀 한 쌍이 보였다.
 그것을 머뭇머뭇 관찰하고 있는데, 귓가에서 뭔가 이야기를 걸어왔다. 무시할까 생각했지만, 그 단어가 약간 어수선한 것이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ㅡ응?"
 "그러니까 살인. 여름방학 마지막 날에 말이야, 서부 상점가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어. 아직 보도되지 않았지만 말이야."
 "살인이라니, 끔찍한 일이구나."
 "응. 내용도 상당히 끔찍해. 양 팔 양 다리를 흉기로 잘라서, 나머지는 그냥 팽개쳐 두고 갔대. 현장은 피바다여서, 감식할 때 길 입구에 함석판(표면에 아연을 도금한 얇은 철판)을 달아 가리고 할 정도였다나. 범인은 잡히지 않았나봐."
 "양 팔 양 다리만? 그것만으로도 인간이 죽어?"
 "그야 피가 없어지면 산소결핍으로 생명활동이 정지되니까 그렇지. 하지만, 이 경우는 쇼크사가 먼저일 거야."
 우물우물, 입을 움직이면서 이야기한다.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이 녀석은 이런 화제를 던져올 때가 많다. 친척이 경찰관계의 인물이라고 하는 것 같다. ......친척에게 기밀을 누설할 정도인 걸 보니 별로 높은 자리의 인물은 아닌 모양이다.
 "아, 미안. 시키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기였어."
 "괜찮아. 관계가 없는 건 아니야. 단지 말이야, 고쿠토."
 뭐? 하고 되묻는 동급생에게 나는 눈을 감으면서 항의했다.
 "그런 건, 식사 할 때 할 이야기가 아니지 않냐?"
 그렇구나, 하고 고쿠토는 끄덕인다.
 ......도대체가. 덕분에 방금 산 토마토 샌드위치를 먹을 수 없잖아.


 나의 고교 1학년 여름은, 그런 뒤숭숭한 소문을 듣는 것으로 끝이 났다.
 계절은 완만하게 가을로 바뀌어간다.
 료우기 시키에게 있어 지금까지와 미묘하게 다른 생활은 곧 추운 겨울을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일층 복도를 걷고 있다.
 수업이 끝난 방과 후의 교사에는 학생들의 모습이 별로 없다. 고쿠토가 이야기한 살인사건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학교 측이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금지시킨 것이다.
 사건은 아마 이번 달로 네 번째일 것이다. 오늘 아침 차 안에서 아키다카가 말한 것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범인의 정체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그 동기조차 명확하지 않다. 피해자들에게 공통점도 없고, 그 대부분이 심야에 돌아다니다 살해당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사건이라면 방관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이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학생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귀가하고,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까지 무리지어 하교하고 있었다.
 밤에도 아홉 시가 지나면 경찰이 순찰을 돌아서 요즘은 밤산보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
 "......네 명......"
 중얼거린다.
 그 네 개의 광경을, 나는.
 "료우기."
 갑자기 누군가가 불러 멈춰 섰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그곳에는 본 적 없는 남자가 서있었다.
 파란 청바지에 하얀 셔츠라는 평범한 복장에, 어른 같은 얼굴을 한 인물. 아마 상급생일 것이다.
 "네, 무슨 일이죠?"
 "아, 그런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말아줘. 고쿠토 군을 찾고 있는 건가?"
 빙그레, 일부러 만든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는 놀리듯이 말했다.
 "나는 그냥 하교하는 길이에요. 고쿠토 군은 관계 없습니다.
 "그래? 그건 아닐 텐데, 너는 모르는구나. 그러니까 초조한거야. 너무 그런 걸 남한테 발산하면 안 돼. 남을 괴롭히는 건 재미있어서 버릇이 된다구. 아하하, 네 번은 너무 했지."
 "ㅡ네?"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가식적인ㅡ아니, 분명히 가식인 미소를 짓는다.
 너무나 만족스럽게ㅡ나를 닮았다.
 "마지막으로 너와 제대로 대화를 해보고 싶었어. 그것도 이루어졌으니까, 그럼 안녕."
 상급생으로 보이는 남자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울리며 멀어져갔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지 않고 신발장으로 향했다.
 신발을 갈아 신고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비만 나를 맞아주었다.
 데리러 와야 할 아키다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은 기모노가 젖기 때문에 아키다카가 차로 데리러 오는데, 오늘은 늦는 것 같다.
 신발을 갈아 신기가 귀찮아 승강구 계단 옆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엷은 베일같은 비가 교정을 뿌옇게 만들고 있다.
 12월의 추위 탓에 호흡은 하얗게 얼어붙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돌아보니 내 옆에는 고쿠토가 다가와 있다.
 "우산 있어."
 중국인 같은 발음이었다.
 "됐어, 마중 올 거니까. 넌 얼른 집에나 가."
 "조금 있다가 갈 거야. 그때까지 여기 있고 싶은데, 괜찮을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음, 하고 끄덕이고는 콘크리트 벽에 기댄다.
 나는 지금 고쿠토의 이야기에 어울려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모두 무시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가 여기에 있든 말든 관계없다.
 빗속에서, 그저 아키다카만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빗소리만 들린다.
 고쿠토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벽에 기댄 채, 만족스러운 듯이 눈을 감고 있다. 자는 건가? 어이가 없어 보았지만, 조그맣게 뭔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유행가일 것이다. 더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아키다카에게 물어보니 그것은 싱잉 인 더 레인이라는 유명한 노래였다. 유행가인 것은 틀리지 않았다.
 고쿠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와 그의 거리는 일 미터도 되지 않을 것이다. 두 인간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대화가 없다는 것은 어딘지 불편하다.
 너무 어색한 상황, 하지만 괴롭지 않은 침묵이었다.
 ㅡ이상하다. 어째서 이 침묵은 따듯한 것일까.
 그러나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대로라면 그 녀석이 나오리란 걸 짐작했으니까.
 "ㅡ고쿠토!"
 "응?!"
 느닷없이 큰소리로 부르는 바람에, 그는 깜짝 놀라며 벽에서 떨어졌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이쪽을 보는 눈동자에 내가 비치고 있다.
 아마, 이 때였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고쿠토 미키야라는 인물을 보았다.
 관찰이 아니라.
 그는 아직 소년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커다란 눈동자는 온화하며, 티 없이 맑고 까맣다. 그의 성격을 나타내듯 머리 모양은 자연스러우며, 염색도 하지 않고 헤어젤 같은 것도 바르지 않았다.
 안경은 검은 테, 그런 건 요즘 초등학생들도 쓰지 않는다.
 장식 없는 복장은 상하 모두 검은 색. 그 색의 통일이 고쿠토 미키야의 유일한 치장이라면 치장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착한 소년은 어째서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걸까.
 "......지금까지......"
 고개를 숙이고, 나는 그를 보지 않으려 한다.
 "어디, 있었어?"
 "여기 오기 전에는 학생회실에. 선배가 학교를 그만 둬서 송별회 같은 것을 했거든. 시라즈미 리오라는 선배인데 무척 의외였어. 얌전한 사람인데,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서 자퇴서를 내버렸어."
 시라즈미 리오.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런 모임에 불려가는 고쿠토의 폭 넓은 인간관계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동급생에게는 친구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상급생 여자들에게는 은근히 인기가 있었다.
 "시키도 초대했잖아. 어제 헤어질 무렵에 말했는데, 학생회실에 오지 않았잖아. 교실에 가보니 아무도 없고."
 확실히 어제 그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그런 모임에 내가 가봐야 분위기만 썰렁해질 뿐이다. 고쿠토의 초대는 단순한 사교성 발언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랐네, 그거 진짜였군."
 "당연하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너는."
 고쿠토는 화를 냈다.
 그것은 자신의 언동이 무시당해서가 아니라, 나의 한심한 사고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거기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였으니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오늘만큼 아키다카의 마중을 고대한 날은 없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문으로 아키다카의 차가 들어와, 나는 고쿠토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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