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철탑의 인슬레이버enslaver
기적의 도시 펠라론.
이곳은 신화가 현실과 공존하는 도시이며 기적이 일상으로 통하는 도시다. 고금을 통틀어 무수한 모방 시도가 있었건만 아직도 지상에 펠라론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도시는 건설되지 않았다. 펠라론은 펠라론이며 그곳에 고고히 서 있는 것만으로 이미 신을 증거하는 도시다. 그러나 지리학적인, 혹은 정치사회학적인 주석이 필요하다면 이곳은 신앙의 주인이자 신의 사도인 법황이 지배하는 <실질적 영토>라고 말할 수 있다.
<뜨거운 비의 법황> 유릴란드로부터 1700여 년. 펠라론은 단 한번도 침벙당하지 않았다. 대륙이 제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때도, 혼 족의 반란이 대륙 전역을 유린했을 때도, 그리고 가깝게는 제국의 공적 1호 대마법사 하이낙스가 대륙에서 제국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했을 때도 펠라론만은 끄떡없었다. 펠라론은 영원의 도시이며 기적의 도시이며 불멸의 도시이다.
그러나 펠라론 또한 인간들이 사는 도시였다. 그곳 역시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의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 역시 용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용서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 역시 치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펠라론 또한 울고 웃고 노여워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였다.
그리고 펠라론의 중앙 유릴란드 언덕에 우뚝 서 있는 법황청의 화려한 발코니에서 영원의 도시를 굽어보고 있던 퓨아리스 4세 역시 신의 놀라운 조화보다는 인간의 개탄할 만한 죄악 쪽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부활의 법황> 퓨아리스 4세. 속명, 로데인 백작.
법황으로 선출된 직후 놀랍게도 죽은 인간을 살려내는 기적을 보임으로써 기적의 도시 펠라론의 시민들마저도 경악하게 만든 남자. 펠라론의 시민들은 <폭우의 법황> 라우스 5세가 보였떤 3일 동안의 폭우도 경험했고 <은혈의 법황> 오펠 2세가 은빛 피를 흘리는 것도 목격했다. 하지만 로데인 백작이 법황에 선출되었을 때, 한번도 깨어진 적 없었던 전통의 힘을 믿고 있었던 펠라론의 시민들 중에서도 신임 법황이 이렇게나 놀라운 기적으 보이리라고 예상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로데인 백작은 대관식에서 멋대로 퇴장한 다음 선대 법황 퓨아리스 3세의 유해가 누워 있는 침대를 찾아가 그를 살려내었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추기경들과 주교들과 수사들과 각국의 대사와 고위 인사로 구성된 축하객들, 거의 1,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 똑똑히 목격되었다. 그들의 경악이 얼마나 놀라웠는지는 당시 펠라론에 체류중이었던 유명한 연대기 작가 바탈리언 남작이 남긴 수기의 다음 글귀가 잘 나타내어 준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넘치는 비판주의와 회의주의와 불신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신화 시대로부터의 철퇴였다."
일반적으로 고귀하다고 칭해지는 무수한 사람들과 그 중 드물게 섞여 있는 진실로 고귀한 이들이 말문이 막힌 모습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로데인 백작은 부활한 선대 법황 앞에 무릎을 꿇고 법황의 홀을 바치며 말했다.
"성하. 저들이 주인의 허락 없이 멋대로 이것을 저에게 주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주인에게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때 <다리 달린 붕어의 법황> 퓨아리스 3세, 즉 그의 즉위 직후 펠라론 강에서 다리 달린 붕어가 잡혔다는 기적을 보였기에 재위 기간 전체를 통틀어 제국의 여러 왕들뿐만 아니라 펠라론 시민들에게조차 조롱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법황은 생애 최후로(혹은 죽고 나서야)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퓨아리스 3세는 침대에서 일어난 다음 로데인 백작의 발등에 키스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하. 당신은 이미 선별된 신의 대리인임을 몸소 증명하셨습니다. 저는 제 값없는 목숨의 부활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신의 대리인인 당신을 경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기적을 찬양합니다."
당시 현장에서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 중 감동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다. 퓨아리스 3세는 그로부터 한 달 동안이나 더 생존하였고, 부활한 법황을 보기 위해 제국 전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순례자와 왕족과 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평안한 얼굴로 두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신임 법황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선대 법황의 법명을 사용할 것임을 공표했다. 퓨아리스 4세, 부활의 법황의 탄생이었다.
긴 상념의 끝에서, 퓨아리스 4세는 혼자말처럼 말했다.
"웃기는 이야기지."
"저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성하."
그의 등뒤로부터 잔잔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퓨아리스 4세는 여전히 창 밖만 내다보며 말했다.
"부활의 법황? 뭐가 부활의 법황이란 말인가."
"그야 성하께서 존경과 사랑을 담아 선대 법황 성하를 부활시킨 것에 비롯된......"
"천만에. 제국을 부활시키라는 말이지."
잔잔한 목소리는 입을 다물었다. 퓨아리스 4세는 화려한 법의 대신 셔츠 한 장만을 걸친 단출한 모습을 한 채 발코니에 팔을 괸 방만한 자세로 법황궁 앞의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철탑의 인슬레이버enslaver
기적의 도시 펠라론.
이곳은 신화가 현실과 공존하는 도시이며 기적이 일상으로 통하는 도시다. 고금을 통틀어 무수한 모방 시도가 있었건만 아직도 지상에 펠라론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도시는 건설되지 않았다. 펠라론은 펠라론이며 그곳에 고고히 서 있는 것만으로 이미 신을 증거하는 도시다. 그러나 지리학적인, 혹은 정치사회학적인 주석이 필요하다면 이곳은 신앙의 주인이자 신의 사도인 법황이 지배하는 <실질적 영토>라고 말할 수 있다.
<뜨거운 비의 법황> 유릴란드로부터 1700여 년. 펠라론은 단 한번도 침벙당하지 않았다. 대륙이 제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때도, 혼 족의 반란이 대륙 전역을 유린했을 때도, 그리고 가깝게는 제국의 공적 1호 대마법사 하이낙스가 대륙에서 제국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했을 때도 펠라론만은 끄떡없었다. 펠라론은 영원의 도시이며 기적의 도시이며 불멸의 도시이다.
그러나 펠라론 또한 인간들이 사는 도시였다. 그곳 역시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의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 역시 용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용서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 역시 치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펠라론 또한 울고 웃고 노여워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도시였다.
그리고 펠라론의 중앙 유릴란드 언덕에 우뚝 서 있는 법황청의 화려한 발코니에서 영원의 도시를 굽어보고 있던 퓨아리스 4세 역시 신의 놀라운 조화보다는 인간의 개탄할 만한 죄악 쪽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부활의 법황> 퓨아리스 4세. 속명, 로데인 백작.
법황으로 선출된 직후 놀랍게도 죽은 인간을 살려내는 기적을 보임으로써 기적의 도시 펠라론의 시민들마저도 경악하게 만든 남자. 펠라론의 시민들은 <폭우의 법황> 라우스 5세가 보였떤 3일 동안의 폭우도 경험했고 <은혈의 법황> 오펠 2세가 은빛 피를 흘리는 것도 목격했다. 하지만 로데인 백작이 법황에 선출되었을 때, 한번도 깨어진 적 없었던 전통의 힘을 믿고 있었던 펠라론의 시민들 중에서도 신임 법황이 이렇게나 놀라운 기적으 보이리라고 예상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로데인 백작은 대관식에서 멋대로 퇴장한 다음 선대 법황 퓨아리스 3세의 유해가 누워 있는 침대를 찾아가 그를 살려내었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든 추기경들과 주교들과 수사들과 각국의 대사와 고위 인사로 구성된 축하객들, 거의 1,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눈에 똑똑히 목격되었다. 그들의 경악이 얼마나 놀라웠는지는 당시 펠라론에 체류중이었던 유명한 연대기 작가 바탈리언 남작이 남긴 수기의 다음 글귀가 잘 나타내어 준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넘치는 비판주의와 회의주의와 불신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신화 시대로부터의 철퇴였다."
일반적으로 고귀하다고 칭해지는 무수한 사람들과 그 중 드물게 섞여 있는 진실로 고귀한 이들이 말문이 막힌 모습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로데인 백작은 부활한 선대 법황 앞에 무릎을 꿇고 법황의 홀을 바치며 말했다.
"성하. 저들이 주인의 허락 없이 멋대로 이것을 저에게 주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주인에게 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때 <다리 달린 붕어의 법황> 퓨아리스 3세, 즉 그의 즉위 직후 펠라론 강에서 다리 달린 붕어가 잡혔다는 기적을 보였기에 재위 기간 전체를 통틀어 제국의 여러 왕들뿐만 아니라 펠라론 시민들에게조차 조롱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법황은 생애 최후로(혹은 죽고 나서야)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퓨아리스 3세는 침대에서 일어난 다음 로데인 백작의 발등에 키스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성하. 당신은 이미 선별된 신의 대리인임을 몸소 증명하셨습니다. 저는 제 값없는 목숨의 부활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신의 대리인인 당신을 경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기적을 찬양합니다."
당시 현장에서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 중 감동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한다. 퓨아리스 3세는 그로부터 한 달 동안이나 더 생존하였고, 부활한 법황을 보기 위해 제국 전역에서 구름처럼 모여든 순례자와 왕족과 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평안한 얼굴로 두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신임 법황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선대 법황의 법명을 사용할 것임을 공표했다. 퓨아리스 4세, 부활의 법황의 탄생이었다.
긴 상념의 끝에서, 퓨아리스 4세는 혼자말처럼 말했다.
"웃기는 이야기지."
"저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성하."
그의 등뒤로부터 잔잔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퓨아리스 4세는 여전히 창 밖만 내다보며 말했다.
"부활의 법황? 뭐가 부활의 법황이란 말인가."
"그야 성하께서 존경과 사랑을 담아 선대 법황 성하를 부활시킨 것에 비롯된......"
"천만에. 제국을 부활시키라는 말이지."
잔잔한 목소리는 입을 다물었다. 퓨아리스 4세는 화려한 법의 대신 셔츠 한 장만을 걸친 단출한 모습을 한 채 발코니에 팔을 괸 방만한 자세로 법황궁 앞의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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