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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째. 7/27

7월 27일.

 날씨는 그랬다. 분명히 밝은 대낮이었기에 어제 말리다 남은 빨래도 마저 말리기 위해서 가방에 매달정도였다. 그 빨래가 검은색 등산옷이었는데, 오히려 이 옷을 말리는 덕분에 물이 태양빛에 가열되지 않아 시원하게 유지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뜨거운 여름날씨였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일기예보에서 나온대로 남부지방에서는 이번주 월요일부터 마지막 장마가 퍼붓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부터 시작되었다. 분명히 들어오기 전까지만해도 붓지 않던 하늘은 어느새 검은 먹구름으로 끼어 있었고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붓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꽃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는, 이미 폭우였다. 아니, 정확히 폭우라 할 수 있는 정도는 내가 꽃다리를 건너서 신호등을 지나고 119에 들어가서 수박을 한 조각 먹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짐을 모두 비닐로 쌓은 다음에 본 것이니라.

 말이 필요없는 폭우였다.

 어느정도 였냐면 119에 들어갔을 때가 서원대학교에 들어왔을 때보다 양호했으니 말이 필요없을 지경이다.

 현재 나는 서원대학교에 컴퓨터 프라자에 있다. 학생도 아니면서 이곳에서 내가 한 짓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웃지않고 넘어갈 수 없는 짓들이었다. 비에 젖은 생쥐만도 못한 꼴로 밤을 지새우기 위해 정자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다녔다. 비를 맞으며 다니니 시간이 지날 수록 촉박해지고 내 꼴은 망가져만 갔다.

 내가 먼저 서원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한 부부에게 물었다.

 「저기, 서원대학교 도서관이 어디에요?」

 「이 길 따라서 쭉 올라가시면 되요. 쭈욱이요」

 내 119에 있을 때 정자를 물었다. 평상시처럼 묵기 가장 좋은 곳은 교회도 아니고 절도 아니고 정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냐면 정자는 남에게 방해받을 필요도 없고 눈치도 볼 필요도 없는 극상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뭐, 정자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오대산에 가기 전에는 정자에서 잤지만 아침부터 그 곳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쫓겨난 적이 있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랴, 예배 드리랴, 예불드리랴, 밥먹으라 걱정할 필요없기로는 「정자」 만한 곳이 없었다.

 119에 친절한 아저씨들이 알려주시기로는 여기서 400m정도에 서원대학교가 있고 그곳에 정자가 있단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은 오두막형식의 정자다. 요 근대에 와서 자주만들어지는 정자 밑에 ㄷ 모양으로 나있는 3개의 긴 의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 있으려니 차라리 버스정류장을 가고 말지.

 그리고 아저씨들이 알려주시기로는 서원대학교 도서관 근처에 여럿이 있단다. 그래서 일단 가보자는 생각으로 갔다. 물론 가니까 확 보이더라.

 부부가 알려준 길로해서 뛰어갔다. 저기 한 여학생이 보인다. 학교 학생이면 당연히 학교 지리를 알 터, 그래서 물으러 가려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거기가 아니고 저기여!」

 허허, 질문을 잘못했다. 도서관을 묻지 말고 정자를 물을 껄. 여학생에게 묻기는 포기하고 일단 건물로 간다. 거긴 도서관이 아니다. 하지만 비는 피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우측으로 오두막 형식의 정자가 있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2명의 사람 그림자로 나는 그곳에 갈 수 없었다. 가서 이것저것 묻고 하는 것도 좋아겠지만 비에 맞으면서 내가 한 생각은 「아무도 없는」 정자에서 홀로 비를 피하는 것이었다. 혼자인 것이 습관이 되다보니 오히려 이게 당연하다는 듯이 찾았다.

 건물이 어느 건물인지는 모른다. 들어가서 물으니 듣는 소리는 「이 뒤로 가시면 2개 있고 저 뒤로도 ...」 잘 알려주셨으나 가까운 곳은 이 뒤. 그래서 그곳에 갔으나 ㄷ모양의 정자만 2채. 허. 그래서 뒤로 나온 김에 그 길을 따라서 계속 가니 휴게실 같은 곳이 보인다. 휴게실 같은 곳이 아니라 휴게실이다. 학생 휴게실이라고 잘 써있는 곳에 관리인도 아닌 학생에게 묻는다.

 「여기 정자가 어디 있나요? 가까운 곳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잘 모르겠는데요」

 뻔한 대답일 수도 있고 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쨋든 이상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다면서 나가려는데, 한 여학생이 외친다.

 「저기, 정자가 있는데」

 그 여학생은 나와서 문에서 그 위치까지 설명해주신다. 아, 감사해라. 그 분 덕에 그 정자까지 갔지만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서원대학교 도서관 컴퓨터 프라자. 그렇다면 내가 왜 이곳에 있을 까. 그것은 그 정자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여학생 4명이서 둘러앉아 있었다. 내 먼저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합석해도 될까요?」

 「네」

 그러면서 덧붙여 물었다.

 「여기 근처에 이 정자 말고 또 있나요? 오두막에」

 그러자 한 여학생이 당당히 대답해준다.

 「저기 우측에 있는 도서관에서 비를 피하시면 될텐데, 거기 24시간이에요」

 아, 이런 반가운 소식이. 그래서 급히 인사를 드리고 그곳으로 갔다. 경비실에서 물어 화장실로 간 후 나는 일단 씻고 빨래를 했다. 그리고 검은 등산옷으로 갈아입었다. 당연하지만 비에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감기에 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옷은? 화장실을 전세내고 이곳저곳에 잘 걸어놓았다. 「누가 가져간다면 필요해서 찾아가겠지」 라는 유스호스텔의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걱정없이 두고 왔다. 그러나 배낭은 걱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신분증에, 카드에, 돈까지 있다. 물론 이것도 필요해서 가져가는 거지만 이것이 없다면 여행은 21일만에 정지다. 아니, 일시정지로 머물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멈춘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내일 모래까진 대전에도 가고 싶다. 할머니도 뵙고 더 많은 사람도 만나고 싶다. 아직 나는, 더 배우고 싶다.

 그렇기에 배낭을 가지고 경비실에 맡기려니 아저씨가 사라졌다. 하아, 어딜가지 어딜가지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 이곳을 알려준 여학생4명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내가 「이야기」와 「손금」을 선사할까하고. 그러나 이미 밖은 어두컴컴하고 빗소리에서 그녀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말 조용히 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지만 1분 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있을 이유가 그리 많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갔나보다 하고 일단 안에서 쉴 곳을 찾았다. 내가 쉴 곳 보다는 가방이 쉴 곳. 그런데 컴퓨터 프라자를 보자, 일지를 연필로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이곳으로 왔다. 당연하지만 빈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옆에 놓았다.

 아, 내 땀냄새여. 검은 옷은 분명히 목욕탕에서 세탁을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모텔형이 말하기를 분명히 비누냄새가 날때까지 빨래하라고 했는데, 난 대충했으니 이럴만도 하지. 형의 말을 세겨듣고도 실천에 옮기지 않은 날 탓해야겠다. 나도 땀냄새가 나는데 주변에 다른 학생들은... 부디 인내에 익숙하거나 코감기가 걸려있기를 바란다. 문제가 되거들랑 자랑스럽게 나가야지.

 어쨋거나 발도 닦고 다시 나가서보니 경비실에 아저씨가 들어온다. 가서 신문지를 얻고 돌아와서 신발에 쑤셔넣는다. 사실 내가 하려했던 것은 화장실에서 휴지를 가져오려던 것인데, 경비실 아저씨가 때마침 오기에 신문지를 얻었다. 신문지가 익숙하다. 신발에 물기 빼기에는.

 그렇게 하고 나서 이렇게 앉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7월 27일에 일지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 뒤늦게 밤에 이야기만 것도 8시 50분밖에 안된 시간에 그 이야기만 했을 뿐이다. 그것도 별 일 아닌데 별 일인 거 처럼. 하아, 내 옷에 베인 땀냄새여.

 여기는 서원대학교 컴퓨터 프라자. 여기에 학생들은 대다수가 인강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허.. 이거 참.. 24시간 개방이라지만, 지금은 방학이지 않은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나는 아무래도 애늙은이가 맞나보다. 21살에 내 또래, 혹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인강을 보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보기 좋다」라고 말하다니. 늙었어. 늙었어.

 나는 공부를 하기도 그렇게 책을 보기도 그렇다. 책은 거의다 봤을 뿐만아니라 이거 다보거든 볼 책도 없다. 다음에 읽을 책은 「나무야 나무야」오늘 청주에서 샀어야만 했지만 비가 오는 관계로 시내를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본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소리를 지르며 무단횡단을 하는 미술학원 학생들 정도?  뭐, 예쁘게 차려입고 우산을 쓴 사람들도 많이 봤다. 학생이든 아줌마든 아저씨든.

 어쨋거나 내게 있어서 청주 시내는 빗속에서 노래부르며 걷는 길일 뿐이었다. 그것도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노래는 「sing in the rain」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거라도 나쁠 것은 없었겠지만.

 이곳에 열심히 하는 보기 좋은 학생들을 제쳐두고 나는 내 할일을 한다. 내게 있어서 글쓰는 것도 사람을 사귀고 배우는 것 만큼 중요하다는 가치를 두었으니 미룰 수는 없다. 거기다가 이렇게 좋은 환경에(일단 조용하다) 좋은 사람들(자기 일만 한다) 좋은 컴퓨터(글 쓰는데 문제없다)가 있으니 당연히 해야지. 게다가 게임 금지 아닌가. 나같으면 게임이나 할 사람인데 말이지.

 그러니 이렇게 글을 쓴다. 차라리 다음부터는 글 쓰기 위해서 대학교나 와야지 싶을 정도다. 지금은 아프리카 방송을 켜는 중이다. 그냥 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 글을 홍보하고 싶기도 하다. 글을 읽기 좋아하는 분이라면, 봐도 나쁘지 않은가. 내 생각을 보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답글을 남겨주면 소통도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아, 코를 찌르는 이 땀에 쩔어서 쉬는 이 냄새. 내 코가 썩어가는데, 일반인이라면 이것을 참을 수 있을 까. 만일 이것을 참는 다면 이것을 참는 사람들 또한 대단한 사람들일 뿐이로다. 정말 그정도로 이 옷은 세탁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하아.. 제대로 좀 할껄. 지금 세탁했던 옷은 어떤지 모르겠군. 그러나 비누냄새는 안맡았는데..

 어쨋거나 아프리카 방송이 안켜진다. 글 쓰는 것을 보여주면서 써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된다. 거기다가 보는 것도 안된다. 이런, 이거 참.

 홍보도 맘대로 못하니 그냥 쓰기나 해야지. 재밌으면 알아서 찾아봐 주시리라 믿으니 걱정안해도 되것지. 허허.. 솔직히 실력에 자신이 없긴 하다.

 오늘 있었던 일과 오늘에 「사람」에 대해서도 써야 한다.

 아침부터 쓰겠다. 하이라이트이자 내 여행의 목적. 이유인 「사람」을 마지막에 뿌려주겠다. 물론, 오늘은 가지 않았고 어떤 일이 있을 지는 모른다. 내가 갑자기 나가서 어느 분과 대화를 해서 그 사람에게서 또 배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사람」으로서 내가 바라는 이야기를 해준 것이니 이것도 적을 만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지금 이야기를 풀어야한다면 일단 오늘 있었던 것들을 적겠다.

 아까, 화장실에서 만났던 「자기의 나이를 알면 깜짝 놀랄겁니다」라고 하셨던 남자분이 있었는데, 난 대학교 조교정도로 생각했다. 그래봤자 30대인데, 뭐, 사실인가 보다. 그 분은 내가 여행을 한다하니 놀라며 대단하다고 하시는데, 쌩 고생이지. 것도 이렇게 비오는 날에 맞고 다녀봐라. 하시겠습니까? 아, 그럼 대단할 수도 있네. 안하는 걸 하니까.

 어쨋거나, 오늘은 일찍 일어나려 했는데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이건 내가 방학 동안 내내 계획하는 일이면서도 내내 실패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여기서 대전까지 40km는 된단다. 허? 그럼 10시간은 걸어야하는데 그럴라면 내가 내일 얼마나 가야하는 거야... 그렇다면 내일은 기필코 일찍 일어나야한다. 그런데 지금 잘 곳도 없고 일찍일어 날거라 믿겨지지도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난 방학 동안에 남기는 건 잠뿐이라 생각한다. 잠만큼은 제대로 자는거 같아.

 그래서 오늘도 마음만은 일찍 일어나고(실지로도 일찍 일어났다. 5시 40분쯤에는 깨어났으니까) 결과적으로는 10시가 넘어서 10시 20분쯤에 일어났다. 어제 12시가 넘어서 자긴 했다. 그거야 그 시간에 문자를 했으니 모르려도 모를 수가 없다. 그렇게 늦게 잤으니 4시 부터 일어나야지 했던 꿈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면 내가 늦게 일어나 늦게 출발하므로써 오늘 「사람」을 배웠으니까.

 그건 차차 이야기하고. 목욕탕에서 일어났으니 목욕을 하고 나왔다. 여기는 샴푸도 공짜다. 비누처럼 누르면 나온다. 거기다가 비누칠을 전신에 하기 편하게, 타월을 비누칠할때는 지구의 반원모양으로 비누를 합쳐서 만든 것에 비비면 된다. 그러니 빠르고 좋다. 어쨋거나 이 좋은 인삼탕에서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그리고 몸에 약도 골고루 바르고 나왔다.

 여기서 약 바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야겠는데, 왜 자꾸 이야기가 세나 해서 걱정하지 말라. 어차피 돌아온다. 걱정되면 이 문단을 건너뛰라. 그러면 편하다. 어차피 더러울 수 있는 이야기니까. 정확히는 그제부터일 것이다. 사타구니 아래이자 엉덩이 밑에, 항문 부근은 애매하고 거기서 치부 쪽으로 하여튼 애매한 부위에도 땀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여름에는 원래 난 거기도 땀이 난다. 그러나 그 정도로 덥지 않다가 갑자기 기온이 상승했는지 이젠 땀이 난다. 날이 시원해지면 걱정이 없지만 땀이나면 걱정인 것이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별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결국 화장실에 가거들랑 처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삼았다. 그래서 어제까지 뒤처리는 휴지를 많이 써서라도 까알끔하게. 대신 거칠게 많이 닦았더니 결국 어제 저녁. 그 부분이 아파오달. 즉 살이 까진것이다. 마찰로도 까지는데, 휴지가 살보다 더 거칠기에 뒤늦게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내 생각에는 휴지+살+땀인가 보다. 어쨋거나 아프기에 걷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제 찜질방을 잘못찾아서 1.5km를 더 걸었는데 겨우 그 거리를 택시를 탈 생각까지 했으니까 그 정도로 아팠다. 다행히 책은 내게 진통제 역할을 해주었고 잘 찾아왔다. 그래도 그 부분에 원래는 허벅지에 옷에 쓸려서 그 상처에 바르는 약을 그곳에 발라주었다. 뭐, 용도는 맞는지 좋은 결과만 나왔다. 오늘은 안아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여유롭게 약을 더 발라 주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일어나서 발이 부었는지 걸을때 아프더라. 뜨거운 물에 좀 들어가 있으니 낫긴 했지만, 뭐 그런 일이 있더라. 많이 걸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목욕탕이라 그런가.

 그런 일이 있었기에 약을 잘 바르고 나온 것이다. 나오고 보니 팔 주변에 하얀것이 보인다. 아, 살이 까지는 것이다. 물기가 없어지자 이제 살이 벗겨지려나 보다. 나는 어제 목욕탕에 간 이유가 어깨의 탄 부분만 껍질을 벗기려고 한 것인데, 이제보니 전체적으로 벗겨야할 껍질이 많나보다. 환골탈퇴라도 하는 것인가. 다리에서도 벗겨지려한다.

 그러나 지금 서원대학교에서는 그 부분이 피부처럼 잘 붙어있다. 아무래도 땀이나 물기 떄문이겠지. 뭐 그렇다고 본다. 고로 평상시에 씻을때 잘 봐둬야 한다는 건데, 중요하진 않다.

 그 후에 나와서 우측에 보니 세숫대야 냉면이 보인다. 와.. 비빔냉면을 시켰는데 정말 양이 많다. 육수를 부어서 좀 덜 맵게 먹을 걸. 그냥 비빔냉면을 먹는다고 매워죽는 줄 알았다. 거기다가 물만두까지 시켜서 양도 제법이었다. 가격은 냉면(5천)+물만두(3천)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일지장에 쓴 것을 읽으면서 컴퓨터로 다시 퇴고하여 하는 말들이다. 일지와 이야기가 다를 수 있지만 뭐, 상관있나? 그게 그거지.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전에도 자주 언급하겠지만(지금은 21일째 먼저 쓰니까 앞에서 언급이 안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앞 부분에 「사람」이 나오는 걸 보니 언급은 이미 했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다.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목적지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 목적지를 구체화하면 주제가 될 수 있다.

 도보여행을 하는 자가 걷는 것이 주제라서 열심히 걷는다면 그가 무엇을 보든 무엇을 느끼든 다 유쾌할 것이다. 도보여행일지라도 그의 주제가 문화재라면 그의 목적지는 문화재를 보는 것으로 그 느낌이 다를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내가 아는 사람들을 전국을 돌며 만난다는 것이 주제라면 그는 그 일을 하며 즐거울 것이고 한 예로 유럽을 여행하는 자가 배낭여행으로 자기가 음악선생이기에 과거 음악가들의 생가를 중심으로 여행한다면 그의 여행은 보람찰 것이다. 뭐, 똑같이 유럽여행을 가고 그것이 투어일지언정 잘 쉬고 잘 놀다온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처럼 여행에서 주제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든, 형태를 가지든 간에 존재하기 나름이다. 근데 나는 왜 나왔는가? 처음에 나올때도 물론 「사람」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을 만날까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주제라고 확실히 생각하지 않았다. 다양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그 자체를 주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 날 있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기로 했다. 물론 이것은 현재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주제가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확고해졌다. 처음에는 걷는 것에도 의미를 두었다. 많이 걷고 많이 봐야지도 생각했다. 여행이란 것이 무엇이 있을 지 모르니까. 그러나 그것을 구체화하고 세밀화하니 내게 필요한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나왔다.

 그것은 바로 「사람」

 즉, 내가 이번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것, 목적지가 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제 1차 목적지로 내가 선정한 곳은 고성의 통일전망대. 그러나 그곳에 가는 여정 속에서 만난 사람이야 말로 내가 원하는 것들이었다. 즉, 통일전망대를 가기 위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통일전망대로 간 것이었다. 그처럼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많이 만나고 보고 배우려고 했다. 그들마다 가진 인생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철학이 있고 다양한 것이 있기에 그런 사람들을 보려했다. 물론 그에 대한 내 생각도 있다.

 오늘 내가 그 「사람」이라는 존재의 이야기, 인생을 들었다. 내 여행의 목적이자 주제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직접 찾아가 들은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디있는지 내가 아나? 거기다 안다해도 그 사람이 자기 철학이나 인생이야기를 그냥 해주겠는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처럼 말하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조차도 내 인생 이야기를 「안녕하세요. 인생 철학 좀 이야기 해주세요」한다고 「네, 알겠습니다」하며 해주진 않겠다. 그렇다면 하물며 다른 사람은 어떻겠는가? 말할 가치도 없지 않은가.

 내 위 문단에서 말하기를 직접 찾아가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정착지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여행자라는 이유로 듣게 되었다. 즉, 원해서 듣는 것이긴 하나 있을 것을 알고 받는 것이 아닌, 원해도 모르는 사람에게 얻은 것으로 이것은 운이라고 해도 어울릴 법한 말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천했다면 내가 그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고로 나는 내가 지금 하는 여행이 「사람」을 만나고 듣고 하는 것에서 어울린다고 본다. 매일마다 들을 수는 없어도, 매일마다 들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다니는 것이 가치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해도 의미전달이 잘 되지 않는 윗문단이다. 다시 풀어말하자면 「여행」하는 사람이기에 「사람」에 대해서도 더 편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행」하지 않고 원해서 찾은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 쉽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란 거다. 이는 즉, 밀면 오히려 되받아치는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가진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람은 「가」라고 하면 「가」지 않고 「온」다. 즉, 청개구리처럼 시키는 것에 반대를 한다. 이것은 나만 그렇다고도 볼 수 있는데 나는 유난히 그렇다. 그리고 내가 본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음을 깨달으면서 나는 이것을 확립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시키면 시킨데로 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하려는 반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즉, 명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탁이라면 몰라도. 그렇기에 애초에 예고하고 찾아오는 자에겐 주지 않고 어쩌다가 갑자기 나타난 자에게 주는 것이라는 거다.

 어쨋거나 이거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나는 청주에 가로수 길이나 청북대, 서원대, 청주 공항, 속리산이나 뭐 인터넷으로 찾아도 모르는 그 계곡이 유명하다지만 앞서 말한대로 내 주제는 「사람」이기에 나는 이런 관광지나 볼거리에 가치를 두지 않겠다.

 그럼 그 「사람」이 누구고 어떻게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이제부터 이야기 하겠다.

 증평에서 청주로 가는 국도에는 청주로 다와가면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는 우측으로는(증평에서 청주방향으로) 공항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가로수길로 가는 곳이다. 이 사거리에서 왼쪽에 보면 입구에 300만원짜리, 전국에서 가장 크다는 오리가 있는 「오리사냥」이란 건물이 있다. 여기서 오리를 먹어보진 않았지만 전국으로 100여개의 체인점이 있다니까 아마 맛도 꽤 있는 곳일 것이다. 일단은 사거리로 들어서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뭐, 큰 건물도 없으니 길도 모르겠네. 어쩌나.. 하다가 아, 그냥 가자」하고 걸어갔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드는 것은 걱정이다. 왜냐면 표지판에는 시청, 군청 이렇게만 나오지 대전이라든가 청주라고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리사냥에 가서 길을 묻기로 했다.

 들어서니 한 아주머니가 화단을 만지고 있었다. 「길 좀 묻겠습니다」 이제는 버릇이 된 이 말로 길을 물었다. 대전가는 길과 서점가는 길을 물으니 그 길이 같은 방향이고 좀 멀다고 알려주신다. 여지껏 멀다는 곳도 다 걸어가고 했으니 가볍게 들으니 아주머니께서 물으신다. 「물병에 물은 있나? 물 안필요해?」

 물이야 언제든지 주시면 감사한 것으로 얻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들어가 인사를 하니 물을 받아주시면서 「밥은 먹고 다니나?」하고 물으신다. 하하하하, 때 마침 밥때가 되었다. 내가 12시쯤에 냉면을 먹었으니 이때가 4시쯤이었는데, 충분히 저녁을 먹을 필요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겠는가, 밥을 먹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얻어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물쭈물 하며 「잘 못먹죠. 굶을 때도 많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니 「이거 밥은 먹고 다녀야지. 이거 내가 주인이 아니라서 마음대로 못주겠네」 하시더니 곧 들어오는 사모님에게 아주머니가 묻는다. 그러니 사모님이 「그래? 들어와. 밥먹고가」 하신다.

 아이구 「오리사냥」사모님, 사장님, 아주머니들 모두 감사합니다. 이렇게 여기서 저녁을 먹고가게 되었다. 4시에 먹는 것인데 저녁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먹었더니 4그릇은 먹었다. 반찬은 김치찌개면 됬지 뭘 바라나. 고기도 좀 건저 먹었다.

 사모님은 4시에 식사를 하신다고 다같이 먹었다. 뭐, 지금 생각해봐도 이른 시간이었고 그것이 내가 밥을 편히 먹기 위해 그렇게 드신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많이들 드시지 않았으니까. 뭐, 내가 계산하지 않은 빵이 있기도 하지만(그분들은 빵을 드셨다고 했다) 어쨋거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한 번 더 드린다. 그 리고 식사 후에는 커피도 얻어먹었다. 아주머니들이다보니 나는 그저 어려보이는 것인지 어린애는 이렇게 먹는거라면서 코코아에 커피를 넣어주셨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이 볼거리와 자식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시더라. 5시까지 식사하고 이야기 듣고 하다가 일어났다.

 사모님이 말씀하시기로는 6시간 쯤 걸린다고 했는데, 뭐 실상 더 걸리겠지. 자세한 것은 가봐야 알겠고. 그래서 5시에는 새벽 1시쯤에 도착하겠다고 하셔서 나는 결국 일어선거라 볼 수도 있다. 뭐, 밥먹고 이야기 듣다보니 일어서야겠다 싶기도 했고.

 그렇게 사모님과 아주머니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나오는 길에 사장님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하는데 사장님이 이야기를 하신다.

 「자네를 보니, 참 보기 좋구만. 성격도 밝고 사고도 긍정적이고 참 부러워」

 「내 자식이 크면 나중에 자네처럼 해서 둘이 전 세계를 한 일주일 정도 다니면서 세상이야기도 하고 아버지 인생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자네를 보니 대단하구먼」

 하면서 이야기를 하시더니 들으면서 맞장구를 치다보니 하시는 말씀이,

 「내 자네에게 좋은 이야기 하나 해주지. 그것은 바로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이야. 「들어」라는 거지」

 이렇게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사장님도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으로 이야기를 하시지만 「들어」가 중요하단다. 이 들어는 말 그대로 듣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짜증나든, 지루하든, 재미없든, 그냥 듣는 것이다. 무슨 말이든 간에 그게 쓸모가 있든 없든 간에 듣는 것이다. 근데 왜? 그건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할지 모르기 떄문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모르는 것은 세상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근데 이 모름이 있기 때문에 듣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들음으로서 그 안에 내게 필요한 것이나 말이 담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얻는 경우 정말로 득이 되는 경우다. 그것은 내게 맞는 기호나, 환경, 경험 등에 어울리는 도움이 되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서도 말이 되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듣는 것이기도 하지만 들음으로서 얻는 것은 다른 것도 있다.

 일단은 들어주면 상대로부터 호감을 얻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는 상대가 이야기를 한다. 재미도 없다. 7이면 7 다 쓸모도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할 8이 가치있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비록 그게 필요없는 말일지라도 내가 그의 말을 잘 들어주면 내가 그를 싫어할지라도 그는 내게 호감을 같는다. 내가 잘 들어주니까 이 친구는 내 말에 귀를 귀울여 줄줄 아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만약에 7에서 8, 9 올라가다가 마지막 말인 10에서 내게 필요한 말까지 얻는다면, 나는 호감도 얻고 필요한 말도 얻게 되니 얼마나 멋진가? 물론 좋게 생각만 해서 그렇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언제나 중요하고 내게 필요한 말을 10에서 말한다고 해도 나는 1부터 9까지 다 떼어버리고 10만 들을 수는 없다. 아니, 만일 들을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게 쉬운가? 그렇지 않다. 근데 말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10만 들을 지라도 필요한 것만 듣고 시간도 절약되서 좋긴 하다. 하지만 1부터 9까지 다 들어주면 앞서 말한 호감을 얻을 수 있으니, 그리고 그게 엄연한 현실이니 그것을 받아들이면 이는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어서 다가올 수 있을 지를 알아야한다. 즉 들어주면 좋은 것이다.

 잘 들어주면 상대는 내가 경청하는 것을 알고 할 말을 더 많이 할 테니 그 중에 내게 도움이 될 말이 낭로 지도 모른다. 또는 말을 더 빠르고 재밌게 할테니 시간이 절약되기도 할 것이다. 물론 말만 많이 하고 필요없는 말만해도 그 말을 들어주는 나는 그에게 멋진 사람.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각인될 것이다.

 세상은 넓다. 좁다 하지만 별거 없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베풀면 돌아오는게 세상이기에 모른다고 나쁘게 대할 필요는 없고 모른다고 좋게 대할 필요는 있다.

 일단 그가 부산을 살고 내가 서울을 살 지 언정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다른 도시에 살아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해도 언젠가 만나서 일을 같이할 수도 있다. 이것은 더 넓게 생각하면 다른 나라에 살지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반대로 보면 나랑 그가 한 지역에, 같은 동네에, 같은 아파트에 옆집에 살지라도 평생 이야기도 안하고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간에 일단은 잘대해주고 말해주면 이것은 언젠가 좋게 돌아오는 것이다.

 말을 들어주는 것은 힘도 많이 들지 않고 돈도 들지 않는다. 그저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귀울이고 맞장구를 쳐주기만 하면 된다. 내게 위신이라고 생각되나? 들어주는 건 괜찮다. 그가 한 말에 대해서 내가 어찌 생각하고 판단할지에 따라서 나랑 반대되는 행동인지 보고 그 후에 위신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다. 거짓된 모습이라고 하는 것도 그 이후다. 그러니 일단 듣는 것이다.

 지금은 쌍방향 대화로 서로 말하다가 한쪽이 끼어들곤 한다. 그것이 당연한듯 싶이 되고 오히려 그렇게 대화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과거,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한 사람이 처음부터 쭉 자신이 할 말을 했다. 다른 사람은? 열심히 들어주었다. 다 듣고 나서 그 후에 자기가 말을 했다.

 이것은 내 생각에 상대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나 싶다. 만일 말이 안통한다 싶으면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꾹 참고 경청해보자. 그럼, 그 다음에 자기 할말을 하면 상대도 알아주지 않겠나? 못 알아주는 거라면, 별 수 없지. 우리나라 자동차 싸움같은 것을 보면 서로 자기 할말만 하기 바쁘니 뭐, 말이 안통하네 하는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지 않나 싶다.

 어쨋거나 「들어」 이것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듣는 자세, 듣는 습관, 듣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듣는 것이 습관화되고 그것이 자세를 이루고 모습을 갖춘다면 멋진 것이 되지 않나 싶다. 50년의 인생살이로서 내게 알려주신 깨달음인 「들어」 이니 내 잘 실천해서 행동으로 보일까 한다.

 또한 들어를 열심히 할 경우 상대로부터의 지식을 받게 된다. 즉, 지식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니 내 학식이나 지식이나 정보를 쌓을 때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그러니 들어주자. 잘 그리고 계속 들어주자. 그러면 꼭 도움이 되리라.

 다음으로 하신 말은 외상값으로 하신 말이지만 멋진 것이다. 훗날 아버지 성함이 전자 완자 근자라는 사람이 찾아오거들랑 그에게 한마디 해주는 것이다. 「내 자네 아버지에게 듣기로는 「들어」가 참 중요하고 이것이 살아보니 정말 좋더라.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준 자네 아버지는 대단하신 분이야. 좋은 아버지였어」라고 말이다. 그러면 이것이 곧 산 교육으로서 그 아들에게 깊이 세겨질 것이라는 말이다.

 후, 훗날에 그 아들이나 딸이 찾아오거들랑 꼭 그리 전해주겠습니다.

 마지막은 실버산업이다. 이 사장님이 6개월 정도 장사를 해보니 60%가 노인분들이 돈을 내신다고 하신다. 것도 40~50세정도 되는 자식들과 함께 오더라도 말이다. 이는 즉, 요즘 어르신들은 돈을 유산상속하거나 물려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다 쓰고 죽으려고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많기로는 자식보다 오히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닌가. 고로 이제는 실버산업에 투자해도 남는건 많을 지언정 버릴 건 없다는 것이다. 고객으로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곧 죽을 사람이 아니라, 죽더라도 돈은 다 쓰고 가실 분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버산업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곳에 돈벌이이자 경제의 수완이라는 말이다. 뭐, 이정도가 오늘의 이야기인데 아, 정말 내가 생각해도 짜증이 날 정도로 쉰내다. 쉬어- 아주 그냥.

 빨래 다해도 쉬네쉬어. 짜증이 날 정도구만. 일단 오늘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다른 날이나 소설을 좀 써야겠다. 화장실도 좀 다녀와야지. 신발에 신문지도 빼야겠고.

 잠은 어째야하나.. 밤샐까나 싶다.

 잠시 나갔다 왔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사람을 보면 이야기나 하려했는데, 뭐 늦은 밤이고 하니 사람들은 그저 갈뿐이다. 그래도 고교생 신소린(맞나?)의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생일 축하 노래불러주고 대충 몇 마디 하다 온거 같다. 그런데 어째 내가 쫓은 느낌이 나서 미안할 뿐이다. 초코파이도 얻어먹고 바나나도 얻어먹었지만 그녀들이 바란 것은 하나도 해주지 못한 것. 내가 뭐, 있나. 손금이나 봐주려했으나 그때 그들은 떠나려 했으니 별 수 없었다. 괜히 빛이 있는 곳으로 갔나. 싶기도 한데, 뭐 어쨋거나.

 그런 만남이 있었고 아까 「사람」 에 대해 이야기 하다 말았는데, 뭐, 한창 사람 이야기 하다가 사장님 이야기를 했으니 그게 사람이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짚고 넘어가자면 사장님의 인생철학이나 50년간의 삶을 이야기로 하자니 「들어」가 가장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들었고. 뭐, 했떤말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거 같으니 여기까지 하겠다.

 오늘은.. 어쩔까 아직도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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