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vel소설/습작

공의 경계 上 pp 75~81

2/ 살인고찰

...... and nothing heart.


ㅡ1995년 4월
   나는 그녀를 만났다.

/살인고찰


/1


 오늘밤에도 걷기로 했다.
 여름의 끝자락치고는 시원한 바람이 가을의 운치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시키 아가씨. 오늘 밤은 일찍 돌아와 주십시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내게 시중을 들어주는 아키다카가 그렇게 당부를 한다.
 성가시군, 억양 없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현관을 나왔다.
 정원을 지나 문을 빠져나온다.
 주위는 어둠. 사람 그림자 하나 없고 소리도 없는 심야. 날짜가 막 8월 31일에서 9월 1일로 바뀌는 오전 0시.
 바람이 약간 있어, 집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에서 사각사각 나뭇잎이 소리를 냈다.

 ㅡ가슴 속에 불쾌한 이미지가 끓어오른다.

 그렇게,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고요함 속의 산보가 시키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밤이 깊어지면 어둠도 역시 짙어진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는 것은 혼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반대로 혼자라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시시한 자문이다. 무슨 짓을 해도 나는 혼자가 될 수 없느 ㄴ것을.

 ㅡ큰길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나는 올해 열여섯 살이 된다.
 학년으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1학년으로, 흔한 사립고에 입학했다.
 어차피 어디로 가든 나는 집안에 처박혀 있을 수밖에 없다. 학력 따위 무의미한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적으로 가까운 학교에 들어가 통학시간을 단축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ㅡ골목길은 큰길보다 어둡다. 신경질적으로 점멸하고 있는 가로등만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뿌득, 하고 나는 어금니를 문다.
 요즘 들어 나는 왠지 안절부절못한다. 이렇게 밤 산보를 하는 도중에조차도 문득 그 아이를 떠올리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어도 나의 환경에 변화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동급생이건 상급생이건,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 겉으로 잘 드러나기 때문이겠지.
 나는 극도로 인간을 싫어한다. 어릴 때부터 아무래도 그들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구원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나도 그런 인간이어서, 내 자신조차 싫은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살마들이 말을 걸어도 그다지 친절하게 상대하질 못한다.
 ......특별히 싫어서 미워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의 그런 성질은 학교 내에 널리 아려져 일 개월쯤 지나자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졌다.
 나도 조용한 환경 쪽을 좋아하니, 주위의 반감은 그대로 두고 이상적인 환경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동급생 가운데 한 명, 나 료우기 시키를 친구로 대하는 학생이 있었다. 프랑스 시인 같은 성을 가진 그 인물이, 어쨌든 내게는 걸리적거렸다.
 그렇다.
 정말 걸리적거렸다.
 ㅡ멀리 가로등 아래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실수다. 그 녀석의 무방비하게 웃는 얼굴을 떠올려 버렸다.
 ㅡ사람 그림자는 어딘지 거동이 수상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때, 어째서.
 ㅡ나도 모르게 사람 그림자 뒤를 따라갔다.
 나는 그런 흉포한 흥분을 느꼈던 것일까?


 뒷골목에서 더욱 골목 안쪽으로 들어간 그곳은 이미 다른 세계였다.
 막다른 길이 되어 있는 그곳은, 길이 아니라 밀실로서 기능하고 있다.
 주위가 온통 건물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은, 아마 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일 것 같다. 거리의 사각지대라고 해야 할 그 좁은 틈에 부랑자 한 명이 살고 있을 터였다.
 지금은 없다.
 색 바랜 좌우의 벽에는 새롭게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좁은 골목은 뭔가 질퍽거리고 있었다
 수시로 떠돌던 썩은 과일냄새는 더욱 농후한 다른 냄새에 오염되어 있었다.

'[N]ovel소설 > 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의 경계 上 pp 81~91  (0) 2010.05.06
공의 경계 上 pp 61~74  (0) 2010.05.05
공의 경계 上 pp 55~61  (0) 201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