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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폴라리스 랩소디 1 pp 117~120

 <율리아나 공주와 북서쪽을 향하는 선단. 이 두 가지는 어떻게 연결되는 거지?>
 잠시 후, 라이온은 씁쓸한 얼굴로 자신이 추리의 대가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도무지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라이온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선장실의 문을 열고 나섰다.
 라이온이 레보스호의 갑판으로 올라왔을 때 늦은 오후의 태양은 하늘의 구름을 모두 검붉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하눈치일을 받아 팽팽하게 부푼 돛들도 모두 선홍색으로 물들어 반짝이고 있었다. 계속된 순풍 항해는 노잡이들을 행복하게 했고 노예장들을 욕구 불만에 빠트렸으며 갑판장들을 졸게 만들었다. 따라서 선단 전체는 약간 풀어진 듯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라이온은 그런 선원들에게 유익한 조언이나 따스한 격려 등을 던져주며 이물에 올랐다. (라이온의 등뒤로 걷어채인 엉덩이를 주무르며 눈을 흘기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즐비하다는 사실은 특기(특별히 다루어 기록함. 또는 그런 기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태양은 그의 왼편에서 이글거렸고 그것은 선단이 북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라이온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꿈꾸는 듯한 나른한 항해를 계속하는 선단에서 라이온은 혼자서 속을 부글부글 끓이고 있었다.
 라이온의 귓가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온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조금 틀었다. 그의 오른쪽 앞을 달리고 있는 그랜드머더호의 고물 선교 쪽이었다. 그곳의 덱체어에 앉아서 조용히 류트의 현을 뜯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랜드머더호의 선장 킬리였다. 저 바다 위의 성채인 터릿 갤리어스를 지휘하는 선장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마른 체격에 상대방을 친구로 만들기 좋은 처진 눈꼬리를 가지고 있는 사내. 물론 바다 사나이답게 질긴 몸을 가지고 있지만, 거친 해적들 사이에 서 있는 킬리를 보면 라이온은 항상 고래 무리에 잘 못 끼인 황새치를 떠올렸다.
 
그 킬리 선장이 수평선으로부터 가득 번져오는 석양을 마주한 채 류트를 뜯고 있었다.
 라이온은 그 연주에 특별히 심오한 의미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해적들이 소일거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해적은 굽은 쇠못만을 이용하여 자신이 죽인 적의 해골에 정교한 도안을 새겨넣고, 어떤 해적은 너덜너덜해진 널빤지에 나이프를 던져대고, 어떤 해적은 밧줄 매듭의 오묘함에 감탄하다가 자기 자신을 묶어버린 다음 동료들에게 풀어달라고 애걸하고, 라이온 자신의 경우는 선단의 진로와 키의 속셈에 대해 골머리를 썩히고, 그리고 킬리는 저렇게 류트를 뜯는 것이다. 육분(두 점 사이의 각도를 정밀하게 재는 광학 기계)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킬리의 가느다란 손가락들은 류트 위에서 춤을 출 때 퍽 어울린다.
 라이온은 뱃전에 두 팔을 괸 채 희미하게 들려오는 류트 소리를 감상했다.
 잠시 후 라이온은 놀랐다. 킬리가 연주하고 있는 음률(소리와 음악의 가락, 오음과 육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은 싱잉 플로라의 노래였다. 하지만 라이온이 놀란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킬리는 똑같은 음률을 연주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라이온은 그 음정(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을 뭐라고 판단내릴 수는 없었지만 싱잉 플로라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그 이상야릇한 느낌은 전혀 없다고 맹세할 수 있었다.
 킬리의 연주가 갑자기 멈췄다.
 킬리는 무릎 위에 류트를 세워둔 채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킬리와 라이온의 시선이 서로 마주치자, 킬리는 싱긋 웃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오닉스 나이트 때문에 노스윈드의 해적들은 손짓이나 몸짓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에 퍽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배 사이의 바다를 넘어 서로 손짓을 주고받았다.
 <감상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라이온 선장.>
 <싱잉 플로라의 노래 아닙니까?>
 <글쎄. 나야 그렇게 주장하고 싶지만.>
 <비슷하긴 합니다만.>
 <아냐. 틀려. 밤마다 들어서 흉내를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라이온은 눈 주위를 조금 찡그렸다. 킬리의 말대로 싱잉 플로라는 밤마다 노래를 불러왔다. 첫날처럼 무시무시한 울음 소리는 아니었다. 라이온은 그 노래를 외로운 사내에게 들려주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보장할 수 있는 노래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선단의 해적들이 모두 게으른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한 채 나른해 하는 것은 이보레 열도에서부터 시작된 순풍 항해 때문이 아니라 밤마다 들려오는 싱잉 플로라의 노래 때문인지도 모른다.
 킬리의 손짓이 계속되었다.
 <물수리호 녀석들 말인데, 자기 선장도 그 소리를 듣는다고 주장하더군.>
 <알버트 선장이? 진짜 그럴까요?>
 <그놈들은 알버트 선장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걸.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인데.>
 <자존심?>
 <알버트 선장은 내 연주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단 말이야.>
 킬리 선장은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런 그를 향해 야유의 손짓을 조금 보내던 라이온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밤마다 그 꽃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키 드레이번은 어떤 기분일까? 라이온은 멀리 앞쪽을 바라보았지만 이 거리에선 자유호의 고물에 있는 선장실을 똑바로 보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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