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카드로 체크하는 현관을 그대로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내부에는 거울이 붙어 있어 이용자의 모습을 비춰보이고 있었다.
옥색 기모노 위에 검은 가죽점퍼를 걸친 나른한 눈을 한 인물이 그곳에 있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멍한 그 눈동자.
시키는 거울에 비친 자신과 마주한 채, 옥상으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조용한 기계음과 함께 시키 주위의 세계가 올라간다. 기계 장치를 한 상자는 천천히 옥상에 도착할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의 밀실.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시키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고, 상관할 것도 없다. 그 실감이 공허한 마음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이 작은 상자만이 지금은 자신이 실감해야 할 세계.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린다.
그 앞은 일변하여 불빛이 없는 공간이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만이 있는 작은 방으로 나오자, 시키를 남기고 엘리베이터는 일층으로 내려갔다.
전등은 없고, 주위는 숨 막힐 정도로 어둡다.
발소리를 울리며 작은 방을 가로 질러,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ㅡ캄캄한 어둠이 혼미한 어둠으로 바뀐다.
시계 가득 거리의 풍경이 들어왔다.
후조 빌딩 옥상은 별 특징 없는 구조였다.
계속 이어지는 콘크리트 바닥과 그 주위를 둘러싼 그물 담장.
지금까지 시키가 있었던 작은 방 위에 급수 탱크가 있을 뿐, 달리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조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옥상이다.
단지, 그 풍경만은 색달랐다.
주위 건물보다 10층정도 높은 옥상에서의 야경은 아름답다기보다 불안하다.
가느다란 사다리 위에 올라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어두운, 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닷속 같은 밤거리는 확실히 아름답다. 거리 여기저기에 켜진 불빛들은 심해어의 파닥거림을 닮았다.
ㅡ자신의 시계가 세상 전부라고 한다면.
확실히 세상은 지금 잠에 빠져 있다.
어쩌면 영원히, 혹은 안타깝게도 일시적으로.
그 고요는 어떤 추위보다 심장을 조여 와 가슴이 아플 지경이었다ㅡ.
눈 아래 거리에 맞서듯 밤하늘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거리가 깊은 바다라면, 밤하늘은 그저 순수한 어둠. 그 어둠에 보석을 뿌린 듯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달은 구멍. 밤하늘이라는 검은 도화지에 뚫린 유난히 큰 구멍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 그것은 태양의 거울 같은 게 아니라, 저쪽 풍경이 들여다보이는 것뿐ㅡ이라고, 시키는 료우기 가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이른바, 달은 이계의 문이라고 한다.
그, 신대 시절부터 마술과 여자와 죽음을 품어온 달을 등지고, 사람모양 하나가 부유하고 있었다.
그 주위에 여덟 명의 소녀를 비행시키며.
밤하늘에 떠오른 하얀 모습은 여자의 것이다.
드레스로 착각할 만큼 화려한 흰색 의상과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팔다리가 가늘어 이 여자를 한층 우아해 보이게 했다.
가느다란 눈썹과 차가운 눈동자는 미모 중에서도 최고의 부류에 들어갈 것 같다.
나이는 이십 대 전반으로 추측된다. 물론 유령 같은 상대에게 생명으로서의 나이가 적용될지는 의문이지만.
하얀 여자는, 그렇다고 유려이라 할 만큼 불확실하지는 않다. 실제로 그곳에 있다. 유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녀를 중심으로 하여 밤하늘을 선회하는 소녀들 쪽일 것이다.
너풀너풀 끝없이 하늘을 방황하는 소녀들은 날고 있다기보다 헤엄치는 듯 하다. 그 모습도 불확실하여, 때때로 형태 자체가 투명해진다.
지금, 시키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은 하얀 여자와 그것을 지키려고 밤하늘을 헤엄치는 소녀들이다.
그 일련의 광경이 역겹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은.
"흐음ㅡ확실히 이것은 요상하군."
비웃듯이 시키는 중얼거린다.
이 여자의 아름다움은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다.
검은 머리는 너무나 멋있다. 비단실을 한 가닥씩 빗질한 듯한 매끄러움이라니. 바람이 강했더라면 검은 머리가 찰랑이는 모습은 더욱 그윽한 아름다움이 되었을 텐데.
"그렇다면 죽일 수 밖에."
시키의 중얼거림을 느꼈는지, 그녀는 시선을 하계로 떨어뜨렸다.
이, 지상 40미터가 넘는 후조 빌딩 옥상에서도 4미터나 더 높은 곳에 있는 그녀와 올려다보는 시키의 시선이 교차한다.
주고받는 말도 없을 뿐더러, 통하는 언어도 없다.
시키는 상의 안쪽에서 나이프를 꺼낸다. 날 길이가 6치의, 칼이라기보다는 칼날 그 자체인 흉기를.
상공에서 노려보는 시선에 살의가 일렁인다.
드디어, 하얀 옷자락이 흔들렸다.
여자의 손이 흐르며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시키를 가리킨다.
그, 가늘고 연약한 팔다리가 연상시키는 것은 백이 아니다.
"ㅡ뼈인가, 백합이군."
바람이 없는 밤, 소리는 길게 밤하늘에 남아 있었다.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살의가 담겼다.
하얀 손가락 끝은 정확하게 시키를 향하고 있다.
비틀, 하고 시키의 머리가 흔들린다. 가냘픈 몸이 무너져 내리듯 발을 헛디뎠다.
딱 한 번만.
"ㅡ"
머리 위의 여자는 그것으로 약간 겁을 먹은 듯 하다.
너는 날 수 있다, 하는 암시가 이 상대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상대의 의식 그 자체에 『날 수 있다』하는 인상을 심어주는 그것은 암시의 영역을 넘어 세뇌의 경지에까지 이르고 있다.
저항은 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정말 그것을 실천해버리거나, 아니면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아도, 날 수 있다고 하는 확고한 실감에 두려움을 느끼고 옥상에서 도망쳐 가게 되는, 불가피한 암시인데.
그것을 시키는 가벼운 현기증만으로 넘겨버렸다.
"ㅡ"
접촉이 미미했던 것일까, 여자는 갸웃거리며 한 번 더 암시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보다 강하게.
"날 수 있다"하는 미미한 인상이 아니라, "날고 있다"하는 확고한 인상으로서.
ㅡ하지만.
그보다 먼저, 시키는 여자를 보았다.
양 다리에 두 개,등에 하나. 중심보다 약간 왼쪽 흉부에 하나. ㅡ죽음이라는 이름의 절단면이 확실히 보인다.
겨냥한다면 특별히 가슴 언저리가 좋겠다. 그곳이라면 즉사다. 이 여자가 환상이건 무엇이건, 살아 있는 상대라면 설령 신이라 해도 죽여 보이겠다.
시키는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들었다. 손잡이를 거꾸로 쥐고, 상공의 상대에게 눈을 맞춘다.
그러는 동안, 한 번 더 시키의 마음속에 충동이 일었다.
......날 수 있다. 나는 날 수 있다. 옛날부터 하늘을 좋아했다. 어제도 날고 있었다. 아마 오늘은 더 높이 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편안하게. 미소 지으며. 빨리 가지 않으면. 어디로? 하늘로? 자유롭게?
ㅡ그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 넓은 하늘에 대한 동경. 중력의 역작용. 땅에 발이 닿지 않는다. 무의식중의 비행.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ㅡ가라!
"장난이야."
중얼거리며 시키는 아무것도 없는 왼손을 들어올렸다.
시키에게는 유혹이 통하지 않는다. 이제 현기증조차도 나지 않는다.
"그런 동경은 내 속에 없어. 살아 있다는 실감이 없으니, 살아가는 괴로움 따위 몰라. 아, 사실은 너 역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ㅡ그것은 노래하는 듯한 중얼거림.
삶에 따라다니는 희비교차, 크고 작은 다양한 속박을 시키는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이니 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은 곤란해. 그 녀석을 의지하기로 한 건 내가 먼저니까, 돌려 받겠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있는 왼손이 허공을 움켜쥔다. 그대로 뒤로 당기는 왼손에 조종되듯 여자와 소녀들의 모습이 휘익, 하고 시키에게로 끌려들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이 바닷물 째로 육지에 끌어 올려지듯이.
"ㅡ!"
여자의 형상이 달라진다. 그녀는 더욱 힘을 모아 의지로 시키를 때렸다. 말이 통한다면 그녀는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떨어져라, 하고.
그 원망을 깡그리 무시하고, 무서운 소리로 시키는 되받아쳤다.
"네가 떨어져라."
급속히 낙하해온 여자의 가슴에 나이프를 찌른다. 마치 과일을 찌르듯 어이없이, 찔린 사람이 황홀할 정도의 날카로움으로.
출혈은 없다.
여자는 가슴에서 등으로 빠져나간 칼날의 충격에 움직이지 못하고, 딱 한번 움찔 경련을 했다.
그 유체를 시키는 아무렇게나 내던진다.
담장 너머ㅡ밤거리의 한 복판으로.
여자의 몸은 철책을 빠져나가 소리도 없이 낙하했다.
떨어질 때조차 검은 머리는 나부끼지 않고, 하얀 옷자락만 바람에 펄럭이며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그것은 심해의 바닥으로 가라 앉아가는, 하얀 꽃 같았다.
그리고 시키는 옥상을 떠났다.
머리 위에는 아직, 허공을 떠도는 소녀들의 모습이 남아 있다.
/4
...
흉기에 가슴을 찔려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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