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소설/습작

갑각나비 3. 사전 -1

하얀s 2010. 10. 14. 01:01


 ...책 중의 책이자 말씀 중의 말씀인 유일한 성전 『날개의 서』에 이르길, '땅으로 추락한 인간들에게 날개를 되돌려 주기 위해 이 책이 존재하는 도다'라 했다. 필자는 참으로 건방지게도 이 성스러운 구절을 내 이 졸렬한 사전의 첫 머리에 인용해 본다. 이 사전은 언어의 궁핍과 고갈이라는 '땅'으로 떨어진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언어의 신비와 오묘함의 '날개'를 되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중략)
 ...신께서 내려주셨지만 인간의 경망함으로 인해 사라졌던 저 거룩한 날개를 되살려, '아름다운 하늘'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이 땅의 모든 존재들에게, 이 사전이 그 날개의 깃털 하나라도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이 사전을 접한 모든 이들과 아름다운 하늘에서 재회할 그 날을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물론, 악마를 제외하고 말이다.


                                  잉갈로드 마이어, 『972년 판 국어사전』의 서두 중에서



 ㄱ:


 게인 림스톤(1035~   ): 루덴 마을에 거주중인 21세의 남성.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2년 전 아버지마저 잃은 후, 몇몇 하인들과 함께 저택에서 쓸쓸히 살고 있다. 원래 동생이 한 명 있었지만('동생'항목 참조), 게인이 어렸을 때 병으로 사망했다. 루덴 마을에 있는 림스톤 가문 도서관의 주인이자 사서이기도 하다('도서관'항목 참조)..


 972년 판 국어사전: 로반트 대학의 언어학 교수이자 독실한 신자였던 잉갈로드 마이어(901~972)가 그의 말년에 최후로 남긴 국어사전. 종래의 편협하고 저열한 짜깁기 사전들과 그 수준을 달리하는 놀라운 수준의 국어사전으로 수록하고 있는 어휘 수만해도 보통 사전의 서너 배는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 동안의 국어사전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사어, 방언, 외래어들까지도 총망라해 편집한 이 사전은 만들어진 지 반 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그 이상의 사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잉갈로드 자신이 너무나 신앙심이 깊었던 탓에 사전이 지나칠 정도로 신앙적 색채를 띄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 날, '소년'이 게인에게 국어사전을 찾아달라 부탁했을 때, 게인이 소년에게 건네준 사전이 이것이었다.('독서' 항목 참조)


 기억: 게인과 '소년'의 마지막 만남이 있던 그 4번째 날, 게인은 몽롱한 의식 속에서 '남자'('남자' 항목 참조)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아직 왼팔뿐이군요."



 ㄴ:


 날개의 서: 메레 교('메레 교' 항목 참조)의 성전. 쓰여진 시기나 작가에 대해서는 일체 알려진 바가 없다. 유일신 메레에 의해 세계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메레와 성인들의 기적 등이 적혀 있다.


 남자(?~ ): '소년'의 일행인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초반의 남성. 여행객으로 보이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소년과 게인이 만난 3번째 날, 남자는 게인에게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아이는 오랫동안 자유를 모른 채 살아왔습니다. 자유뿐만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동안 갇혀서 지냈기에 많은 것을 모르고 있찌요. 제가 이렇게 여행을 멈추고 루덴 마을에 머물러서 아이에게 사전을 읽히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아이의 어머니는 참으로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다만 그 자상함이 어긋나있었을 뿐이지요."

 ('레이즈'항목에서 계속)



 ㄷ:


 도서관: 림스톤 가문 개인 소유의 장서관. 원래부터 타인에게 책을 양도하거나 공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게인의 조부가 책자 보관용의 서재로 만든 것이었다.
 게인의 조부는 황실에서 녹을 먹던 대신으로 행정 능력이 뛰어난 편이지만, 권력이나 재물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녹봉을 받는 대로 책과 그것을 읽기 위한 양초를 구입하는 데 써버렸다. 그리하여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식구들과 함께 30여 년만에 고향인 루덴 마을로 돌아올 때 가져온 짐이라고는 몇몇 생필품들과 수천 권의 책뿐이었다.
 안락하지만 지나치게 비좁은 고향집에 그 책들을 보관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게인의 조부는 아들 (그러니까 게인의 부친)과 함께 집 옆에 책을 보관하고 읽을 목적의 서재를 만들었다. 그러다 몇몇 마을 사람들이나 여행객이 그 서재와 책을 구경하러 오게되고 간간이 책들을 빌려가기 시작하면서 그 서재는 부지불식간에 도서관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그 서재는 명목상의 도서관이 되긴 했지만, 작은 시골 마을의 순박한 주민들은 대부분 글자를 알지 못했으며, 설혹 안다해도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가며 느긋하게 책을 읽을 리 없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책들(요리, 식료품, 농법 등을 다룬 것들)을 제외하고는 마을 사람들은 도서관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여행객들 몇몇만이 가끔씩 소문을 듣고 들려서 구하기 어려운 고서들을 보고 감탄한다든지, 아예 근처 여관에 며칠씩 묵어가며 희귀본들을 독파하고 다시 여행을 재촉하는 일이 있었다.
 게인 역시 조부와 부친이 차례로 사망한 후, 그 뒤를 이어 주인이자 사서로 도서관을 관리했다. 하지만 말이 관리지, 사실 그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가끔씩 찾아오는 마을 사람들이나 여행자들이 희귀본을 훔쳐가지 않나 살펴보고, 책들이 습기에 썩거나, 쥐의 간식거리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써주는 것, 그리고 간혹 양서들을 몇 권 들여오는 것 정도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그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주위에 둘러싸인 책들을 소리 죽여 읽어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그 도서관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