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소설/습작
공의 경계 上 pp 18~27
하얀s
2010. 4. 26. 02:09
토우코 왈, 기억이란 뇌가 행하는 기록, 보존, 재생, 확인의 네 가지 시스템이라고 한다.
『기록』은 본 인상을 정보로서 뇌에 기록하는 일.
『보존』은 그것을 간직해두는 일.
『재생』은 보존한 정보를 불러내는 일, 즉, 기억해내는 일.
『확인』은 재생된 정보가 전의 것과 동일한지를 확인하는 일.
이 네 가지 과정 가운데 하나라도 못하면 기억장해가 된다. 물론 각각의 고장 난 곳에 따라 기억장해의 사례도 달라진다.
하지만 내 경우, 이 모든 것이 아무 지장 없이 작동하고 있다. 예전의 기억에 대한 실감은 없지만, 자신의 기억이 예전의 내가 받은 인상과 똑같다고 하는 『확인』도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전의 내 자신에게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나라는 실감이 없다.
료우기 시키라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도, 그것이 남의 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틀림없는 료우기 시키인데.
2년이라는 공백은 료우기 시키를 무로 만들어 버렸다.
세간의 평가가 아니라, 내 속에 든 것을 무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내 기억과 내가 가지고 있었을 성격. 그 연결의 끈이 절망적일 정도로 끊겨 있다.
그렇게 되자, 기억은 단순한 영사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그 영상 덕분에 나는 예전의 나처럼 하고 다니긴 한다. 부모에게도 지인에게도, 그들이 알고 있는 료우기 시키로서 대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나와 상관없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나를 고민하게 한다.
ㅡ이거야말로 의태군.
나는 조금도 살아 있지 않다.
막 태어난 갓난쟁이나 다름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십칠 년이라는 기억이 나를 한 사람의 완성된 인간처럼 만들고 있다.
원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어야할 감정은 이미 기억으로서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체험하려고 해도 이미 그것은 알고 있는 일인 것이다. 거기에는 감동도 없으며, 살아있다는 실감도 없다. ......원리가 들통 난 마술이, 더 이상 관객을 놀라게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는 실감도 갖지 못한 채, 예전의 나다운 행동을 되풀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렇게 하면, 나는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하면, 이 밤 산보의 의미를 알수 있을지도 모른까.
......아,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예전의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겠군.
한참을 걸어온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은 요즘 화제인 오피스 가였다.
같은 높이의 빌딩들이 사이좋게 길 위에 늘어서 있다. 빌딩 표면은 한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지금은 그저 달빛만 반사하고 있었다. 큰길에 늘어선 빌딩 군은 괴인이 배회하는 그림자그림의 세계 같아 보인다.
그 안쪽에, 유난히 높은 그림자가 있었다. 20층 높이의 사다리 같은 건물은, 달까지 닿기 위해 뻗은 가느로 긴 탑처럼 보였다.
탑의 이름은 후조라고 한다.
맨션인 후조 빌딩에 불빛은 없다.
주민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겟지. 시간은 막 오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때ㅡ대수롭잖은 그림자가 망막에 비쳤다. 사람의 모습 같은 그림자가 시계에 떠오른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 소녀는 떠 있었다.
바람은 없다.
여름치고는 이상하게 차가운 밤기운이었다.
ㅡ목덜미 뼈가 추위 탓에 찡하고 울린다.
물론 그런 건 나만의 착각.
"뭐야, 오늘도 있잖아."
불쾌하지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예의 소녀는 달에 기대기라도 하듯 비행하고 있었다.
부감풍경/
...
ㅡ이미지는 잠자리. 바쁘게 날고 있다.
나비 한 마리가 따라왔지만, 날개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나비는 언젠가부터 따라오지 못하다 시계에서 사라질 무렵, 힘없이 떨어져갔다.
호를 그리며 떨어져갔다.
머리를 쳐든 뱀 같은 모양의 낙하는, 하지만 꺽어진 백합을 닮았다.
그 모습이 몹시 슬프다.
함께 갈 수는 없어도, 적어도 조금은 더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나는, 멈춰 서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으니까.
...
누군가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와 할 수 없이 일어나기로 했다.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두 시간으로는 잠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이것은. 그런데도 활동하려고 하는 나도 참 기특한 걸, 하고 잠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보니, 의식은 졸음을 이겨버렸다. ......나도 참 단순해서 탈이다.
아마 어제는 밤 새워 도면을 완성시키고, 그대로 토우코 씨의 사무실에서 잠든 모양이다.
벌떡,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역시 이곳은 사무실이었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여름 햇빛 속에서 시키와 토우코 씨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키는 선 채 벽에 기대어 있고, 토우코 씨는 다리를 꼬고 파이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키는 여전히 기모노를 말끔하게 입고 있다.
토우코 씨는 장식이 없는 타이트한 검은색 바지에 새로 산듯한 잘 다려진 흰색 와이셔츠. 짧은 머리에 목덜미를 드러낸 그녀는 마치 어느 회사의 사장비서 같은 분위기다. 물론 안경을 벗었을 때의 사악한 눈매는 필설로 다 할 수 없으므로, 평생 그런 직업은 가지지 못하겠지만.
"좋은 아침, 고쿠토."
곁눈질로 쳐다보는 토우코 씨의 시선은, 뭐, 늘 있는 일이다. ......토우코 씨가 안경을 벗고 있는 것을 보니 시키와 그쪽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합니다. 잠이 들어버린 모양입니다."
"별 것 아닌 일 설명 하지 마. 보면 알아."
차갑게 내뱉고 담배를 입에 무는 토우코 씨.
"일어났으면 차부터 끓여줘. 좋은 리허빌리가 될 거야."
"......?"
리허빌리란 건, 역시 재활훈련(rehabilitation)을 말하는 걸까. 내가 어째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수수께끼지만, 토우코 씨는 언제나 이런 식이니, 따지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시키도 뭐 좀 마실래?"
"난 됐어. 곧 잘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시키는 확실히 수면부족 같았다.
어젯밤, 내가 돌아간 후 밤 산보라도 한 것일까.
사무실 겸 토우코 씨의 개인용으로 쓰이는 방 옆에는 주방 같은 방이 하나 있다.
원래는 실험실로 썼는지 수도꼭지가 옆으로 세 개나 나란히 있다. 이를테면 학교 수돗가처럼. 그 중 두 개는 철사로 묶여져 사용금지가 되어 있었다. 이유는 불명. 알기 쉬워서 좋잖아, 하고 토우코 씨는 말하지만, 마음이 살벌해지는 것이 그다지 좋은 건 모르겠다.
자, 커피메이커를 작동시킨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를 끓이는 일이어서, 지금은 자면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졌다.
나 고쿠토 미키야가 이곳에 취직한 지도 벌써 반 년 가까이 지났다.
아니, 취직이라고 하기는 좀 우습다. 어쟀든 이곳은 회사로서 성립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것을 각오하고 덤벼든 것은, 토우코 씨의 작품에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시키가 열입골 살인 채로 사건이 멈춰버린 후, 나는 목적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시키와의 약속이었다.
시키가 다시 일어날 조짐이 없는 병상에 있었다 해도, 그 약속만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그저 달력의 날짜만을 세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친구의 권유로 전시회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형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도덕의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육박할 만큼, 아주 정교한 인형이었다. 인간을 그대로 정지시킨 듯한 그것은, 동시에 절대 움직이지 않는 인형이라는 것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었다.
분명히 인간은 아니면서, 동시에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인형.
당장이라도 숨을 내쉴 것 같은 인간. 하지만 처음부터 생명 따윈 없는 인형. 생명만은 가질 수 없는, 그러나 인간으로는 도달하지 못할 곳.
그 이율배반에 나는 포로가 되었다. 아마 그 모습 전부가 그때의 시키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형을 출품한 사람은 불명이었다. 팸플릿에는 그 존재조차 실려 있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조사해보니, 그것은 비공식 출품작으로 제작자는 업계에서 복잡한 사정이 있는 인물이었다.
제작자의 이름은 아오자키 토우코.
그녀는 말하자면 속세를 떠난 사람이었다.
인형 만들기가 본업이면서 건물 설계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 하지만, 일을 의뢰받는 일은 전혀 없다. 언제나 스스로 "이런 물건을 만들겠습니다."하고 상대에게 팔러 가서, 보수를 선불로 받고 제작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대단한 도락가일까, 아니면 괴짜일까.
거기서 그만 두면 좋았을 텐데, 관심은 더욱 깊어져, 나는 끝내 그 괴짜의 거처를 찾아내고 말았다.
『기록』은 본 인상을 정보로서 뇌에 기록하는 일.
『보존』은 그것을 간직해두는 일.
『재생』은 보존한 정보를 불러내는 일, 즉, 기억해내는 일.
『확인』은 재생된 정보가 전의 것과 동일한지를 확인하는 일.
이 네 가지 과정 가운데 하나라도 못하면 기억장해가 된다. 물론 각각의 고장 난 곳에 따라 기억장해의 사례도 달라진다.
하지만 내 경우, 이 모든 것이 아무 지장 없이 작동하고 있다. 예전의 기억에 대한 실감은 없지만, 자신의 기억이 예전의 내가 받은 인상과 똑같다고 하는 『확인』도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전의 내 자신에게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나라는 실감이 없다.
료우기 시키라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도, 그것이 남의 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틀림없는 료우기 시키인데.
2년이라는 공백은 료우기 시키를 무로 만들어 버렸다.
세간의 평가가 아니라, 내 속에 든 것을 무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내 기억과 내가 가지고 있었을 성격. 그 연결의 끈이 절망적일 정도로 끊겨 있다.
그렇게 되자, 기억은 단순한 영사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그 영상 덕분에 나는 예전의 나처럼 하고 다니긴 한다. 부모에게도 지인에게도, 그들이 알고 있는 료우기 시키로서 대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나와 상관없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답답함으로 나를 고민하게 한다.
ㅡ이거야말로 의태군.
나는 조금도 살아 있지 않다.
막 태어난 갓난쟁이나 다름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십칠 년이라는 기억이 나를 한 사람의 완성된 인간처럼 만들고 있다.
원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어야할 감정은 이미 기억으로서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체험하려고 해도 이미 그것은 알고 있는 일인 것이다. 거기에는 감동도 없으며, 살아있다는 실감도 없다. ......원리가 들통 난 마술이, 더 이상 관객을 놀라게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하여 나는 살아있다는 실감도 갖지 못한 채, 예전의 나다운 행동을 되풀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렇게 하면, 나는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하면, 이 밤 산보의 의미를 알수 있을지도 모른까.
......아,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예전의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할 것도 없겠군.
한참을 걸어온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그곳은 요즘 화제인 오피스 가였다.
같은 높이의 빌딩들이 사이좋게 길 위에 늘어서 있다. 빌딩 표면은 한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지금은 그저 달빛만 반사하고 있었다. 큰길에 늘어선 빌딩 군은 괴인이 배회하는 그림자그림의 세계 같아 보인다.
그 안쪽에, 유난히 높은 그림자가 있었다. 20층 높이의 사다리 같은 건물은, 달까지 닿기 위해 뻗은 가느로 긴 탑처럼 보였다.
탑의 이름은 후조라고 한다.
맨션인 후조 빌딩에 불빛은 없다.
주민들은 모두 잠에 빠져 있겟지. 시간은 막 오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때ㅡ대수롭잖은 그림자가 망막에 비쳤다. 사람의 모습 같은 그림자가 시계에 떠오른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그 소녀는 떠 있었다.
바람은 없다.
여름치고는 이상하게 차가운 밤기운이었다.
ㅡ목덜미 뼈가 추위 탓에 찡하고 울린다.
물론 그런 건 나만의 착각.
"뭐야, 오늘도 있잖아."
불쾌하지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예의 소녀는 달에 기대기라도 하듯 비행하고 있었다.
부감풍경/
...
ㅡ이미지는 잠자리. 바쁘게 날고 있다.
나비 한 마리가 따라왔지만, 날개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나비는 언젠가부터 따라오지 못하다 시계에서 사라질 무렵, 힘없이 떨어져갔다.
호를 그리며 떨어져갔다.
머리를 쳐든 뱀 같은 모양의 낙하는, 하지만 꺽어진 백합을 닮았다.
그 모습이 몹시 슬프다.
함께 갈 수는 없어도, 적어도 조금은 더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나는, 멈춰 서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으니까.
...
누군가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와 할 수 없이 일어나기로 했다.
...눈꺼풀이 너무 무겁다. 두 시간으로는 잠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이것은. 그런데도 활동하려고 하는 나도 참 기특한 걸, 하고 잠시 자아도취에 빠져 있다 보니, 의식은 졸음을 이겨버렸다. ......나도 참 단순해서 탈이다.
아마 어제는 밤 새워 도면을 완성시키고, 그대로 토우코 씨의 사무실에서 잠든 모양이다.
벌떡,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역시 이곳은 사무실이었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여름 햇빛 속에서 시키와 토우코 씨가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키는 선 채 벽에 기대어 있고, 토우코 씨는 다리를 꼬고 파이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키는 여전히 기모노를 말끔하게 입고 있다.
토우코 씨는 장식이 없는 타이트한 검은색 바지에 새로 산듯한 잘 다려진 흰색 와이셔츠. 짧은 머리에 목덜미를 드러낸 그녀는 마치 어느 회사의 사장비서 같은 분위기다. 물론 안경을 벗었을 때의 사악한 눈매는 필설로 다 할 수 없으므로, 평생 그런 직업은 가지지 못하겠지만.
"좋은 아침, 고쿠토."
곁눈질로 쳐다보는 토우코 씨의 시선은, 뭐, 늘 있는 일이다. ......토우코 씨가 안경을 벗고 있는 것을 보니 시키와 그쪽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합니다. 잠이 들어버린 모양입니다."
"별 것 아닌 일 설명 하지 마. 보면 알아."
차갑게 내뱉고 담배를 입에 무는 토우코 씨.
"일어났으면 차부터 끓여줘. 좋은 리허빌리가 될 거야."
"......?"
리허빌리란 건, 역시 재활훈련(rehabilitation)을 말하는 걸까. 내가 어째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수수께끼지만, 토우코 씨는 언제나 이런 식이니, 따지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시키도 뭐 좀 마실래?"
"난 됐어. 곧 잘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시키는 확실히 수면부족 같았다.
어젯밤, 내가 돌아간 후 밤 산보라도 한 것일까.
사무실 겸 토우코 씨의 개인용으로 쓰이는 방 옆에는 주방 같은 방이 하나 있다.
원래는 실험실로 썼는지 수도꼭지가 옆으로 세 개나 나란히 있다. 이를테면 학교 수돗가처럼. 그 중 두 개는 철사로 묶여져 사용금지가 되어 있었다. 이유는 불명. 알기 쉬워서 좋잖아, 하고 토우코 씨는 말하지만, 마음이 살벌해지는 것이 그다지 좋은 건 모르겠다.
자, 커피메이커를 작동시킨다.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를 끓이는 일이어서, 지금은 자면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졌다.
나 고쿠토 미키야가 이곳에 취직한 지도 벌써 반 년 가까이 지났다.
아니, 취직이라고 하기는 좀 우습다. 어쟀든 이곳은 회사로서 성립되어 있지 않으니까. 그것을 각오하고 덤벼든 것은, 토우코 씨의 작품에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시키가 열입골 살인 채로 사건이 멈춰버린 후, 나는 목적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시키와의 약속이었다.
시키가 다시 일어날 조짐이 없는 병상에 있었다 해도, 그 약속만은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생이 된 나는 그저 달력의 날짜만을 세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친구의 권유로 전시회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인형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도덕의 한계에 아슬아슬하게 육박할 만큼, 아주 정교한 인형이었다. 인간을 그대로 정지시킨 듯한 그것은, 동시에 절대 움직이지 않는 인형이라는 것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었다.
분명히 인간은 아니면서, 동시에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인형.
당장이라도 숨을 내쉴 것 같은 인간. 하지만 처음부터 생명 따윈 없는 인형. 생명만은 가질 수 없는, 그러나 인간으로는 도달하지 못할 곳.
그 이율배반에 나는 포로가 되었다. 아마 그 모습 전부가 그때의 시키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형을 출품한 사람은 불명이었다. 팸플릿에는 그 존재조차 실려 있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조사해보니, 그것은 비공식 출품작으로 제작자는 업계에서 복잡한 사정이 있는 인물이었다.
제작자의 이름은 아오자키 토우코.
그녀는 말하자면 속세를 떠난 사람이었다.
인형 만들기가 본업이면서 건물 설계도 하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면 뭐든 하지만, 일을 의뢰받는 일은 전혀 없다. 언제나 스스로 "이런 물건을 만들겠습니다."하고 상대에게 팔러 가서, 보수를 선불로 받고 제작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대단한 도락가일까, 아니면 괴짜일까.
거기서 그만 두면 좋았을 텐데, 관심은 더욱 깊어져, 나는 끝내 그 괴짜의 거처를 찾아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