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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J.O.B 1. 블링크 슈즈Blink Shoes -3

차갑게 물감이 빠진 퍼런색의 입술은 그가 많이 아프다는 걸 말해주었다.

오들오들 떨리는 그의 손은 이미 체온을 많이 잃었음을 알려주었다.

단호하게 치켜든 그의 나이프는 그가 이미 이성을 상실했음을 뜻했다.

나는 그가 교복차림이라는 것에 신경 쓰지 못했다. 단지, 그가 지금 들이밀려는 칼이 대상으로 한 사람을 보았다.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전력을 다해 뛰어갔다. 나재인의 팔은 그의 허약한 체력에 걸맞게 가늘고 앙상했다. 근육이라고는 제대로 없는 샌님의 팔에 들린 칼은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재인!”

그는 내 부름이 신호가 되었는지 칼을 내리꽂았다. 살인행위를 무참하게 저지르는 그를 보고도 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나는 그에게 뛰어들며 밀쳐냈다. 나이프가 아슬아슬한 순간에서 내 팔꿈치에 맞으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나는 나재인을 안고서 땅을 굴렀다. 차갑게 얼어버린 땅바닥은 단단한 철판처럼 매섭게 내 온몸을 쳤다. 몇 번을 구르면서 나재인을 밀쳐낸 나는 그를 보았다.

붉은 홍채에 검은 눈동자.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정신 차려!”

나재인은 평소 그가 받은 체력 성적과는 전혀 다른 몸놀림으로 땅을 굴러서 상체를 앞으로 숙여서 균형을 잡았다. 다리가 땅을 박차고 당장이라고 뛰어올 것만 같은 자세로 나재인은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호흡에 따라 이미 붉은 액체를 묻힌 나이프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빨간 물방울이 나이프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음 지면 위로 핏방울은 물풍선처럼 터졌다.

“흐ㅡ으으ㅡ아ㅡ.”

초점이 흐리진 않았지만 명확하게 그 눈은 살기를 띄고 있었다. 살인이 이미 일어난 듯이 보이는 그 눈이 순간 나를 관통했다. 나는 시간이 정지된 세상에 심장마저 멈춘듯이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재인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투태세에서 당장이라도 달려들 모양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뒤를 보았다. 나재인에게 억눌려 있던 여자는 벽에 기대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녀의 목덜미부분에는 빨간 선이 거있었다. 이미 죽음의 경계에 놓여있는 그 선은 그녀의 소생시간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앞을 보았다. 거칠게 숨을 내뱉는 나재인은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재인. 너답지 않아. 그 칼 내려놓으라고.”

그는 내 말에 반응하듯이 칼을 천천히 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나이프가 거의 지면에 닿기 직전에, 나재인은 칼을 돌려 역으로 쥐고는 앞으로 뛰쳐나왔다.

“크ㅡ아아ㅡ아!”

100m 달리기조차 제대로 뛰지 못하는 나재인이 아니었다. 체육 과목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다면서 웃어넘기던 내 단짝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마치 짐승처럼 나와의 거리를 눈깜빡할 사이에 줄이고는 나이프를 휘둘렀다.

정확히, 목.

목이 아니었다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나이프가 역수로 내 목이 있던 지점에 은빛 선을 그었다. 공간이 잘리듯이 하얀 빛이 보였다. 나는 넘어지듯 뒤로 피했지만 나재인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리며 두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막을 수 없다. 막을 수 없다. 나재인 공격은 막을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하얀 빛을 보았다. 빠르게 나타난 빛은 정확히 나재인의 얼굴을 맞췄다. 돌면서 베려던 나재인은 회전력 그대로 고스란히 무언가에 맞으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달려들던 거리의 대부분을 밀려나던 그가 바닥에서 갑자기 튀어 올랐다. 땅에 착지하면서 다시 낮게 자세를 취하고 짐승 같은 포효를 하며 내 옆을 응시했다.

“괜찮아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재인에게 쓰러져 있던 여자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건지 그녀는 크로스백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 두어 번 털었다. 조금 전의 빛은 그녀의 주먹이었다. 나는 내 옷을 살펴보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목티가 예리한 칼에 잘려 목 부분과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아직은. 초면에 실례지만 물어 볼게 아주 많은데…….”

그녀는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좋아요. 일단 여기서 살아난다면 물어보는 거 이상으로 호의를 베풀어줄 테니까 조금 도와줄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흘깃 나를 보고는 다시 나재인을 향했다. 크로스백이 무기인듯이 쥐고 있는 그녀는 주변을 살피더니 내게 말했다.

“저 남자는 당신 친구 맞죠? 그렇다면 평소에는 저러지 않을 테니 분명히 지금 마인드 컨트롤Mind Control 상태예요. 마인드 컨트롤러를 찾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은 저 친구를 기절시키는 방법뿐인데, 아무래도 지금 당신 친구는 평소답지 않은 운동신경을 가졌을 거예요. 반사신경도 뛰어나고 회복력마저 대단하죠.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이길 수 없어요. 그러니 잠시 시간을…….”

나는 그녀의 말을 유심히 듣다가 앞으로 나섰다. 내 행동에 그녀는 말을 멈추고는 나를 보았다. 내 등 뒤로 느껴지는 시선을 의식하며 나는 평소답지 않게 말했다.

“지금 내 친구를 상대로 마인드 컨트롤이니 뭐니 하면서 말하는 게 솔직히 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시간이 된다면 모조리 물어 볼 거니까 각오하세요. 대신, 제 친구는 제가 책임지죠.”

그녀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내 등에 말했다.

“좋아요. 내 이름은 라다희예요. 잘 부탁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우. 그럼 시작하죠.”

나는 나재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재인. 너 때문에 그만둔 싸움. 너로 인해 종지부를 찍을 수 있어서 좋았으니까, 이번 한번만 용서해다오. 너와 싸우는 거니까!”

나재인이 낮게 그르렁거렸다. 그걸 응답으로 듣고 나는 앞으로 달려갔다. 나재인은 나와 동시에 뛰어나왔다. 나보다 더 빠르고 민첩하게. 그리고 한 발 더 정확하게 내 온몸의 급소를 향해 그 빨간 눈으로 허점을 살폈다. 나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그의 팔이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 품에 들어가면서 그를 밀었다. 나재인이 팔꿈치로 내 등을 내리찍었다. 순간 호흡이 멈출 정도로 아팠지만 그대로 밀쳐내면서 그의 다리를 양팔로 붙잡았다. 나재인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고 나는 그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의 나이프를 쥔 손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마치 단단한 통나무를 치는 듯이 주먹이 아팠지만 그는 나이프를 놓았다.

“미안하다!”

나는 오른팔을 뒤로 길게 내뺐다. 그리고 곧장 내리찍었다.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오른손의 감각이 없어졌다. 그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눕히고 있었다. 잠시간 잃었던 감각이 돌아오자 오른손가락이 뽑히는 듯한 통증이 주먹을 통해 느껴졌다. 통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나재인은 한 팔로 나를 밀쳐내고는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쇠방망이로 맞은 듯이 호흡이 멈추자 이번엔 얼굴을 내리쳤다. 그대로 나는 뒤로 날아가 지면과 키스하고 말았다.

“이길 수 있는 거죠?”

뒤를 돌아본 내게 라다희가 물었다. 땅을 박차고 일어나면서 나는 대답했다.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버려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 책임은 여기까지 인거 같군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녀는 미소지었다. 라다희는 근처에 구두를 벗어놓고는 그녀가 입은 코트와 같은 흰색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신발을 신는 모습에 나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라다희는 하얀 캔버스 한 짝을 다 신고는 말했다.

“물론이죠.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그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