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 수록. 더 하자. 빠듯할 수록. 더 힘들게 하자.
그러니 지금은 갑각나비를 써보자. 쓰고 싶은 것은 공경, 폴라(몇몇 대사), 드래곤 라자 등이 있으니. 좋은 것을 옮겨보자. 갑각은... 기본적인 걸 배우기 좋은 거 같아. 짧은 단편식이
근데 1 편만 벌써 4번째 쓰는 중.. 멍미
1. 후기
나는 의심해왔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창조물이라 여기고 있던 그 글줄들이 실은 진실이며, 그들을 창조했다 여기던 나야말로 그들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 일지 모른다 의심해왔다. 위대한 광대 엔쥴로스의 우스꽝스러운 손놀림이, 펜을 잡은 내 손가락에 메인 실을 움직여 의도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게 한 것은 아닐지 의심해왔다.(요건 좀 길다. 이런 경우는 글을 전달하기가 어려운데, 손놀림이 실을 움직여 그려내게 한 것은 아닐지 의심해왔다는 것은 괜찮은 거 같네. 나는 어차피 나와있으니 중복되서 필요없고.)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써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왔다.(상당히 멋지단말이야.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세계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확신한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이 '어둠'이 '빛'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내 귀에 들려오는 이 '비명'이 '소리'가 있음을 들려주고 있다. 내 코에 풍겨드는 이 '비린 내'가 '냄새'가 존재함을 맡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공포에 떨고 있는, 이 '나'의 존재가 이 '세계'가 실존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이것도 괜찮은 것 같아.)
그녀가, 나에게 이처럼 무한한 환희와 공포를 주는 식인의 숙녀가, 양손을 뻗어온다. 그녀는 이제 내 가는 목을 물어뜯고, 허연 살집을 잡아 찢으며, 나의 늙은 고기를 씹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낡고 보잘 것 없는 육신은 저 아름다운 소녀의 하얀 살이 되어 평생을 그녀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두렵고, 너무나 기대된다.
저 멀리서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워, 나의 성스러움 가득 찬 비명이 묻혀버릴 것 같았다...
ㅡ기에르 루틴, 『이 세계의 지배자』 중에서
"신은 위대한 딸꾹질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구절은 마법의 위대한 아버지 에프스가 남긴 단 하나의 저서인 『신과 종달새』의 첫 구절이다. 물론 에프스는 이 어둠의 책 때문에 이듬해 교수대에 걸리게 되었지만 그가 남긴 그 책은 수많은 지식인들을 열광시켰고, 그 중에는 전설적인 대마법사이자 에프스의 제자라 불리는 에프스베스(본명은 알 수 없다. 대신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에프스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밝힌 것으로 알려져있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에프스베스는 그의 저서인 『꼬부라진 돼지꼬리』에서 그가 돼지 꼬리의 비틀림 속에서 힌트를 얻어 에프스가 『신과 종달새』에서 다뤘던 마법의 체계를 보다 심오하게 완성했음을 적고 있다. 이 실존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마법사의 저서는, 수 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마법사들과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전해지고 있으며 아직도 한밤의 도살장에서는 가축 도살 후의 찌꺼기들 속에서 비릿하고 시큼한 향내를 풍기는 돼지 꼬리를 찾는 데 열중하는 얼치기 마술사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다. 이 같은 위대한 스승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러서 마법이나 마술이 어린애들의 눈속임 정도로 전락한 것은 발전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법사 무리들의 우매함 탓이리라.
어쨌든, 요는 에프스도 에프스베스도 자신들의 그 저서들에서 악마를 자주 '종달새'에 비유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단순히 시적인 의미로 종달새를 끌어들인 것인지, 아니면 그 작은 새가 진정 저 검은 무리들의 화신으로 마법의 언어를 지저귀는 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지금 이 시대에, 자신의 글줄에 종달새를 적어 나와 내 한 친구의 인생을 완전히 바궈놓은 한 작가에게 있다.
기에르 루틴. 그 빌어먹을 왼손잡이.
내가 루틴에 얽힌 기괴한 사건을 겪은 것은 정확히 19년 전의 가을, 내가 엔자 지방의 별장에 묵고 있을 때였다. 당시 수도에서의 무료한 생활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아버지께 어렸을 때 자주 내려가던 엔자의 별장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 말씀드렸고, 당신께서도 골칫덩이가 사라져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허락해주셨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당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연애 소설 작가, 알드레 프린스켄을 만나게 되었다. 후작 가의 차남으로 태어나 글을 쓴답시고 되지도 않는 언어의 나열을 깨작거리는 나와 달리, 그는 진정 뛰어난 작가였다. 아직 젊었지만 섬세하고 감성적인 그의 글 솜씨는 이미 많은 비평가들과 귀부인들을 매료시켰고 나역시 그 전부터 그의 글재주에 탄복해있던 터였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물론 나는 핑계였지만)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 내려와 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다. 첫 만남 이후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곧 알드레는 묵고 있던 여관을 나와 내 별장에 기거하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
"그나저나 그 사람 아나, 엘버?"
어느 날인가의 아침 식사 후, 홍차를 마시던 나에게 알드레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그 사람? 누구 말이지?"
"기에르 루틴."
물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아니."
"그래?"
그리고 끝이었다. 나는 슬쩍 알드레의 눈치를 봤지만 물어 봐주길 바라는 눈치가 아니었기에 그냥 홍차를 홀짝거릴 뿐이었다.
내가 다시 루틴의 이름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사흘쯤 흐른 뒤였다. 엔자 지방의 유력한 가문이라면 루비온 백작 가를 뺄 수 없는데 우리 별장 주위의 토지들은 대부분 그 가문의 소유였다. 본래 루비온 가는 대대로 소작농들에게 밉살스럽게 굴지 않아 소작농들과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전대인 쿠드 루비온 백작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 인간 같지 않은 미모의 소유자(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전설적인 미왕, 인팔레에 견줄만했다고 한다)는, 그러나 그 미모보다 괴팍한 성격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거둬가는 곡식량을 조금씩 늘려갔고 하루라도 약속한 날짜에 맞추지 않으면 심한 욕과 저주를 퍼부었으며, 그래도 늦는다 싶으면 법으로 금지된 채찍질이나 태형 같은 육체적 처벌을 가하기까지 했다한다.
그러던 쿠드 백작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후, 아들이 없는 쿠드 백작의 뒤를 이어 토지의 지배권을 얻은 것은 아내였다. 백작 부인은 백작보다 훨ㅆ니 관대하게 소작농들을 다뤘고 덕분에 루비온 가도 어느 정도 예전의 평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 날 나는 알드레의 부탁으로 루비온 가에 방문을 요청했다. 백작 부인은 저녁 식사에 우리 둘을 초대하겠다는 응답을 보내왔다. 저녁이 낮게 깔린 즈음에 나와 알드레는 시종도 없이 둘이서만 백작 부인의 저택으로 한가로이 걸어갔따. 아담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저택의 문을 두들기자 훤칠한 키의 여성이 문을 열어줬다.
"엘버 브리드와 그의 친우, 알드레 프린스켄이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엘버 님. 들어오십시오."
여자는 친절하지만 약간은 딱딱한 어조로 문을 열어줬고 우리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곧 응접실로 갔다. 거기에는 세 명의 숙녀들이 모여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먼저 인사한 것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아마 백작 부인이리라. 나와 알드레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인."
그리고 난 조심스럽게 그녀의 인상을 살폈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작가로서의 눈썰미가 부족했던 것인지 훗날 알드레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그 미소가 '일그러져'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다음으로 옆에 있는 두 여자, 자신의 두 딸을 소개시켜 줬다. 먼저 소개받은 쪽은 장녀로 좀 전에 우리를 안내해 준 집사(그녀가 집사였다니!)와 비견 될 정도로 훤칠한 키의 여성이었다. 길고 곧은 금발이 아름다웠지만 별로 꾸밀 의지가 없었던 듯 그 흔한 싸구려 향수 냄새도 그녀에게선 나질 않았다. 감이 날카로운 알드레는 그녀에게서 은근히 배어나온 땀 냄새와 옷에 어렴풋이 비치는 팔 근육으로 볼 때 무슨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에밀리아입니다."
간단한 인사였다. 우리 역시 이름을 대는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그 다음으로 인사해 온 것은 에밀리아보다 훨씬 귀엽고 붙임성 있는 차녀, 티밀리아였다.
"티밀리아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는 몸짓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빙긋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인사치레가 끝난 후 우리들은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지방 귀족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훌륭한 식사였다. 특히 바다에서 꽤 멀리 떨어진 이 지방에서 바닷가재 요리를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식사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우리와 티밀리아였다. 백작 부인은 우리 대화의 중간 중간에 약간의 맞장구 정도로만 참여했고 에밀리아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두 분은 모두 글을 쓰신다 들었어요."
티밀리아의 말에 나는 조금 부끄러운 태도로, 알드레는 한 층 더 부끄러운 태도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작가라니, 멋져요. 전 글을 잘 쓰시는 분이 정말 부러워요."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우리 중 한 명은 말뿐인 작가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송구스럽습니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사실 형편없는 실력이죠."
하지만 이 말을 한 건 내가 아니라 알드레였다. 실력과 겸손을 겸비한 친구.
"그럼 티밀리아 아가씨께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티밀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의외로 연애 소설 작가보다는 신비학이나 종교에 관련된 작가들을 많이 거론했다. 그 중에는 차마 여기서 언급할 수 없는 이단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나와 알드레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가 어디서 그런 작가의 저작을 구했을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로시느는 어떤가요?"
알드레가 대답했다.
"그의 글은 독특하지만 지나치게 한 가지 냄새만 풍기고 있어요."
"자기 작품의 자기 복제라고나 할까."
내가 거들었다.
"그거 말 되는군."
알드레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그 이름이 나왔다.
"그럼 기에르 루틴은요?"
나는 곧 그 이름이 얼마 전 알드레가 나에게 물어본 이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알드레는 순간 진지한 낯빛을 보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루틴을 아십니까?"
"물론이죠. 그 사람 책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특히..."
"『이 세계의 지배자』?"
"네, 맞아요. 그 책."
"과연..."
포도주 한 모금 마신 후 알드레는 말을 이었다.
"그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알드레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고? 그와는 이런 저런 작가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가 존경하는 작가에 대해선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기에르 루틴이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작가였나. 그럼 왜 난 지금껏 몰랐지?
이후 화제는 티밀리아가 지하에서 키운다는 희귀 동물, '온디러스의 개'에 집중되었지만 나는 루틴이란 작가에게 혼이 팔려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과연 그가 누구기에 저 까다로운 알드레의 눈에 든 것일까.
그러니 지금은 갑각나비를 써보자. 쓰고 싶은 것은 공경, 폴라(몇몇 대사), 드래곤 라자 등이 있으니. 좋은 것을 옮겨보자. 갑각은... 기본적인 걸 배우기 좋은 거 같아. 짧은 단편식이
근데 1 편만 벌써 4번째 쓰는 중.. 멍미
1. 후기
나는 의심해왔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창조물이라 여기고 있던 그 글줄들이 실은 진실이며, 그들을 창조했다 여기던 나야말로 그들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 일지 모른다 의심해왔다. 위대한 광대 엔쥴로스의 우스꽝스러운 손놀림이, 펜을 잡은 내 손가락에 메인 실을 움직여 의도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게 한 것은 아닐지 의심해왔다.(요건 좀 길다. 이런 경우는 글을 전달하기가 어려운데, 손놀림이 실을 움직여 그려내게 한 것은 아닐지 의심해왔다는 것은 괜찮은 거 같네. 나는 어차피 나와있으니 중복되서 필요없고.)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써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해왔다.(상당히 멋지단말이야.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세계와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확신한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이 '어둠'이 '빛'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내 귀에 들려오는 이 '비명'이 '소리'가 있음을 들려주고 있다. 내 코에 풍겨드는 이 '비린 내'가 '냄새'가 존재함을 맡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공포에 떨고 있는, 이 '나'의 존재가 이 '세계'가 실존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이것도 괜찮은 것 같아.)
그녀가, 나에게 이처럼 무한한 환희와 공포를 주는 식인의 숙녀가, 양손을 뻗어온다. 그녀는 이제 내 가는 목을 물어뜯고, 허연 살집을 잡아 찢으며, 나의 늙은 고기를 씹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낡고 보잘 것 없는 육신은 저 아름다운 소녀의 하얀 살이 되어 평생을 그녀와 함께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두렵고, 너무나 기대된다.
저 멀리서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너무나 크고 아름다워, 나의 성스러움 가득 찬 비명이 묻혀버릴 것 같았다...
ㅡ기에르 루틴, 『이 세계의 지배자』 중에서
"신은 위대한 딸꾹질쟁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구절은 마법의 위대한 아버지 에프스가 남긴 단 하나의 저서인 『신과 종달새』의 첫 구절이다. 물론 에프스는 이 어둠의 책 때문에 이듬해 교수대에 걸리게 되었지만 그가 남긴 그 책은 수많은 지식인들을 열광시켰고, 그 중에는 전설적인 대마법사이자 에프스의 제자라 불리는 에프스베스(본명은 알 수 없다. 대신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에프스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밝힌 것으로 알려져있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에프스베스는 그의 저서인 『꼬부라진 돼지꼬리』에서 그가 돼지 꼬리의 비틀림 속에서 힌트를 얻어 에프스가 『신과 종달새』에서 다뤘던 마법의 체계를 보다 심오하게 완성했음을 적고 있다. 이 실존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마법사의 저서는, 수 세기가 흐른 지금까지 마법사들과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전해지고 있으며 아직도 한밤의 도살장에서는 가축 도살 후의 찌꺼기들 속에서 비릿하고 시큼한 향내를 풍기는 돼지 꼬리를 찾는 데 열중하는 얼치기 마술사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정도다. 이 같은 위대한 스승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러서 마법이나 마술이 어린애들의 눈속임 정도로 전락한 것은 발전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마법사 무리들의 우매함 탓이리라.
어쨌든, 요는 에프스도 에프스베스도 자신들의 그 저서들에서 악마를 자주 '종달새'에 비유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단순히 시적인 의미로 종달새를 끌어들인 것인지, 아니면 그 작은 새가 진정 저 검은 무리들의 화신으로 마법의 언어를 지저귀는 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지금 이 시대에, 자신의 글줄에 종달새를 적어 나와 내 한 친구의 인생을 완전히 바궈놓은 한 작가에게 있다.
기에르 루틴. 그 빌어먹을 왼손잡이.
내가 루틴에 얽힌 기괴한 사건을 겪은 것은 정확히 19년 전의 가을, 내가 엔자 지방의 별장에 묵고 있을 때였다. 당시 수도에서의 무료한 생활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아버지께 어렸을 때 자주 내려가던 엔자의 별장으로 여행을 다녀오겠다 말씀드렸고, 당신께서도 골칫덩이가 사라져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며 허락해주셨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당시 유명세를 타고 있던 연애 소설 작가, 알드레 프린스켄을 만나게 되었다. 후작 가의 차남으로 태어나 글을 쓴답시고 되지도 않는 언어의 나열을 깨작거리는 나와 달리, 그는 진정 뛰어난 작가였다. 아직 젊었지만 섬세하고 감성적인 그의 글 솜씨는 이미 많은 비평가들과 귀부인들을 매료시켰고 나역시 그 전부터 그의 글재주에 탄복해있던 터였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물론 나는 핑계였지만)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 내려와 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었다. 첫 만남 이후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곧 알드레는 묵고 있던 여관을 나와 내 별장에 기거하게 되었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고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
"그나저나 그 사람 아나, 엘버?"
어느 날인가의 아침 식사 후, 홍차를 마시던 나에게 알드레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그 사람? 누구 말이지?"
"기에르 루틴."
물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후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아니."
"그래?"
그리고 끝이었다. 나는 슬쩍 알드레의 눈치를 봤지만 물어 봐주길 바라는 눈치가 아니었기에 그냥 홍차를 홀짝거릴 뿐이었다.
내가 다시 루틴의 이름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사흘쯤 흐른 뒤였다. 엔자 지방의 유력한 가문이라면 루비온 백작 가를 뺄 수 없는데 우리 별장 주위의 토지들은 대부분 그 가문의 소유였다. 본래 루비온 가는 대대로 소작농들에게 밉살스럽게 굴지 않아 소작농들과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전대인 쿠드 루비온 백작에 이르러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 인간 같지 않은 미모의 소유자(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전설적인 미왕, 인팔레에 견줄만했다고 한다)는, 그러나 그 미모보다 괴팍한 성격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거둬가는 곡식량을 조금씩 늘려갔고 하루라도 약속한 날짜에 맞추지 않으면 심한 욕과 저주를 퍼부었으며, 그래도 늦는다 싶으면 법으로 금지된 채찍질이나 태형 같은 육체적 처벌을 가하기까지 했다한다.
그러던 쿠드 백작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후, 아들이 없는 쿠드 백작의 뒤를 이어 토지의 지배권을 얻은 것은 아내였다. 백작 부인은 백작보다 훨ㅆ니 관대하게 소작농들을 다뤘고 덕분에 루비온 가도 어느 정도 예전의 평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 날 나는 알드레의 부탁으로 루비온 가에 방문을 요청했다. 백작 부인은 저녁 식사에 우리 둘을 초대하겠다는 응답을 보내왔다. 저녁이 낮게 깔린 즈음에 나와 알드레는 시종도 없이 둘이서만 백작 부인의 저택으로 한가로이 걸어갔따. 아담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저택의 문을 두들기자 훤칠한 키의 여성이 문을 열어줬다.
"엘버 브리드와 그의 친우, 알드레 프린스켄이 왔다고 전해주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엘버 님. 들어오십시오."
여자는 친절하지만 약간은 딱딱한 어조로 문을 열어줬고 우리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곧 응접실로 갔다. 거기에는 세 명의 숙녀들이 모여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먼저 인사한 것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아마 백작 부인이리라. 나와 알드레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인."
그리고 난 조심스럽게 그녀의 인상을 살폈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작가로서의 눈썰미가 부족했던 것인지 훗날 알드레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그 미소가 '일그러져'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다음으로 옆에 있는 두 여자, 자신의 두 딸을 소개시켜 줬다. 먼저 소개받은 쪽은 장녀로 좀 전에 우리를 안내해 준 집사(그녀가 집사였다니!)와 비견 될 정도로 훤칠한 키의 여성이었다. 길고 곧은 금발이 아름다웠지만 별로 꾸밀 의지가 없었던 듯 그 흔한 싸구려 향수 냄새도 그녀에게선 나질 않았다. 감이 날카로운 알드레는 그녀에게서 은근히 배어나온 땀 냄새와 옷에 어렴풋이 비치는 팔 근육으로 볼 때 무슨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에밀리아입니다."
간단한 인사였다. 우리 역시 이름을 대는 간단한 인사를 건넸다. 그 다음으로 인사해 온 것은 에밀리아보다 훨씬 귀엽고 붙임성 있는 차녀, 티밀리아였다.
"티밀리아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는 몸짓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빙긋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인사치레가 끝난 후 우리들은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지방 귀족의 집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훌륭한 식사였다. 특히 바다에서 꽤 멀리 떨어진 이 지방에서 바닷가재 요리를 먹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식사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우리와 티밀리아였다. 백작 부인은 우리 대화의 중간 중간에 약간의 맞장구 정도로만 참여했고 에밀리아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식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두 분은 모두 글을 쓰신다 들었어요."
티밀리아의 말에 나는 조금 부끄러운 태도로, 알드레는 한 층 더 부끄러운 태도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작가라니, 멋져요. 전 글을 잘 쓰시는 분이 정말 부러워요."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우리 중 한 명은 말뿐인 작가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송구스럽습니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사실 형편없는 실력이죠."
하지만 이 말을 한 건 내가 아니라 알드레였다. 실력과 겸손을 겸비한 친구.
"그럼 티밀리아 아가씨께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티밀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명 한 명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의외로 연애 소설 작가보다는 신비학이나 종교에 관련된 작가들을 많이 거론했다. 그 중에는 차마 여기서 언급할 수 없는 이단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나와 알드레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가 어디서 그런 작가의 저작을 구했을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로시느는 어떤가요?"
알드레가 대답했다.
"그의 글은 독특하지만 지나치게 한 가지 냄새만 풍기고 있어요."
"자기 작품의 자기 복제라고나 할까."
내가 거들었다.
"그거 말 되는군."
알드레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그 이름이 나왔다.
"그럼 기에르 루틴은요?"
나는 곧 그 이름이 얼마 전 알드레가 나에게 물어본 이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알드레는 순간 진지한 낯빛을 보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루틴을 아십니까?"
"물론이죠. 그 사람 책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특히..."
"『이 세계의 지배자』?"
"네, 맞아요. 그 책."
"과연..."
포도주 한 모금 마신 후 알드레는 말을 이었다.
"그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알드레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라고? 그와는 이런 저런 작가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가 존경하는 작가에 대해선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기에르 루틴이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작가였나. 그럼 왜 난 지금껏 몰랐지?
이후 화제는 티밀리아가 지하에서 키운다는 희귀 동물, '온디러스의 개'에 집중되었지만 나는 루틴이란 작가에게 혼이 팔려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과연 그가 누구기에 저 까다로운 알드레의 눈에 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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