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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

하얀 사신 「마술사」와 검은 의사「의사」


 "지독하게 악독한 마을 영주가 금은 보화는 모조리 챙겨 자신의 첩에게 주고 돈은 모아서 금고를 가득채우고 곡식은 거둬들여 창고를 채우며 비단은 빼았아 자기 자식들을 입히고 있을 때, 그는 빌어먹을 병에 걸려 우리 아버지를 찾아왔지. 제국 최고의 의사였던 아버지는 그에게 「생」과 「사」를 묻지도 않은 채 치료해주었어.
 평소에 아버지라면 「생」을 선택한 이는 살리고, 「사」를 선택한 이는 죽이는데 말이야. 왜 그랬는 지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영주를 아무 말 없이 치료해주었다는 것에 분노해 아버지에게 물어보았지.
 '아버지, 그 악독 영주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 아닙니까? 그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에 휘둘려 모든 재산을 빼았기고 하루하루 근근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에게 생사를 묻지 않는 건 둘째치고라고 왜 살려주었습니까? 그저 당연히 죽이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아버지가 내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으시면서 말씀하셨지.
 '내가 영주를 죽이면 한 명을 죽인 것이고 영주가 죽으면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는 것이란다. 내가 영주를 살리면 한 명을 살린 것이고 영주가 살면 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사는 것이란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 그러나 지금은 알겠어. 그 보잘것없이 쓰레기 영주 목숨의 값어치가 그 마을 하나정도는 된다는거."

 화가는 자기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두 손을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지속적으로 살 타는 냄새와 썩는 냄새, 시큰하고 비릿한 피냄새와 역겹고 더러운 고름 냄새가 뒤섞여 죽어버린 목을 마술사의 검은 손이 움켜쥐고 있었다. 반대로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새살이 돋고 피가 멈추고 상처가 아물며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 같은 뽀송뽀송한 목을 마술사의 하얀 손이 움켜쥐고 있었다.
 화가는 자신을 노려보는 마술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화염속에 던져진듯 빨갛게 불타올르며 이글거리고 있었고 당장이라서 부서질 듯한 잿더미처럼 가냘퍼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마술사는 화가의 목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더 심하게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와 새싹이 돋는 듯한 시원한 향기가 방안을 휘감았다. 거친 목소리로 힘들지만 강하게 마술사가 말했다.

 "당신 목숨의 값어치는 얼마나 되지?"

 화가는 손가락을 흔들어 허공에 망치를 하나 그렸다. 그리고 그 것을 쥐고 가볍게 마술사를 쳤다. 순간 마술사의 몸이 허공을 떠서 벽에 쳐박혔다. 마치 거대한 해머로 휘두른 듯이 날아간 그의 옆구리는 움푹 패였다.
 부서진 잔해와 파인 벽에 쳐박힌 마술사는 신음하면서 일어났다. 그는 거칠게 주변의 거슬리는 것을 검은 왼손으로 쳐냈다. 그 방해물들은 물이 수증기가 되듯이 산화하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마술사는 하얀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점점 살이 불어오르자, 마술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듯이 맑은 표정을 짓다가 다시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화가를 바라보았다.
 화가는 자신의 목을 손으로 부드럽게 한 번 쓰다듬었다. 그 손에는 썩은 살과 새 살 껍데기와 고름, 피덩어리들이 묻어있었다.

 "제국... 아니, 세계 정도라면 너무 싼가요?"


                                                               -하얀 사신 「마술사」,『서큐버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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