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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

편지



제목 : 편지








"인간은 책 속에 세상을 가두려 했지만, 거기에 갇힌 것은 인간 자신이었다."


                                        - 엘로 파울, 『나에게 보내는 편지』




-1


 사랑하는 동생, 론에게


 내 하나밖에 없는 혈족이자, 이제는 홀로 이 혹독한 겨울처럼 험난한 세상을 살아나가야 할 불쌍한 동생, 론아. 그동안 이 못나고 몹쓸 형 때문에 너의 이상과 꿈과 희망을 종이 위에 마음대로 표현 못하고 살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속 좁은 형은 동생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지 못할망정 얼어붙은 옹달샘보다 옹졸한 마음을 갖고 너를 시기하기만 했구나. 정말로 미안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는 글을 이렇게 사랑하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로서 다할 수 있다니 이 형은 너무나 기쁘구나. 몸은 비록 하늘로 올라가 너와 함께하지 못하지만, 글은 언제나 너와 함께하며 이 한 겨울에 따뜻한 벽난로처럼 언제나 네 곁에서 너를 지켜줄 것이다. 이 못난 형을 용서해줄 수 있겠니?


 추신 : 론, 이 글씨 마음에 드니? 오랜만에 써봐서 서툴지만, 네가 준 만년필로 직접 쓴 거란다.


                                                                                                     제국력 1023년. 12월 33일

                                                                                              영원한 너의 형, 가르디아 마켄




 -2


  가르토니안 씨에게


 안녕하세요, 가르토니안 집사 아저씨. 어머니는 건강하신가요?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정원에도 봄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나요? 이곳, 별장에는 어느덧 봄이 찾아와 봄 처녀가 들판에 뛰어놀 정도로 날씨가 좋답니다.


 옛날에 아저씨와 함께 별장에 찾아온 것이 어느덧 10년이나 지났군요. 그 당시 주인 교육을 받으며 지친 제 몸을 달래주기 위해 가르토니안 아저씨가 직접 추천하셔서 별장에 놀러왔었지요. 그때도 동생과 함께 이곳을 왔었지만 이번에는 집사 아저씨가 없어서 아쉽기만 합니다. 더욱이 언제나 응접실에서 아저씨가 앉아계시던 의자가 집사 아저씨의 수염처럼 세월이 묻어난 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니 저는 더욱더 외롭고 쓸쓸하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부러울 것 없는 제 동생 론과 함께 별장에 찾아온 것은 참 좋습니다. 이전보다 더 밝아진 론은 여전히 허약하지만 전보다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답니다. 여전히 소설은 제 영역이라면서 넘보지 않고 자신은 희곡만을 고집하는 것이 성격도 여전하지만 말이죠.


 본관에 계신 아버님께서도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버님께서는 여전히 과묵하신가요? 후작 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아야하는 자식이 되지도 않는 언어의 나열에 몰입하는 것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이 못난 자식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생 론이 쓴 인기 희곡, 『열정을 다한 그대에게』처럼 저도 믿어주시고 그런 자식에게 기회를 주고자 별장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점에 대해서 언제나 아버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재능 없는 아들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과묵해지신 것에 대해서 저는 꼭 성공하여 아버님의 입에서 "장하다."란 말을 듣고 싶습니다.


 집사 아저씨에게 제가 이렇게 편지를 하게 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동생 론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허약한 몸을 요양하고 쉬기 위한 목적으로 온 별장에는 놀랍게도 희대의 소설가, 언어의 마술사, 엘로 파울이 왔습니다. 게다가 그는 론이 쓴 『열정을 다한 그대에게』를 읽어보고 그 작가를 보고 싶다고 별장에 찾아왔답니다.


 "마켄 후작 가의 탈론 마켄이란 작가를 뵙기 위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의 여유로움으로 따뜻한 홍차를 마시던 저에게 하인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냐고 물었고 하인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이름 없는 글쟁이. 엘로 파울이라고 합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파에서 책을 읽던 탈론이 시선을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형. 엘로 파울이라면 『지배자의 지배자』나 『세상 중심에 선 괴물』로 유명한 소설가잖아."


 탈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났다. 『지배자의 지배자』의 작가, 엘로 파울이라니. 그 사람이 누구를 찾아왔다고?"


 동생은 관심 없는 투로 대답했다.


 "탈론 마켄이란 작가를 찾아왔다고 들은 거 같은데. 아무래도 나인가본데?"


 나는 유명한 소설가인 엘로 파울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한 동생에게 핀잔을 주고는 황급히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문의 유리를 통해 청년의 검은 인영이 보였다.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는 상대를 보았다. 그는 점잖게 생긴 평범한 남자였다. 깔끔하고 간단하게 맞춘 양복에, 호리호리하지만 균형 잡힌 몸매. 오래되어 낡아 보이는 가죽 가방. 특이한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모자를 한손에 잡아 내리면서 엘로 파울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이름 없는 작가 엘로 파울이라고 합니다. 유명하신 탈론 마켄 작가님이 험프리 지방의 이 별장으로 휴가차 내려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실례지만 탈론 마켄 작가 님 되십니까?"


 나는 약간 비위 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탈론 마켄의 형인 가르디아 마켄이라고 합니다."


 엘로 파울은 죄송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런, 실례를 범했군요. 마켄 후작 가의 장남이시며 레디온 마켄의 뒤를 이어……."


 "그만하시죠."


 나와 엘로 파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동생 탈론이 와서 근엄하게 서있었다.


 "장활한 미사여구와 아름다운 수식어는 생략하시고 이렇게 찾아오셨으니 안으로 들어오시죠. 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것 아닙니까?"


 엘로 파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당당하고 무겁게 말하는 동생의 압력에 저도 모르게 엘로 파울을 안으로 들였다. 우리는 응접실로 향했고 탈론은 하인을 시켜 차를 타오게 했다. 탈론은 마치 엘로 파울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고 파울은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런 말은 실례지만, 엘로 파울 이라고 하셨으니 『지배자의 지배자』 작가님이 맞으신지요?"


 무거운 공기가 맴도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말을 꺼냈다. 파울은 약간 동생의 눈치를 살피고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네. 제 졸작(拙作)인 『지배자의 지배자』를 알아주신다니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하다니요. 천만에요. 그렇게 재미난 소설은 제 생애 없었습니다. '안타리아'라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세계를 파괴하고 재구성하려는 신들에 대항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세상은 '앙그라마이뉴'에 의하여 파괴되어질 수밖에 없게 되고 이를 막기 위한 주인공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미래로 가게 되지요. 그리고 그 미래에는 신은 없지만 인간들에 의해 피폐된 행성들이 있지요. 그러나 이 세상도 얼마 남지 않은 세상으로 대폭발(Big Bang)이 일어나려하자, 주인공은 자신을 바쳐서 선발된 인간들을 데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 그리고 놀랍게도 선발된 인간은 시공간을 뛰어넘으면서 불사의 존재가 되고 그들이 창조한 세계의 이름이 '안타리아'라는 것.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이 끝나자, 마지막엔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흘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화려하고 멋진 문장력과 문체. 도저히 범인으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장활하게 펼쳐지는 듯 한 묘사력은 소설을 읽는 내내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고 아름답다 못해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필체는 글을 읽는 내내 저를 황홀하게 해주었답니다. 정말이지 감명 깊은 명작이었습니다."


 엘로 파울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약간 붉히며 수줍어했다. 그러나 옆에서 하인이 가져온 차를 마시는 탈론을 곁눈질로 보더니 그는 자리가 불편한 듯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대단할 것이 없는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나 감명 깊게 읽어 주신 점에 대해서, 보잘 것 없는 작품의 주인으로서 감사를 사양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뵙게 된 연유는 다름 아니라……."


 그는 낡은 가죽 가방을 뒤적이더니 편지와 책을 하나 꺼내었다. 그리고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윤이 나는 검고 작은 긴 상자를 하나 꺼내었다. 그 상자를 보자 탈론 마켄은 차를 마시던 동작을 멈추었다.


 "제가 존경하는 탈론 작가님에게 제 볼품없는 소설 하나를 소개해드리고 이것을 돌려드리기 위해서 랍니다. 먼저 그의 형님에게 제 소설을 보여드리고 싶군요."


 파울은 새로운 작품이라고 꺼낸 소설을 내게 내밀었다.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소설은 이전에 봤던 작품인 『지배자의 지배자』나『세상 중심에 선 괴물』과는 확연히 다른 책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두 소설은 제목부터가 남달라 예술적 가치가 풍부한 필체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금실로 되어있었다. 표지는 색 바랜 듯이 투박하지만 질기고 단단하며 부드럽기까지 해서 손에 확 휘감겼다. 안에 속지 또한 잘 찢기지 않는 재질이었고 손가락 뒷장이 살짝 비칠 정도로 얇았음에도 종이는 매끄럽고 촉감이 좋았다. 게다가 글씨는 한 자 한 자 쓰는 시간만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화려하고 아름다운 글씨들로 빼곡히 차여있었다. 그러나 그에 반해 그가 전해준 신작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속지를 여러 장 덧대서 붙인 듯 한 투박한 표지에 거친 표지가 손에 오래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직접 여러 번 써댄 것이 분명한 잉크가 깊게 베인 제목은 이전에 화려하고 아름답다 못해 글씨만으로 예술 작품으로 인정할 법한 두 소설과 달리 어린 아이가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글씨처럼 다듬어지지도, 깔끔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전의 작품과는 달리 오래도록 묻은 손때와 오랜 시간을 공들인 것으로 보이는 글씨들은 비뚤하거나 바르지는 않았지만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책을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 탈론에게 책을 건네자 그도 책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탈론은 나처럼 이전에 작품들과 비교하는 듯이 유심히 생각을 하면서 제목 글씨부터 책 재질. 속지와 속 글씨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파울을 보았다. 그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탈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뒤에는 벽, 앞에는 고양이로 막혀 조마조마해 하는 쥐 같아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탈론은 책을 살피다 말고 내려놓았다.


 "책은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죠. 그것보다 그 편지와 상자는 왜 가져온 것이죠?"


 파울은 오래되어 누렇게 변해버린 편지를 한참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 정적이 어색하던 나는 먼저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열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저의 보잘것없는『지배자의 지배자』같은 소설이 대흥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자, 글을 쓰는 것에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정말 대단할 것이 없는 소설이지만 독자며 작가님들이 인정해주시는 소설이 제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저는 이를 능가할 소설을 쓸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그런 저는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을 아쉬워하지도 않으며 어리석게 살아가던 중에 탈론 마켄 님의 『열정을 다한 그대에게』라는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탈론은 자신의 작품을 보았다는 파울의 말에 흠칫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파울을 바라보았다.


 "제가 살면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졸작을 잘못 보고 계실 때, 저는 제대로 탈론 님의 작품을 봤습니다. 진정한 글을 써내신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찾아뵙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을 잘못 찾아온 물건을 진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에서 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파울은 광택이 번쩍거리는 작고 긴 상자를 조심스럽게 잡아 열었다. 그 안에서는 펜이 하나 있었다. 상자보다 더 번쩍거리는 광이었지만 은색도광이었고 손잡이 부분만이 상자와 같은 소재의 불투명한 보석으로 치장된 수제 만년필이었다. 손때는 하나도 묻지 않은 마치 지금 갓 만들어낸 듯이 새것의 펜이었다. 그 펜을 보며 파울은 마치 황금을 보듯이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러나 그는 탈론의 얼굴을 흘겨보고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상자를 돌려 나와 동생이 보기 편하게 해주었다. 나는 번쩍번쩍 거리는 펜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동생은 엘로 파울이 별장에 찾아왔을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펜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수제 만년필입니다. 누가 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누가 썼던 것인지는 알고 있는 펜입니다."


 "누가 썼던 겁니까?"


 궁금증에 참지 못하고 묻자 파울은 침을 삼키고는 천천히 말했다.


 "신의 재림, 카르타 탑의 마법사라고 아십니까?"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탈론이 대답했다.


 "아이젠 파우스트. 지식의 탐구자."


 무뚝뚝한 탈론의 어투에 파울은 기쁜 듯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아이젠 파우스트. 수 천 권의 책을 써서 지식 탐구자로 더 유명한 그 마법사가 사용하던 펜입니다."


 나는 놀라서 펜을 다시 바라보았다. 사람이 일생일대에 다 읽어도 모자랄 만한 책을 혼자서 다 썼다는 마법사. 마르디아 산맥을 마르디아 평원으로 만들고 제국을 멸망시킬 힘도 가졌지만 지식을 탐구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신에 가장 가까운 곳이라 불리는 카르타 탑에서 책을 집필하던 마법사. 이제는 초대 제국의 황제처럼 까마득한 시대의 사람으로 위인으로 불릴만한 아이젠 파우스트가 썼던 펜이라는 말에 새삼 펜이 더 멋져보였다. 하지만 탈론은 그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동생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차피 아이젠 파우스트는 제국의 공적으로 지명되어 그의 책은 대부분이 태워지거나 사라졌지요. 대부분이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마르디아 평원의 전반에 걸쳐 흩뿌려져 있다는 설도 있는. 그런 마법사의 펜이라는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엘로 파울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눈은 엄청난 사실을 말하는 듯이 반짝였다.


 "아닙니다. 이 펜의 놀라운 사실은 신 탑의 마법사가 쓴 대부분의 저서가 놀랍게도 이 펜 하나로 써졌다는 점입니다. 그 사실을 입증하는 글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 있는 아이젠 파우스트가 쓴 편지에 분명히 적혀있습니다."


 누런색 종이의 편지가 갑자기 황금으로 보이는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부끄러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신의 마법사의 편지를 바라보며 손을 뻗을 때, 탈론이 내 손을 저지하며 말했다.


 "형님. 안됩니다. 아이젠 파우스트는 지금도 제국령에서 그의 죽음이 묘연하여 공적으로 삼아 수배중인 인물입니다. 게다가 그가 쓴 금서들의 목록만으로도 책이 나올 정도로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남긴 펜이며 편지를 읽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제국 공의회에서 재판도 없이 교수될 것입니다."


 동생의 말에 나는 매우 안타까워하며 손을 회수했다. 탈론은 고개를 돌려 파울을 바라보았다.


 "말씀드린 데로 이 두 물건은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번 사용하고 한번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교수형 감입니다. 그런 물건을 고스란히 가지고 계신 점은 대단하시나, 이 물건을 이곳으로 가져온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도로 가져가시고 오늘 이 일은 없던 걸로 지내주시기 바랍니다."


 싸늘하다 못해 냉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탈론이 말하자, 파울은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는 용기 내어 말했다.


 "안됩니다. 저는 더 이상 이 물건에 주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마땅한 주인을 찾기 위해 제 많은 여생을 받쳤습니다. 비록 지금의 몰골은 젊어 보이지만 사실은 이 모든 것은 제가 아닙니다. 두 분이 보시는 저는 진실 된 제가 아닙니다. 단지 이 펜의 주인을 찾기 위해 이렇게 만들어진 허상의 인물입니다. 그러니 부디 이 물건을 받아주십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저는 주인에게 찾아가지 못하는 이 펜과 편지를 가지고 남은여생도 주인을 찾아 떠나야만 합니다. 부디 이 물건을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얼굴이 붉어 질대로 붉어진 탈론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장 나가십시오! 하인들은 지금 이 손님을 내쫓지 않고 뭐하는 겐가! 당장 내보내라!"


 밖에서 대기 중이던 두 건장한 하인은 곧장 엘로 파울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거리낌 없는 동작으로 그의 물건을 가죽 가방에 도로 넣으며 그의 양 팔을 잡고 그를 끌어내었다. 나는 소란스러운 와중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동생을 바라보았지만 평소와는 전혀 다른 태도의 탈론은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파울이 쫓겨나가고 나서도 문 밖에서 소란을 피우자 동생은 몇몇 하인에게 몽둥이를 들고 나갈 것을 명령했다. 내가 나가서 보려고 하자 동생은 나를 다시 저지했다.


 "형님. 부디 가서 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형님이 엘로 파울이란 작가의 이름이 홀려 그의 물건을 받아들이셨다면 지금 그의 처지는 형님이 되셨을 겁니다."


 나는 동생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무슨 말인가, 탈론. 내가 만일 엘로 파울의, 아니 아이젠 파우스트의 펜을 받았다면 그의 그 화려한 대서사시 『지배자의 지배자』와 같은 소설을 써서 유명세를 탔을 거란 것을 시기하는 건가?"


 탈론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형님은 비록 유명인이 되셨을지는 몰라도 그처럼 그 펜의 다른 주인을 찾아 평생을 바치셔야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 펜은……."


 "입 닥쳐라! 너는 지금 이 형님이 유명해지는 것을 시기해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내가 비록 너처럼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소설을 써본 것도 아니 것만, 너는 네 형이 그렇게 잘되는 것이 배 아프단 말이냐?"


 "형님. 부디 제 말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엘로 파울은 그 펜을 형님에게 드리려는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제게 주려했고 그 펜은……."


 "듣기 싫다! 너에게 주려던 펜이었으니 나는 받을 필요도 없단 말이 아닌가! 못된 동생이란 것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구나."


 나는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동생을 두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밖에는 엘로 파울이 없었다. 그는 이미 하인들의 몽둥이가 두려워 도망간 상태였다. 못내 빨리 그가 꺼낸 파우스트의 펜을 받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그 날 이후, 엘로 파울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탈론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엘로 파울은 이미 이 마을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식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탈론은 갑자기 집필을 한다는 핑계로 자기 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에게는 들어오지 말 것을 부탁하고 탈론은 점점 나와의 교류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도 나를 시기하는 동생에게 화가 나서 그와의 식사 시간에도 별 말을 하지 않고 내 방에 틀어박혔다. 그렇지만 동생과 달리 재주가 없는 나는 아무리 종이 위에 펜을 갈겨도 글이 써지지 않았고 언제나 시간만 죽이게 되었다. 그러다가 눈에 띈 것이 응접실에 있던 엘로 파울의 책,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그가 쓴 다른 소설과는 눈에 띄게 형편없어 보이는 이 책을 동생은 챙기지 않았다. 마치 없는 것처럼 상대하며 내버려두었기에 나는 방으로 들어와 책을 들여다보았다. 그 책에는 엘로 파울의 일생이 적혀있었다.

 엘로 파울은 마르디아 평원에서 가축을 키우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명예나 재물이 없던 그는 허드렛일을 하며 그 날 먹을 식량을 구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그렌토 파울은 일반인들과 다른 독특한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골동품 수집이었다. 꼭 유명하고 비싸거나 오래된 유품이나 골동품을 사들이는 것이 아닌, 단지 오래되고 귀족 가에서 쓰이는 물건은 거의 모든 것을 사들였다. 안 그래도 가난한 집안에 그렌토 파울의 취미는 사치였다. 그래서 엘로 파울은 아버지의 그 취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경제관념이 남다르게 성장한 엘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의 꿈을 키울 수 있게 해준 하나의 책을 읽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의 골동품 수집의 고서중에서도 금서가 된 아이젠 파우스트의 『신이 사는 마을』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국가분쟁이 일어나는 국경선과 산을 하나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잘 오지 않는 마을에, 한 국가가 생체실험을 실시한다. 그리고 그 생체 실험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게 만드는 바이러스를 퍼트려 마을 전역을 죽음의 도가니로 만드는 것이었다. 실험 첫째 날에는 식물이 죽었고 둘째 날에는 들짐승이 죽었다. 셋째 날이 오자 날짐승이 사라지고 넷째 날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서 인간들이 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결국 다섯째 날에는 인간들이 죽고 어린아이만 남게 되었다. 여섯째 날에는 모든 건물이 모순된 모습으로 죽었으며 일곱째 날에는 죽은 모든 것이 되살아나 살은 자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알아차린 여행객이 이곳을 찾아와 죽은 인간은 묻어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병든 환자를 간호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 아이들이 사라져간다.

 사라진 아이들은 놀랍게도 생체실험을 유지하는 제물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국가에서 찾아온 또 다른 여행자가 이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고 생체실험 과학자들을 모조리 처단한다. 그리고 제물이 된 아이들을 구하자 마을에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모든 어른들은 죽고 아이들만 남은 마을은 더 이상 재건이 불가능했다. 땅은 메말라버렸고 식물은 죽었으며 아이들은 힘이 없고 어른은 여행자 혼자뿐이었다. 결국 그 여행자는 자신이 원한 것을 찾아나서는 여행을 포기하고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재건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추적해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한없이 소설에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엘로는 『신이 사는 마을』을 수도 없이 읽었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 되풀이  해서 읽기 시작했을 때, 그는 책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책 표지가 무언가 커다란 종이처럼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엘로는 결국 책을 뜯어버리고 표지를 펼쳐본다. 펼쳐진 표지는 놀랍게도 몇 차례 접어진 커다란 편지였고 그 안에는 아이젠 파우스트의 말이 적혀 있었다.


 “나는 아이젠 파우스트이다.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죽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내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은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면서이다. 나는 내 일생을 다 바쳐 수많은 책을 써내왔지만 그 책은 이 편지에 쓴 펜과는 다른 펜으로 썼다. 집필에 쓴 펜은 카르타 탑에서 집필하는 과정 속에서 얻은 펜이다.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이름을 지은 펜은 사실상 내게 죽음을 선사했다. 신이 내게 죽음을 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나에게 임무를 주어 그 수행을 맡긴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이 펜을 쥐고서 수많은 책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이 나를 쓰고 있었다. 내 의지로 펜을 쥐고 글을 쓰려 했지만 언제나 책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펜이 내 손을 움직여 글을 완성 짓고 있었다. 더 이상 글의 마침표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 펜을 포기하고 글을 쓰려했지만 어느덧 나는 이 펜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더 이상 일반 펜으로는 아무런 책도 집필할 수 없었다. 결국에 나는 이 펜으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나는 이 펜에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신이 주신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엘로는 편지를 읽고서 의아함을 느꼈다. 그가 읽은 『신이 사는 마을』을 쓴 파우스트의 글은 어떠한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파우스트의 저서와 달리 그 글씨에는 많이 힘이 없고 흐릿하며 글씨가 투박하고 아름답지 않았다. 하지만 엘로는 크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엘로는 그의 아버지 골동품 중에서 한 펜을 찾아내었다. 펜에는 놀랍게도 I.P라는 아이젠 파우스트의 이니셜이 적혀있었다. 엘로는 파우스트의 펜으로 글을 써보기 시작했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펜은 잉크가 부족한 듯이 전혀 글씨가 써지지 않았던 것이다. 엘로는 이상함을 느끼고 편지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펜이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쥐고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생각과 더불어 펜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글을 쓰는 엘로는 한 번의 멈춤도 없이 글을 써내어 결국에 손이 마비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엘로는 파우스트의 펜이 소설을 써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리고 그가 쓴 글, 정확히는 펜이 쓴 글을 출판하였는데 그 책의 이름이 『지배자의 지배자』이었다.

 『지배자의 지배자』는 엘로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주었다. 인기 있는 작가라는 명성과 더불어 여유 있는 삶과 그리고 부유한 계층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엘로는 그 모든 것을 만끽하며 다시 펜을 들었고 『세상 중심에 선 괴물』이란 책을 써냈다. 이 또한 최고의 작품으로 칭송받으며 제국 전역을 거쳐 팔리며 제국을 넘어 왕국에도 편찬되기 시작했다. 엘로는 제국의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각국을 돌아다니며 그는 그의 지위를 만끽하게 되었다. 하지만 엘로는 큰 문제에 봉착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글에 대해서 묻는 독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엘로에게 『지배자의 지배자』나『세상 중심에 선 괴물』을 쓰게 된 계기나 그 글에서 말하고자하는 바, 그리고 인물의 특성과 개성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그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엘로는 제국 귀족이 말한 생각이 옳다고 생각되자 맞는다고 답해주었다. 그리고 다른 국가에 사는 귀족이 말한 다른 의견을 들었을 때, 그 이야기도 맞는다고 생각되어 옳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되자 각기 다른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소설협회는 엘로의 작품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 확실한 근거에 의해서 논쟁을 하지만 그 해결점은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엘로를 초빙하게 되지만 엘로는 이에 응하지 않게 된다. 모두 자신이 말한 것이며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아니기에 자기도 그저 그 말들이 옳다고 생각했었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엘로는 자신의 몸이 심각할 정도로 병약해지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펜을 이용해 글을 쓰는 순간, 글이 완성될 때까지 펜은 멈추지 않으며 자신도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엘로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펜은 엘로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며 글을 쓴다는 사실을 그는 2 편의 글을 쓰고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결국 허상의 겉모습은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으나 자신의 실제 상태는 다 죽어가는 노인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엘로는 수많은 재산과 지위 그리고 명예를 버리고 잠적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버린 채 그는 아이젠 파우스트가 펜에 의해서 글이 써지는, 자기가 직접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글이 자신을 써내려간다는 느낌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타인의 글을 단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부끄러움과 무서움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진짜 펜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펜을 쥐고 글을 쓴다면 자신은 앞으로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엘로는 펜의 주인을 찾아 주기 위해 세계 각지의 유명한 작가들을 몰래 만나러 다닌다. 그러나 그 유명한 작가들은 엘로 파울에게 그의 작품성에 대해서만 물을 뿐, 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며 욕심조차 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엘로가 자신이 가진 펜의 능력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빙 둘러서 말하자 그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작가들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엘로 파울은 만일 천재가 아닌 사람이 이 펜을 쥐게 되면 자신처럼 권력과 욕심을 갖고서 펜을 사용하게 될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일종의 시기를 느꼈다. 자신 외의 이 펜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천재적인 작가이어야만 된다는 생각에서 그는 아무에게나 이 펜을 줄 수 없다는 강박관념마저 생기게 된 것이다. 엘로 파울은 제국과 각 왕국을 돌면서 작가들을 만나지만 자신의 헛수고임을 깨닫고 자신의 일생을 담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만일 그가 이 글을 써서 사람들이 읽게 된다면 펜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 펜을 가져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나에게 보낸 편지』를 쓰기 시작하던 엘로는 내 동생인 탈론 마켄의 『열정을 다한 그대에게』의 공연을 보게 된다. 엘로 파울은 내 동생의 작품을 보자마자 파우스트의 소설 『신이 사는 마을』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미친 듯이 『나에게 보낸 편지』를 집필하면서 내 동생 탈론 마켄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탈론 마켄은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몸이 허약하여 어디에도 함부로 외출할 수 없는 신세였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잘못된 장소나 언제나 뵐 수 없다는 말만 전했기에 그 유명한 엘로 파울도 찾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나와 같이 험프리 지방의 이 별장으로 요양차 온 것을 엘로 파울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몽둥이로 몰매 맞으면서까지 쫓겨났고 현재는 별장 근처에 있는 마을의 여관에서 쥐 죽은 듯이 살면서 『나에게 보낸 편지』를 집필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나에게 보낸 편지』의 편지는 책이 이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로 파울이 현재 집필하고 있으며 ‘신이 주신 선물이자 죽음’이라 불리는 펜을 탈론 마켄에게 전해주기 위해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모든 사실이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글을 보는 와중에도 글을 계속해서 써져가고 있었다. 엘로 파울의 복잡한 심정과 간절한 마음이…….


 나는 황급히 나갈 채비를 마련하고 여관으로 갔다. 그곳에는 엘로 파울이 초췌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전에 기다리고 있던 엘로 파울의 모습에 당황해했다. 무엇보다 별장에 찾아왔을 때 보다 심각하게 병약해져 침대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것이 고작인 그의 모습에 다 죽어가는 병자의 그것을 느꼈다. 엘로 파울은 죽어가는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몸에는 그를 닮은 낡은 책 한 권과 번쩍거리는 펜이 하나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펜을 쥐지도 않았는데 펜은 살아있듯이 펼쳐진 책 위에 서있었다.


 “아, 네. 그것보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엘로 파울은 힘겹게 고개를 내저었다.


 “전 이미 끝났습니다. 가르디아 마켄 님께서는 『나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파우스트의 펜을 쓴 대가로 저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로 펜에 대한 사용의 욕구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펜을 쓰지 않는다면 이 펜을 탈론 님에게 전해주지 못하리란 생각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그렇지만…….”


 엘로는 펜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젠 파우스트는 정말 대단한 마법사였던 모양입니다. 이 펜은 신체의 생명력을 먹는다기보다는 소유자의 마나를 먹는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일반인이 이 펜으로 글을 쓴다면 고작 두 권이 전부입니다만 아이젠 파우스트는 한 사람이 한 평생을 다 읽어도 부족할 책을 쓰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탈론 마켄 님은 겉으로는 약해보이시나 훌륭한 마법사의 자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분명히 펜을 지배하실 수 있으실 테지요.”


 나는 그저 입을 벌린 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엘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가르디아 마켄 님. 파우스트의 펜을 탈론 님에게 전해주시겠습니까?”


 병약한 엘로의 모습과 그가 한 말에 따르면 나에게 파우스트의 펜은 많은 책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방에 틀어박혀 자기만 유명세를 취하고 명예와 돈과 권력을 취한 동생에게 밀려 아버지로부터 장남의 자격조차 인정받지 못할 바에 나는 내 영혼을 악마에게 주어서라도 저 펜을 써야만 했다. 나는 앞으로 한 걸음 걸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파우스트의 펜을 향해 갈구하는 내 모습은 가히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사람과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엘로는 흔쾌히 펜을 허락했다.


 “네. 부탁드립니다.”


 나는 당장에 엘로 파울에게 달려가서 펜을 쥐었다. 놀랍게도 꼿꼿하게 서있던 펜은 내가 쥐자 그 힘을 잃고 내 손에 들려졌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엘로 파울은 정령의 가루가 바람에 흩날리듯이 비산하여 산화되었다. 단지 그의 저서 『나에게 보낸 편지』만을 남긴 채…….


 나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놀랍게도 집에는 동생 론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론은 내게 말했다.


 “형. 부탁이니 파우스트의 펜을 포기해줘. 형이 그 펜을 써서는 안 돼. 나는 형에게 글을 뽐내지도, 내 재능을 내새우지도 않아. 우린 형제잖아.”


 “아니, 형제이기 전에 나는 나다. 너는 너의 희곡으로 유명해져서 덕분에 나는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쓸 수 있는 허락을 아버지에게 받았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성공하지 못한 채로 더 이상 버틸 순 없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나는 네 형이 될 수 없어.”


 나는 곧장 탈론을 지나쳐 내 방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탈론이 외쳤다.


 “형! 제발 부탁이야! 난 형을 잃고 싶지 않아!”


 처절하게 외치는 탈론의 목소리는 간곡하게 내게 펜을 가져가주길 바라는 엘로의 목소리와 겹쳐져서 들렸다.



 나는 곧장 펜을 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은 써지지 않았다. 엘로의 자서전, 『나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내가 쓰고자하는 것을 펜을 쥐고 쓰질 않고 생각만 해도 써진다고 했지만 파우스트의 펜은 마치 일반 펜처럼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펜을 쥐고 글을 쓰자 잘 써지기만 했다. 마치, 일반 펜과 같았다.


 “펜이 잘 써지다니……. 설마 이 펜이 아닌 것은…….”


 파우스트의 펜은 사람의 마력을 토대로 써진다고 했다. 나는 방문을 나가 탈론의 방으로 갔다. 탈론의 방은 열려있었다.


 “탈론!”


 방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동생이 없었다. 하인들을 통해 묻자 동생은 어디론가 갔을 뿐, 어디로 갔다는 소식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동생은 펜을 빼돌리고 내게 연기를 한 후 도망친 것을. 분명히 탈론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형을 막았지만 그 형은 욕심 때문에 펜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자신을 진짜 펜을 가지고 도망가야만이 형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살기보다 죽어서라도 인정받고 싶단 말이다!”


 곧장 하인들을 풀어 별장부터 근처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론의 병약한 몸이 천만 다행인건지 론은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내게 붙잡혀 왔다. 나는 론을 방이 데려와 의자에 묶어놓고 앉혔다. 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보았다.


 “못된 자식. 형의 출세를 막으려고 진짜를 빼돌려?”


 나는 매섭게 론의 볼 따귀를 때렸다. 한방에 론은 넘어졌다. 나는 쓰러진 론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키고 다시 의자에 앉혔다.


 “형의 말이 말 같지 않다 이거지?”


 나는 하인에게 시켜서 가져온 망치와 책상을 론의 앞에 갖다 놓았다. 론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동생이 더 얄밉고 싫었다. 론의 한 손을 들어 책상에 얹었다. 론은 그 순간까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 이제 실토해. 그렇지 않으면 넌 평생 글을 쓸 수 없게 될 거야. 형은 네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 단지 파우스트의 펜을 원할 뿐이라고.”


 론의 커다란 두 눈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또르르르 떨어져 내렸다. 론이 말했다.


 “형. 부탁이니 펜을 쓰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형이 원하는 대답은 그게 아니잖아.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네 오른 팔은 쓰지 못할 거야. 넌 왼손잡이니까 오른 손 정도는 없어도 되겠지?”


 론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더 많은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르디아 형. 부탁이야. 펜에 의지 하지 말아줘.”


 “이 자식. 안 되겠군!”


 나는 망치를 크게 휘둘러 책상을 내리쳤다. 콰지직 소리와 함께 책상은 함몰되었고 론의 손도 찌그러졌다. 손가락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구부러지며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고 뼈마디가 튀어나오거나 부러진 뼈가 삐져나오기도 했다. 연약한 탈론의 손등은 짜부 되어 찌그러진 채로 짓이겨져 있었다. 붉은 피가 책상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그 손을 보고서 오히려 희열을 느꼈다.


 “하아… 하아……. 말 안 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론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울고 있었다. 나는 론의 왼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망치에는 살점과 붉은 피와 뼛가루가 묻어 상당히 조야해보였다.


 “하아… 파우스트의… 펜은 하아…… 어디 있냐…….”


 거침 숨을 몰아쉬기 힘들어 말조차 끊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유령에 홀린 듯이 파우스트의 펜을 원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게 선사해줄 그 펜은 분명히 론이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동생이 아니고선 펜을 빼돌릴 사람이 없었으니까. 나는 망치로 론의 뭉개진 오른 손을 툭툭 쳤다. 마치 전기가 흐르듯이 론은 꿈틀대면서 작은 신음을 흘렸다.


 “자, 이 펜 말이다. 이게 어디 있냐고!”


 나는 엘로에게 받은 펜을 꺼내서 론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론은 붉게 충열 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펜을 보고 말했다.


 “형이 가진 펜이 맞아. 그 펜이 파우스트의 펜이야. 형. 그 펜은 마법사의 물건이야. 마력만 있다면 사용할 수 있지만 제어할 수 없다면 죽고 말아. 그 펜은 ‘신이 주신 선물’이나 ‘죽음’으로 표현 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그 펜은 ‘악마’가 만든 펜이라고. ‘악마’가!!”


 나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잔인하게 웃었다. 들리는 소리조차 등골이 오싹한 것이 꼭 악마가 웃는 듯 한 소리였다.


 “악마라도 좋아. 이 펜만 있다면, 더 이상 너에게 꿀릴 것은 없단 말이야!”


 나는 망치를 다시 크게 들어올렸다. 론은 망치 끝을 바라보면서 처절하게 말했다.


 “형을 위해서라면 내가 죽을 수 있는데……. 왜 형이…….”


 망치는 다시 한 번 더 책상을 짓뭉개버렸다.




 그 후 나는 탈론의 책상에서 진짜 파우스트의 펜을 찾게 된다. 론이 엘로를 통해 내게 전해준 펜은 사실 론이 내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만년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엘로는 그걸 통해 내게 소식을 전했고 나는 그것을 진짜 파우스트의 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진짜 마법사는 엘로도 파우스트도 아닌 내 동생 탈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동생을 영원히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고 파우스트의 펜을 가지고 집필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제국력 1020년. 9월 7일

                                                                                              마켄 가문의 장남, 가르디아 마켄




-3


 아버지에게


 안녕하십니까, 아버지.


 못난 아들이 소설을 쓴다고 가문을 이끌지 않고 동생을 병신을 만들고서 책을 낸지 어느덧 3년이 지나갑니다.

 그간 많은 것들이 바뀌고 많은 것이 시작되곤 했습니다. 론은 아버지가 계신 집에서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겠지만 신의 재림으로 불리는 아이젠 파우스트가 살아서 치료해준다 하더라도 그 손은 절대 못 고치겠지요.

 멀리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더 이상 집필활동을 못하는 동생 론은 대신의 음악활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내놓아도 모자랄 것이 없는 제 천재 동생이지만 희곡 대신 음악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앞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저 때문이란 생각 때문이지요.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어언 7년을 소설에 매달려서 겨우 이제야 제국에서 알아주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제가 쓴 책 『죽음으로부터의 사색』은 모든 철학자들과 문학평론가들이 읽어보는 책으로서 제국에서는 모든 서점과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제야 아버지 제 책과 저의 명성을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아버지 병세가 많이 위독하다고 들었습니다. 비록 건강이 나빠지셨다하더라도 다시 일어나실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집필중인 『편지』가 완성되는 데로 아버지를 뵈러 가겠습니다. 이렇게 작품 활동으로 바빠서 찾아가지 못하는 아들. 비록 꾸지람은 많이 듣겠지만 이 작품의 제 모든 걸 담았습니다. 그러니, 부디 아버님께서는 완쾌하셔서 웃는 얼굴로 제 책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르토니안 아저씨가 잘 보살펴드리겠습니다만 멀리서도 아버지의 투병. 응원하겠습니다.

 아버지, 부끄럽지만 사랑합니다.


                제국력 1023년. 11월 12일

                                                                                              마켄 가문의 장남, 가르디아 마켄





-4


 가르디아 형에게.


 

 형의 소설. 『편지』가 출간되었어. 벌써부터 아우성이야. 모든 사람들이 형을 찾고 있어. 아마 이 책은 형의 첫 번째 책인 『죽음으로부터의 사색』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것 같아. 일단 책이 어렵지 않잖아?


 그리고 형, 드디어 내 노래가 사람들을 통해 알려졌어. 내가 희곡 외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곤 하지만 내 비록 글은 쓰지 못하지만 내겐 아직 목소리가 있잖아? 난 아직도 만드는 게 좋아. 무언가를 창작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사람들이 형의 글을 보고 공감대를 얻고 기분이 좋아지고 때론 나빠지고 때론 슬퍼지며 때론 힘겹더라도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형의 글. 그리고 나의 노래. 난 이 모든 것이 좋아.


 형. 형의 편지가 도착했어. 그걸 읽는 즉시 이 편지를 쓰게 됐어. 형이 살아있다면 이 편지를 부칠 곳이 있을 텐데……. 정말 아쉬워. 아, 이 편지는 어떻게 쓰냐고? 날 뭐로 보는 거야. 형의 책에 쓰여 있잖아. 손이 없으면 입으로라도 써라. 그 열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든지 못해낼 것이 없다.『형제』에서 발췌.


 정말로 입을 썼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지마. 내가 입으로 쓸 수 있으면 다시 희곡을 쓰게? 사실 가르토니안 아저씨가 써주는 거야.


 형, 있잖아?


 아직, 살아있겠지?


 이 편지 꼭 형이 봤으면 좋겠어. 나 있잖아. 아직도 하나도 않아퍼. 형을 대신해서 내가 아파해 줄 수 있다면, 나 두 손이 아니라 두 발까지도 형을 위해 줄 수 있어.


 형, 있잖아.


 미안해. 내가 너무 잘나가서 형이 힘들어했었지?


 알아도 말할 수 없다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그걸 형에게 알아달라고 하는 건 내 욕심이겠지?


 정말 보고 싶어, 형. 형 편지보고서 나 말이야.



 그 날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울었어.




                제국력 1024년. 3월 1일

                                                                                              마켄 가문의 차남, 탈론 마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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