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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소설/습작

공의 경계 上 3/통각잔류 pp 156~162


 내가 아주 어릴 때, 소꿉놀이를 하다
 손바닥을 베인 적이 있었습니다.
 빌린 것, 모조품, 만든 것.
 그런 작은 요리도구 중에,
 진짜가 한 가지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식이 멋진 가느다란 칼날을 손에 들고 놀던 나는,
 어느 틈엔가 손가락 사이를 깊숙이 베였습니다.
 손바닥을 새빨갛게 하여 어머니에게 돌아가자,
 어머니는 나를 야단치신 후,
 울음을 터트리며 부드럽게 안아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팠지, 하고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런 뜻을 알 수 없는 말보다
 꼬옥 껴안아주는 것이 기뻐서 어머니와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후지노, 상처는 나으면 아프지 않아ㅡㅡㅡㅡ
 하얀 붕대를 감으면서 어머니는 말합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도 모릅니다.
 단 한 번도 아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통각잔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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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한한 소개장을 가지고 왔군, 자네."
 대학 연구실.
 백의가 어울리는 초로의 교수는 어딘가 파충류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호오, 초능력이라. 자네, 그런 데 흥미가 있나?"
 "아뇨, 그게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런 걸, 흥미라고 하는 거지. 뭐, 상관이야 없지만. 허, 명함으로 소개장을 대신하다니 그녀답군. 그녀는 내 제자 중에서도 특출했으니까 말이야, 아주 총애했었지. 여기도 쓸만한 애들이 줄어들고 있어서 말이야, 인재가 없어. 부족한 건 곤란한 일이야."
 "저, 초능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응, 그래그래. 하지만 말이야, 초능력이라 해도 종류가 있어. 본격적으로 통계를 낸 게 아니어서 참고가 되려나 모르겠네. 이 업계는 다들 꺼리는 분야라, 일본에서는 연구시설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없어. 그런 건, 반드시 블랙박스가 되어버리니까. 내게까지 자세한 정보는 오지 않아. 음, 최근 3년 동안 상당히 실용적인 레벨까지 올라갔단 이야기가 있는데, 어떨지 모르지. 그건 태어날 때부터 특출나지 않으면 안되니까."
 "초능력의 구별은 됐습니다, 교수님. 아마도 PK(Psycho Kinesis)일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인간이 초능력을 어떤 식으로 가지게 되는가, 하는 이야깁니다만."
 "채널이지. 자네는 텔레비전 보나?"
 "예에, 당연히 봅니다만ㅡ그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텔레비전, 텔레비전. 이봐, 인간의 뇌를 채널로 생각하는 거야. 자네 자주 보는 채널이 몇 번인가?"
 "...예, 8번입니다만."
 "그래. 그건 제일 시청률이 높은 채널이겠지? 인간의 뇌에는 열두 개의 채널이 있다고 치자구. 나와 자네의 뇌는 말이야, 항상 그 8번 채널.. 가장 시청률이 좋은 프로그램에 맞춰져 있어. 그 이외의 채널도 있지만, 우리는 볼 수 없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 요컨대 상식이라 할까. 그 상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채널은 8번 채널. 알겠나?"
 "ㅡ저, 가장 무던한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아냐, 아냐. 그게 제일 좋아. 20세기의 상식, 요컨대 가장 시청률이 좋은 법칙이 8번 채널. 우리는 그곳에 있을 수 있으니, 그것이 가장 평화로운 거지. 상식 속에 살며 상식이라는 절대 법칙에 보호받으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잖아."
 "음, 그러면 다른 채널은 평화롭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글쎄, 어떨까나.
 예를 들어 3번 채널은 인간의 언어 대신 식물의 언어를 수신하는 채널이라고 해보자구.
 그리고 4번 채널은, 원래는 육체를 움직여야 할 뇌파가 자신의 육체가 아닌 자신 이외의 물체를 움직이는 채널이라 하고.
 이런 채널이 있으면 굉장할 거야. 하지만 거기에는 8번 채널에서 흐르는 상식은 없겠지. 각자의 채널에는 그 채널 독자적인 '프로그램(룰)'이 흐르고 있으니까.
 그래서, 요즘 시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한 채널은 모두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8번 채널이기 때문에, 4번 채널을 보는 사람이 사회(8번 채널)에 적응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다른 채널에는 8번 채널에서 흐르는 당연한 상식이란 게 없으니까 말이야."
 "ㅡ요컨대, 8번 채널이 없다는 것은 정신이상자라는 것이 되는 겁니까?"
 "응. 만약에 3번 채널밖에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인간은 식물과 이야기할 수 있는 대신 인간과 말을 할 수 없어. 결과적으로 사회는 정신이상자로서 병동에 감금하겠지.
 초능력자라는 것은 그런 것.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사람들과의 공통된 채널이 아니라, 다른 채널을 갖고 있는 인간을 말하는 거라네.
 그렇지만 말이야, 대부분의 초능력자는 8번 채널과 4번 채널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어. 채널이니까 보고 싶을 때마다 프로그램을 바꿀 수 있겠지? 4번 채널을 보고 있을 때는 8번 채널을 보지 못하고, 8번 채널을 보고 있을 때는 4번 채널을 보지 못해. 세상에 섞여 사는 초능력자들은 말이야, 그런 식으로 상황을 구분해 가며 살고 있는 거라네. 그래서 우리는 어지간해서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지."
 "과연, 그래서ㅡ4번 채널 밖에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상식이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그런 사람을 말이야, 세상에서는 살인귀니 미치광이니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부르지. '존재부적합자'라고. 사회에 부적합한 인간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들은 그 존재 자체가 이미 붖거합한 거야. 존재해서는 안 돼. 존재시켜서는 안 돼.
 만약, 만약에 말이야. 지금까지 보통 채널과 4번 채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뭔가의 계기로 육체의 기능이 파괴되어 평범한 채널로 갈 수 없게 된다면 그 인간은 끝이야. 지금까지의 생활로 상식을 알고 있다 해도, 그 채널에 갈 수 없으면 결국 우리와 이야기가 맞지 않게 돼. 전파가 다르거든."
 "...그럼, 존재부적합자를 적합자로 만드는 방법은 있습니까."
 "음, 생명활동이 정지되면 되지 않을까?
 좀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 이상한 채널을 파괴하면 되는 거야. 그러나 그건 뇌를 부순다는 것이어서 말이지 .결국 죽일 수밖에 없어. 육체의 기능을 망가뜨리지 않고 그 조직만 망가뜨리는 편리한 기술은 아직 없거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초능력인 거지. 가장 강력한 12번 채널쯤일까. 그 방송국은 '무엇이든 있습니다' 방송국이겠지."
 아하하, 하고 교수는 재미있다는 듯이 혼자 웃었다.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그 PK라고 불리는 초능력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은 숟가락 구부리기인가요?"
 "뭐야, 숟가락을 구부리는 거야?"
 "숟가락은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팔 정도라면."
 "그건 자네 정도의 어른 팔? 대단하네, 그거. '구부리기'는 물건의 경도보다 물건의 크기가 문제지. 인간의 팔을 구부리다니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그래, 그건 어느 쪽 방향이야?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ㅡ그런 것도, 의미가 있습니까?"
 "있지. 축의 문제. 지구도 회전방향이 있잖아. 뭐, 일정치 않다고? ...흠, 그거 실제로 존재하는 능력인가? 그렇다면 상관하지 않는 편이 좋아. 채널을 두 개 이상이나 가지고 있어, 그 존재부적합자는. 좌회전과 우회전. 아마 동시에 돌릴 수 있을 걸. 난 말이야, 채널을 두 개씩 가지고 그것을 동시에 사용하는 사례는 들은 적이 없어. 자네 사이보그 009라는 만화 본 적 있나? 거기서 001과 002가 합체하면 009도 이겨 버리잖아."
 "...저, 시간이 없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나가노 현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정말 실례 많았습니다."
 "응, 좋아, 좋아. 그녀의 소개라면 얼마든지 오시게.
 참, 아오자기 군은 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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