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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저장용

제 3자 - 4 - (1차 수정)

 어둑어둑 저무는 해가 창살의 문턱을 스치는 시간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이후로 한 모금도 빨지 않던 담뱃재가 나뭇가지 꺾이듯이 떨어졌다.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기고 왼손으로 새 담배를 꺼냈다. 내가 내놓은 계약서과 계약금 그리고 문서를 살피던 그의 날카로운 눈이 내게 고정되었다. 입으로 가져가던 손을 갑자기 내게 뻗으며 그가 말했다.


 "좋아요. 전문인 본인을 찾은 당신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본인이 맡죠. 다만 당신도 알다시피 살인 용의자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당신의 상황을 아셔야합니다. 물론, 돈이 모자르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신다면 본인은 더 많은 자금을 지원받아도 상관은 없어요. 어쨌거나 쉬운 일은 아니란 겁니다. 당신이 범인이면서 다른 당신이 범인이라고 지목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거죠. 그 표정은 뭡니까? 이해 못한다는 얼굴입니까? 당신은 영화 '마더' 보셨죠? 안 봤다고요?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열심히 용의자를 찾던 당신이 사실은 범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영화라는 것만 당신께 말씀드리죠. 그러니 확실히 해주셔야합니다. 당신은 범인이 아닙니까?"


 나는 머뭇거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이상한 말투까지, 나는 괜히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대답이 늦자 되물었다.


 "뭡니까. 당신이 범인 맞습니까? 그럼 지금 경찰 당신에게 전화해서 범인 당신이 여기 있다고 전화라도 할까요?"


 그는 당장에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난 허둥지둥 손을 내저으며 그 수화기를 붙잡았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범인이라면 왜 탐정을 고용하겠습니까?"


 탐정은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정말 아닙니까?"


 나는 탐정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이 깊은 눈을 응시하며 답했다.


 "네. 아닙니다."


 탐정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에는 점멸(點滅)하는 간판들이 새 생명을 얻고 있었다. 탐정의 눈이 그 간판을 향했다. 그 아래서는 밤장사를 주비하기 위해 점원이 나오고 있었다.


 "당신의 제안대로 당신 아내의 뒷조사를 하겠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당신의 아내가 범인이라면 증거를 남길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줄 몰라하는 상황에서 그를 찾아온 선택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했다. 탐정은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나를 보는 듯이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본인은 조사에 착수할테니 당신은 평소처럼 행동해주십시오. 그리고 상황

진척에 따라 연락이 필요할 테니 당신의 연락처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름은 당신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부디 탐정이라는 말만은 적지 말아주십시오."


 나는 쥐고 있던 신문지를 내려놓았다. 신문에 탐정의 광고가 짓뭉개듯이 구겨져 보였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친구의 이름을 그대로하고 번호만 수정했다. 이제 '이진혁'이 내게 전화한다면 그 전화를 건 사람은 탐정이다.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아내는 평소처럼 행동했고 나는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다. 전과 다름없이 아내는 내게 지극정성을 다해주며 새벽기도 또한 빠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용의자 선상에 있지만 경찰들의 조사 진행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는 알 수 없었다. 연락을 해주기로 한 탐정 또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애꿎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이진혁'의 번호를 불러내었다.


 "진혁 씨 만나러 가게?"


 나는 흠칫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미소 짓는 아름다운 그녀가 내 휴대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휴대폰 슬라이더를 닫았다.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게, 응. 잠시 나갔다 올게."


 나는 당황한 기색을 아내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서둘러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방으로 향해 외투를 꺼냈다. 방을 나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방문에 서있었다.


 "여보."


 그녀가 지그시 응시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아내의 시선이 마치 불에 달군 쇳덩이 같이 뜨겁다고 느껴졌다.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의 쇳조각을 터질듯이 달군 감각이 내 전신을 훑었다. 소름이 돋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내가 내게 다가왔다. 순간, 손을 들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밖에 날씨가 추우니까, 더 두꺼운 걸로 입고나가요."


 아내는 나를 지나쳐 옷장에서 짙은 갈색 외투를 꺼냈다. 어느새 나무가 색동옷을 벗어던지고 전보다 일찍 찾아오는 땅거미를 반기는, 계절이 다가왔다. 아내는 어정쩡하게 내민 내 손에서 외투를 받아들고 두꺼운 갈색 외투를 들고 섰다.


 "뭐해요?"


 멍하니 서있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당황한 채 뒤늦게 한쪽 팔을 내밀자 아내가 외투를 입혀주었다. 나는 한 바퀴 돌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마치 아이가 웃듯이 맑고 티 없는 미소로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조심해서 다녀와요."


 나는 어색하지만 애써 미소를 짓고 집을 나왔다. 문이 닫히고서야 비로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내의 말대로 밖에 날씨는 쌀쌀했다. 짚을 엮어 만든 나무의 새 옷은 이전에 오색저고리만 못한지 바람이 불면 나무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며 몸을 움츠리고는 외투를 여몄다. 추위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휴대폰이 외투 주머니에 있었다는 것을.

 언제 내가 휴대폰을 두꺼운 외투 주머니에 넣었지? 집에서 서둘러 나오느라 휴대폰을 챙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휴대폰은 주머니에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폴더를 여니 마침 전화기가 울렸다.


 '이진혁'


 일주일 만에 그의 연락이었다. 나는 서둘러 전화기를 받기에 앞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늦가을에 추위가 심해질수록 타인에 대해 쌀쌀맞게 굴고 있었다. 한마디로 서로를 의식하지 않으며 제 갈 길만 걷고 있었다.


 "여보세요?"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응답은 곧장 오지 않았다. 나는 탐정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저기……. 여보세요?"


 "당신은 현재 공원이시죠? 전화기로 통화하는 것은 당신께 안전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공원처럼 탁 트인 곳에서는 당신이나 본인이나 의식 받지 못한다는 장점과 더불어 아는 사람에게 오해를 산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고로 지금부터 일러드리는 위치로 당신이 와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전화기는 끄지 마시고 이야기하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해 주십시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색하지만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말했다. 마음속으로는 탐정이 정말 이진혁인 마냥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효과가 있는지 탐정이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은 그대로 공원을 나오십시오. 그리고 당신 맞은편에 커피숍이 보일 겁니다. 당신은 길을 건너 커피숍에서 우측으로 꺾으십시오. 아, 그렇게 당신이 웃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느낌이 있으니 목소리를 조금 줄이셔야 합니다. 좋습니다. 당신 친구 이진혁은 XX동에 OO내과 의사죠? 지금 당신이 가시는 곳 앞에 버스 정거장이 있을 겁니다. 네, 거깁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5분 후에 버스가 도착할 겁니다. 당신은 그 버스를 타시고 가장 뒷좌석에 앉아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구를 대하듯이 편하게 말했다. 전화가 끊어지기 전에 그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참고로 버스는 182번입니다."


 그가 먼저 전화를 껐다. 정거장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색 바랜 도시 건물과 세월을 함께 해온 버스 정거장은 지저분하고 오래되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에게 그 의미는 잊히고 존재마저도 사라지는 정거장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마치 직장도 그만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살인사건에 휩싸이는 내가 이 정거장 같다고 생각됐다. 저러다가 사라질 정거장처럼 나도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닐까…….

 끼이이익-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뒷좌석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앞에는 노부부뿐이었다. 탐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아서 휴대폰을 꺼냈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내가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이에 XX동 OO내과가 있는 거리에 도착했다. 나는 벨을 누르고 내렸다.


 "왔어?"


 친근하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진혁이였다. 나는 놀랐지만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내과 의사 이진혁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어? 진혁아."


 "흐흐. 짜식. 보고 싶었으면 진작 연락을 하지. 자자, 날씨도 추운데 들어가자."


 이진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나를 이끌었다. 그를 따라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의사 이진혁은 미소를 지우고 정색했다. 목소리마저 바꾸자 그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너 요 근래 살인사건에 휘말렸다면서?"


 오랜 친구 이진혁을 쳐다보자 그는 평소 모습을 완전히 지운, 마치 탐정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때, 이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뉴스란 걸 듣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첫 살인사건이 너네 옆집이었잖아?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했는데, 두 번째 사건까지 생기자 걱정되서 너네 집에 찾아간 적이 있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니? 작년 내 생일 이후로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이 없을 뿐더러 연락도 없었다.


 "그때 재수 씨를 만났어. 재수 씨는 나를 보자마자 울먹이시더라고. 그녀는 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고 말했지. 그 말을 하자마자 울음을 터트리시던데 그거 달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그를 보며 나는 무안해했다. 그러자 친구 얼굴에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그만의 표정이 나타났다. 이진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슬피 울더라. 근데 그거 아나? 너, 너무 웃으면 억지로 웃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잖아?"


 내가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어느새 웃음을 지운 의사다운 냉철한 모습으로 이진혁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난 재수 씨가 울 때, 그녀에게서 그런 기분을 느꼈어."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친구가 먼저 나오며 말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부탁 받은 부분이야. 이제부터는 네가 알아서 해."


 나는 의아해하며 앞으로 그를 따라 나왔다. 그는 병실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가 그를 따라가자 누가 옆에서 불렀다.


 "당신 오랜만입니다. 본인과의 만남은 일주일 만이죠? 당신."


 고개를 돌려 바라본 오른쪽에는 한 번도 담뱃재를 털지 않고 담배를 문 채 벽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탐정이 서있었다. 내가 바라보자 그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구두로 밟았다. 그리고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본인은 여기도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따라오시죠."


 탐정은 남자화장실로 들어갔다. 내가 따라 들어가자 그는 화장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비대가 있는 변기 쪽으로 나를 보냈다. 탐정의 목소리를 작았다.


 "솔직히 여기도 본인은 걱정이지만, 여기가 아니면 영영 대화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되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그는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비대에 손을 얹었다. 비대가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밖에서 듣는다면 마치 누군가가 비대를 사용하기 위해 앉았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탐정은 능숙하게 가방을 풀어 안에서 서류 파일을 꺼냈다. 그리고 다른 무슨 종이봉투도 꺼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내 물음에 탐정은 종이봉투에서 갈색 덩어리를 꺼내 적당한 높이에서 변기 안에 떨어뜨렸다. 마치 변을 보는 느낌이 날 정도로 사실적인 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탐정이 나를 보며 조소를 지었다.


 "인상 푸시오, 당신. 이건 똥이 아니라 찰흙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똥을 쓰고 싶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겠소? 본인도 불가능합니다. 어쨌거나 본인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습니까? 아니, 확인할 필요도 없겠군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탐정은 다시 찰흙을 꺼내 변기에 떨어뜨렸다. 짙은 갈색의 모양까지 흡사하여 물에 빠지는 순간 진짜라 믿겨져 튀는 물을 피했다. 탐정은 찰흙을 집던 손으로 나를 붙잡았다.


 "당신은 당신 아내가 미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까? 그럴 리 없겠죠. 왜냐면 본인도 당신 아내가 이곳까지 따라오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했으니까."


 놀라서 큰 소리를 낼 뻔하자 탐정이 황급히 내 입을 틀어막았다. 하필이면 찰흙을 집던 손이었다.


 "당신, 큰 소리는 삼가시오. 누군가 당신을 엿듣고 있는 게 분명하니(그는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찰흙을 변기에 던졌다.) 가능하면 작게 이야기 합시다. 당신이 힘을 주는 신음소리를 내주실 거라면 본인은 흔쾌히 허락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아예 입을 다무시는 게 좋소. 좋습니다.

 당신이 집에서 나와 공원, 정거장, 병원 입구까지 당신 아내는 당신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몰랐다는 표정은 짓지 말죠. 하나하나 설명할테니. 본인은 당신과 아내 당신을 조사하고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당신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공원에 나오자마자 전화를 했지요. 본인은 그때 누군가가 본인을 지켜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그거 아시잖소?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면 신경이 쓰인다든지 시선이 따갑다든지. 모르십니까? 에이, 어쨌거나 본인은 곧장 택시를 타고 이진혁 당신이 있는 병원으로 오며 당신에게 지시를 내렸소. 왜냐면 나를 향했던 시선이 당신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니."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았나 걱정하는 순간에도 탐정은 침착하게 찰흙 덩어리를 변기에 떨어뜨렸다.


 "본인이 당신에게 버스를 타라고 한 것은 당신 아내가 당신을 봐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당신의 연기가 너무 볼품없었기에 지나가던 이도 한 번쯤은 쳐다볼 만 했거든요. 어색한 웃음소리로 사람들이 당신을 보는 사이에 당신이 의심받는 행동을 더 한다면 당신 아내는 무슨 행동을 취했을 지 본인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눈에 띄지 않지만 당신 아내에게만 눈에 띄게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습니다. 182번은 당신이 탄 버스가 오늘의 마지막 버스였고 뒷좌석에 앉으라 한 이유는 당신 아내에게 당신이 잘 타고 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당신 아내는 당신이 버스를 타고 뒷좌석에 앉은 것을 본 후 택시를 타고 따라왔을 겁니다.

 당신 친구 이진혁이 당신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중에도 당신 아내는 어디선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은 꽤 오래 전부터 당신 아내의 감시망에 있었는지 그녀는 능숙하게 따라왔소. 본인은 놀랍게도 당신이 올라오는 중에 당신 아내를 보았고 확신하게 되었소. 당신 아내는 범인이 맞소."


 나는 놀랐다. 내 아내가 범인이 맞다는 사실이 놀란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아내가 범인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걸 다 아십니까? 택시를 타고 돌아오셨고 그 후에는 짐작하신 것일 텐데……."


 탐정은 검지를 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본인이 괜히 탐정이 아니란 사실을 다시 알려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렇다면 제게 아내가 미행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어도 됐잖습니까?"


 탐정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저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만일 내가 아내가 미행하는 것을 알았다고 한 들 어떻게 행동했을 까. 친구랑 대화하는 것처럼 하는 연기조차 어색한 마당에 아내에게 당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광고판을 들고 서있는 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였다.

 내 얼굴을 살펴본 탐정이 마지막 찰흙을 변기에 던졌다. 그는 종이봉투를 가방에 넣었고 서류 파일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증거는 여전히 불충분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알아본 바는 이 서류에 있으니 당신이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탐정은 휴지를 힘차게 둘둘 말고는 변기에 넣었다. 탐정은 변기 물을 내리고 세면대로 와서 물을 틀었다.


 "본인이 직접 이야기해줄 수 없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서류만 보고서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거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죠. 더 이상 지체하면 어색하니 당신은 이만 나가보십시오. 본인은 바로 따라 나오면 의심을 받을 테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가겠습니다."


 나는 탐정이 준 서류를 살펴보려다가 다시 탐정을 바라보았다. 머뭇거렸지만 탐정은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아까 그 비대로 가서 문을 잠갔다. 나는 그를 부르려다 포기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러자 화통 삶은 듯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진짜! 이 안에 사람 있소이다!"


 나는 당황해서 서둘러 화장실을 나왔다. 주변을 살펴보니 병원 사람들이 환절기를 이겨내지 못해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서류를 살펴보는 것은 누군가의 감시를 받을 거 같다는 생각에, 나는 서류를 파일에 넣고서 외투 안에 감춰서 밖으로 나왔다.




 거센 바람이 불어 나는 외투를 바투잡고 걸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흥분에 바람은 차가웠으나 몸은 뜨거웠다. 그때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경찰차와 구급차가 지나갔다. 그리고 곧장 내가 나온 병원 건물로 들어갔다.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발걸음을 멈추고 병원으로 걸어갈 때 나는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병원으로 가려는 찰나, 길 건너편에서 골목에서 한 여인을 보았다. 내 아내였다. 탐정에게 아내가 나를 미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라서인지 당장 아내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내가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아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휴대폰을 거머쥐고 '이진혁' 이름으로 전화를 걸면서 골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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